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육교 철판 인도로 '쾅'…비둘기 똥에 부식돼서 떨어졌다

김민주 2023. 10.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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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 있는 육교에서 비둘기 배설물에 부식된 철제 외장재가 인도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진 동래구


육교서 떨어진 10㎏ 철판, 인도 덮쳤다


지난 1일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 있는 한 육교 외장재가 갑자기 떨어져 나와 ‘쾅’ 소리와 함께 5m 아래에 있는 인도를 덮쳤다. 철로 만들어진 외장재는 가로세로 1m 크기이고 무게는 10㎏에 달했다. 육교는 2009년 지어졌고, 사람이 건너는 상판의 길이는 112m다. 지하철 1호선 명륜역과 도심하천 온천천과도 가까워 육교 주변은 유동 인구로 붐비지만, 외장재가 추락한 오후 11시15분쯤엔 다행히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 없었다.

동래구에 따르면 올해 들어 시행된 3번의 정기ㆍ수시 안전점검에서 이 육교는 ‘이상 없음’이라는 점검 결과를 받았다. 이번 사고 원인 조사에서 생각지 못한 문제가 드러났다. 벌어진 틈새를 비집고 비둘기들이 육교 안팎을 드나들었고, 내부엔 둥지를 짓기 위해 비둘기가 물어온 흙ㆍ지푸라기 등 이물질과 비둘기 배설물 등이 두텁게 끼어 있었다고 한다.
동래구 관계자는 “추락한 외장재는 용접이 아닌 나사와 실리콘 등을 이용해 육교에 고정돼 있었다. 내부에 낀 비둘기 똥 등 이물질 탓에 접착 부분이 부식되면서 추락 사고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본래 육교 내부는 드나들 수 없게 만들어졌다. 안전점검은 육교 외부에 드러난 균열, 부식 등을 통해 기능 및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살피는 것이어서 내부 이물질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동래구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비둘기가 드나든 것으로 보이는 육교 등의 내부를 점검하고 출입방지망을 설치할 예정이다.

부산 동래구 명륜동에 있는 육교. 지난 1일 이 육교 외장재가 내부에 낀 비둘기 배설물 등에 부식돼 바닥으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진 동래구

평화의 상징서 ‘1일 1만원’ 골칫거리로


도심에서 이 같은 문제가 잇따르면서 한때 ‘평화의 상징’으로 불리던 비둘기는 골칫거리가 됐다. 부산시 집계를 보면 2021년 301건이던 비둘기 관련 민원은 지난해 365건으로 늘며 ‘1일 1민원’을 달성했다. 부산역 등 대형 역사 주변 보도를 뒤덮은 비둘기 배설물을 치워달라거나, 아파트 단지ㆍ공원 등지에서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이웃을 제재해달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부산시는 부산 전역에 적어도 3000마리의 비둘기가 살고 있을 거라고 추산했다.
2020년 1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김치찌개 식당에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비둘기가 식당 안으로 들어오자 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급히 자리를 옮겼다. 중앙포토

비둘기 피해는 부산뿐 아니다. 2021년 경기 안양시에선 아파트 실외기에 비둘기가 몰려들며 배설물, 털로 인한 문제가 생기자 주민들이 아침마다 창가에서 독수리 울음소리를 틀어놓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올해 들어 아파트ㆍ오피스텔 같은 주거지 보일러실 등지에 비둘기가 둥지를 틀면서 관련 민원이 빗발치자 제주시는 주민에게 비둘기 기피제를 배부하는 등 대책을 고심했다.

비둘기 깃털과 배설물로 인해 주거지나 차량이 더러워지자 최근엔 ‘앙심 보복 범죄’로 보이는 사건도 일어났다. 지난달 17일 광주 서구의 한 공원에서 비둘기 21마리가 집단 폐사한 사건이다. 사체에서 농약과 살충제 등이 검출됐다. 경찰은 누군가 해칠 마음으로 공원 비둘기 먹이통에 약물을 넣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 1월 8일 경북 포항시 죽도어시장 도로변에 비둘기들이 앉아 있다. 뉴스1

“바뀐 비둘기 지침에 대처 더 어렵다”


이 같은 민원을 응대해야 하는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 사이에선 “바뀐 지침이 대처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는 호소가 나온다. 지난 2월 환경부가 배포한 ‘집비둘기 관리업무 처리지침’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선 지자체들에 따르면 2009년 환경부 지정 유해 야생동물로 분류된 비둘기는 본래 지자체장 결재만 거쳐 포획, 도살처분 등 개체 수를 조절하는 조치가 가능했다. 하지만 새로 나온 환경부 지침은 포획 전에 전문가, 시민단체 등을 포함한 협의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해놨다. 이 협의회가 비둘기 포획 여부 및 방식 등을 결정한다. 앞선 지침엔 없던 내용이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전문가, 시민단체 등 외부인을 포함한 협의회를 꾸린 뒤 포획이 필요할 정도의 중대 피해인지, 아닌지 논의하는 것 자체에 시간 소요가 상당하다”며 “또 비둘기 전문가를 섭외하기도 쉽지 않다. 비둘기 민원은 갈수록 많이 늘어나는데 처리 지침은 더 복잡해졌다”고 토로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비둘기를 유해 야생조수로 지정한 것에 대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는 환경ㆍ시민단체가 많다”며 “(지자체가) 포획에 앞서 다른 대책을 시도해보고, 최후의 수단으로 신중하게 포획을 결정해달라는 취지에서 협의회 구성 내용을 지침에 포함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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