증권사, 예탁금 이용료율 인상 주저하는 이유는
모범규준 도입 예고에도 후속은 ‘아직’
모호한 기준 문제에 실적 악화 우려도
키움증권이 투자자예탁금 이용료율을 대폭 인상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다른 증권사들은 쉽사리 이용료율 인상을 결정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기준금리 상승 등을 고려한 예탁금 이용료율 현실화에 대한 지적이 거세지고 있지만 모호한 기준과 실적 악화 우려 등으로 상향 수준에 대한 셈법이 복잡한 분위기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키움증권은 지난 8일부터 50만원 이상의 투자자예탁금에 대해 1.05%의 이용료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지난달 7일 이용료율을 기존 0.25%에서 1.05%로 0.8%포인트나 상향 조정했는데 지난 8일부터 적용된 것이다. 이에 따라 키움증권은 신한투자증권(1.05%), KB증권(1.03%) 등과 함께 나란히 1%대 이용료율을 제공하는 증권사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키움증권의 대폭 인상 이후 다른 증권사들도 이용료율을 상향 조정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됐으나 아직 다른 증권사들의 움직임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키움증권에 앞서 올 상반기 이용료율을 인상한 유진투자증권(0.1%→0.35%), 하이투자증권(0.2%→0.4%), 메리츠증권(0.3%→0.6%) 등도 조정 폭이 0.2~0.3%포인트 수준에 그쳤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국내 주요 10개 증권사의 평균 예탁금 이용료율은 연 0.6%다. 저금리를 유지했던 지난 2019년 말 0.55% 대비 0.05%포인트 상승에 그친 것이다. 같은 기간 기준금리가 1.25%에서 3.5%로 2.25% 오른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예탁금 이용료율은 투자자로부터 금융투자상품의 매매와 그 밖의 거래와 관련해 예탁받은 금전을 증권회사가 이용하는 대가로 지급하는 이자를 의미한다. 증권사들은 투자자들이 예치한 현금성 자산에 전산·인건비 등을 정산하고 난 뒤 각 사 내부 기준에 따라 이용료율을 책정해 돌려준다.
문제는 과거부터 증권사들이 예탁금을 이용해 얻는 수익에 비해 투자자들이 받는 이자가 너무 적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는 것이다.
올해 초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30개 증권사가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고객 예탁금으로 벌어 들인 수입은 총 2조4670억원이었다. 그러나 이 기간 증권사가 고객에게 지급한 이자는 5965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 주요 14개 증권사는 ‘예탁금 이용료 합리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를 통해 이용료율 상향 조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으로 이르면 이달 중 ‘투자자예탁금 이용료율 산정 모범규준’도 발표할 예정이다. 해당 모범 규준에는 수익과 직·간접적 비용을 감안한 합리적 기준, 분기 1회 이상 재산정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업계에서는 현재 이용료율 상향 수준을 두고 고민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관련 모범규준 발표가 아직 나오지 않아 자체적인 기준을 세우기 어려운 것에 더해 이용료율 상향시 실적에 미칠 영향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TF가 지난달 관련 모범규준 도입을 사전 예고하고 이를 이달 중 시행한다고 밝혔지만 아직 발표가 미뤄지고 있는 것도 이같은 고민의 흔적이 반영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증권사가 투자자예탁금 이용료율 상향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아직 이용료율 산정 관련 기준이 아직 모호한 가운데 최근 MTS 등 정보통신(IT) 관련 인력 확충·투자 등 관련 비용을 얼마나 반영할지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투자은행(IB) 부문이 부진하면서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실적의 중요성이 커졌다”며 “당국의 압박에 이용료율이 상향 평준화되겠지만 각사 사정에 따라 오름폭이 미미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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