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은행 2988억 횡령' 전말…인감도장 파서 한 번에 77억 송금

이창훈 2023. 10. 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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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횡령 사고로 역대 최대인 2988억원 횡령액을 기록한 BNK경남은행 횡령 사건은 은행직원의 시행사 인감도장 위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검찰이 파악했다. 은행직원은 횡령 범행을 위해 시행사 직원을 사칭하는 연극을 벌이기도 했다.

12일 법무부가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경남은행 투자금융부장으로 15년간 재직하던 이모(51)씨는 고교동창이자 공범인 황모(52)씨에게 처음에는 인감도장이 찍힌 출금전표로 계좌 인출 서류를 꾸며 건넸다고 한다. 통상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을 할 때 PF 주관 은행은 시행사가 무단으로 대출금을 쓰는 것을 막고자 시행사 통장을 보관하는데, PF업무 책임자로 통장을 관리하던 이씨는 허위로 만든 출금전표로 통장에 담긴 대출금이나 대출원리금 상환자금을 빼돌린 것이다.

계좌 인출서류를 받은 황씨는 은행을 찾아 시행사 직원을 사칭하며 원래 시행사 통장에 있던 대출금을 이씨가 만든 유령법인으로 송금했다. 하지만 범행이 잦아지고 인출하는 금액이 커지자 이씨는 시행사의 인감도장을 통째로 복제했다고 한다. 황씨는 위조한 인감도장으로 만든 출금전표로 적을 땐 1억원대, 많을 땐 77억원 등을 한 번에 송금했다.

서울 시내 한 BNK경남은행 지점의 모습. 연합뉴스

이씨는 시행사가 은행에 갚아야 할 대출원리금 상환자금을 중간에서 가로채기도 했다. 이씨는 2019년 7월 경기 광주시의 한 복합형 상가건물 건설 사업을 주도하던 A조합의 인감도장을 몰래 만들었다. 이후 위조한 인감도장으로 계좌거래신청서를 만들어 A조합 명의의 경남은행 계좌를 만들고, 황씨는 허위 출금전표로 50억의 대출금을 가짜 A조합 계좌로 빼돌렸다.

경남은행 횡령에 사용한 위조 대출 서류. 금융감독원


이씨는 또 허위로 대출 서류를 꾸며 돈을 빼돌리기도 했다. 2021년 7월 경기 의정부시의 한 부동산 개발 사업과 관련해 부하 직원에게 73억원의 대출약정금액 인출을 요청하는 문서를 기안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정작 대출금은 해당 부동산 개발과 관련 없는 이씨가 만든 유령법인으로 송금됐다.

검찰은 이렇게 이씨와 황씨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간 BNK경남은행 부동산PF 대출 관련 자금 1387억원을 횡령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일부범행에 불과하고, 지난달 금융감독원의 ‘경남은행 PF 횡령사고 긴급 현장검사 결과’에 따르면 범행시점은 2009년부터 지난해 7월에 걸쳐있고, 이씨의 횡령액은 총 2988억원에 이른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부장 임세진)는 지난달 이씨와 황씨를 횡령과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나는 도망갈 것” “내일 베트남 간다” 도피 공모


지난 7월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이씨와 황씨는 도피 계획을 세운 정황도 있다. 이씨가 황씨에게 “사건이 터졌다, 자금을 모두 빼겠다”며 “나는 도망갈 것이고, 연락이 안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씨가 “나 내일 베트남 간다”고 맞장구치자, 이씨는 “그럼 너도 거기 가서 살고 돌아오지 말라”고 답했다. 하지만 황씨는 출국 전날 이뤄진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 때문에 도주에 실패, 지난 8월 구속됐다.

금감원은 ‘경남은행 횡령사고에 대한 검사결과’를 통해 이씨의 범행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특정 부서 장기근무자에 대한 순환인사 원칙 배제 ▶고위험업무에 대한 직무 미분리 ▶거액 입출금 등 중요 사항 점검 미흡 등을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과 다름없었다”라며 “허술한 내부 통제와 개인의 사욕이 만든 횡령 사건”이라고 말했다. 경남은행 횡령사건 첫 재판은 오는 2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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