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경 서울 출마에…TK의원들 사투리 억수로 심해진 까닭

김기정 2023. 10.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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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의원, 원래 서울말을 썼나? 사투리를 별로 안 쓰시네.”

11일 이른 아침 무렵 국회 의원회관 지하의 의원 전용 목욕탕에서 국민의힘 B 의원이 같은 당의 TK(대구ㆍ경북) 지역 초선 A 의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A 의원이 답을 하려는 찰나, 곁에 있던 또 다른 C 의원이 급하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그런 말 하지 마. 서울말 쓴다고 하면 수도권에 출마하라고 할까 봐 무서워”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A 의원은 “저 사투리 억수로 심합니데이”라며 갑자기 유창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하태경 의원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하고 있다. 하 의원은 지난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정치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며 서울 출마를 선언했다. 뉴스1

평소 서울말에 가까운 억양을 구사하던 A 의원의 돌변에 당시 목욕탕에 있던 의원들은 단체로 폭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를 전해 들은 국민의힘 TK 지역 의원들은 마냥 웃지만은 못한다.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보수정당의 쇄신책으로 ‘TK 물갈이론’이 대두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부산의 3선 하태경 의원이 내년 총선 서울 출마를 선언하며 이같은 분위기에 불을 댕겼다.

영남지역, 그중에서도 TK는 국민의힘 내부에서 부러움을 사는 지역이다. 이른바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표현도 공공연하게 쓰인다. 현재 국민의힘 의원 111명 중 TK를 지역구로 둔 의원은 모두 25명이다. 대구 12개·경북 13개 지역구 모두 국민의힘 차지일 만큼 ‘여당의 텃밭’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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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만 받으면 거의 당선이 확실시되다 보니 지역구를 둘러싼 당내 경쟁이 본선보다 치열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당내 다른 지역 의원들로부터 “공천권자의 의중에 쉽게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는 총선 공천 때마다 ‘TK 물갈이론’의 주된 명분이 됐다.

2020년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TK 현역 교체율은 64%였다. 20대 총선 때도 대구는 75%, 경북은 46%가 바뀌었다. 총선마다 TK 지역구 절반가량은 새로운 인물을 내세운다. 이렇다 보니 공천 불이익을 받은 인사들이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일도 종종 있다. 21대 총선에선 대구 수성을에 홍준표 대구시장이, 20대 총선에선 주호영ㆍ유승민 의원이 각각 대구 수성을과 동을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텃밭 물갈이가 비영남지역, 특히 중도층 지지자들에겐 쇄신 효과를 주기 때문에 내년에도 의미 있는 숫자의 물갈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TK 지역에선 ‘역차별’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의원은 “경북의 경우 13명 중 초선 7명, 재선 6명으로 3선 이상 중진이 한명도 없다”며 “당이 물갈이에만 몰두해 정작 능력과 자질이 뛰어난 큰 정치인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 달서을을 지역구로 둔 윤재옥 원내대표도 지난 7월 14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대구ㆍ경북이 우리 당의 핵심 지지 지역인데도 늘 선거 때가 되면 이런 이야기가 나와 TK 정치권이 너무 피폐해지고 정치 세력이 너무 약해진다”며 “과연 교체율만 높이는 게 ‘좋은 물갈이’냐. 좋은 사람으로 교체해야 ‘좋은 물갈이’”이라고 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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