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캠핑인가 이사인가

권유정 2023. 10. 1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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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학생들과 캠핑 프로젝트3] 연습만이 살길이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자립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여행, 캠핑, 농사, 라이딩, 메타버스 등 여다양한 활동 및 수업을 합니다. 자립과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보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기자말>

[권유정 기자]

학교에서 캠핑 프로젝트 수업을 시작한 것은 5년째지만 외부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한 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 도전이다.

첫 해에는 숙식에 필요한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텐트와 캠핑의자 밖에 없었다) 초보자들인지라 글램핑장을 이용했고, 2년 차에는 코로나19가 터졌다. 외부활동, 특히나 숙박을 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을 때였고, 별 수 없이 교내캠핑, 자라섬 당일치기 등의 대안으로 두 해를 보냈다.

지난해, 처음으로 도전한 자라섬에서의 1박은 그야말로 전쟁 같았다. 문제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 우선 하나는 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전쟁 같았던 1년 전 자라섬 캠핑
 
 이삿짐이 아니다. 캠핑짐을 싣기 위해 동원된 트럭.
ⓒ 권유정
 
캠핑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얼마나 많은 장비들이 필요한지. 타프, 텐트, 매트, 침낭, 망치, 테이블, 의자, 조명, 폴딩박스, 버너, 버너 바람막이, 부탄가스, 조리도구, 식기, 수저, 컵, 각종 식재료, 물, 수세미, 세제, 화로, 장작, 모기약, 세면도구, 여벌옷, 보조배터리 등등등 필수용품들만 갖춰도 목록이 줄줄이었다.

가족 단위로만 가도 짐이 한가득인 것이 캠핑인데, 우리는 심지어 단체였다! 30여 명의 캠핑장비를 챙기자 1톤 트럭이 차고 넘쳐서 승합차까지 동원해야 했다. 짐을 챙기는 것도, 다시 정리하는 것도, 과장을 좀 보태 이삿짐을 싸는 수준이었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내내 캠핑을 연습해 온 교내 잔디밭과 자라섬의 캠핑장이 너무 다른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은 대체로 일반화에 어려움을 보인다. 한 상황에서 학습한 기술을 다른 상황에 적용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더 다양한 경험 속에서 실제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비슷한 환경에서 조금 더 연습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비용을 지불하고 빌려야 하는 캠핑장에서 미리 연습을 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나 자라섬은 학교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 바닥이 나무데크와 보도블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유튜브 속 캠핑 전문가들은 적당히 발걸음이나 눈대중으로도 팩을 박을 위치를 정할 수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는 배우기가 어렵다. 그래서 타프스킨을 바닥에 펼쳐 놓고 폴대로 위치를 정하는 방식으로 연습을 해왔는데, 자라섬은 그 방식이 불가능했다.
 
 우리가 연습한 타프 설치 방식
ⓒ 권유정
 
캠핑장 바닥을 떡하니 차지한 나무데크와 보도블록, 사이사이 수목들은 아이들을 혼돈의 카오스로 몰아넣었다.

한 학기가 넘도록 틈틈이 타프 치는 법을 연습했건만… 낯선 환경에 적응력을 발휘하며 타프를 칠 수 있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타프보다 연습 기회가 적었던 텐트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날, 프로젝트 담당교사 네 명이 타프 5개, 4~5인용 텐트 5개, 6~7인용 텐트 2개, 도합 12개를 설치했고, 나는 밤새 삭신이 쑤셔 끙끙 앓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더 치밀한 캠핑 준비... 성취감이 높아졌다  

올해는 지난해의 뼈아픈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더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 일단 조별로 짐을 실을 수 있는 캠핑웨건과 풀세트로 갖추어진 조리도구를 새로 장만했다. 타프를 보다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줄도 싹 바꿨다. 

개인적으로는 불필요한 소비를 지양하고 미니멀라이프에 가깝게 살고자 하지만 발달장애 학생들과 함께 할 때 그런 생각은 사치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려면 연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구조화된 환경이다. 

예를 들어, 기존 타프 줄은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삼각스토퍼를 어떻게 돌려야 줄이 움직이고 고정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힘으로만 당기니 조절이 되지 않았고, 긴 줄을 엉키지 않도록 정리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납작하고 자동조절이 되는 줄로 바꾸자 교사의 도움 없이도 설치와 정리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또한 일일이 집게, 가위, 칼, 도마, 국자, 냄비받침 등을 찾아서 챙기기가 복잡했는데, 캠핑용 조리도구 세트를 갖추니 아이들 스스로 짐을 챙기기가 용이했다. 그리고 미리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아이들이 직접 확인하며 준비물을 챙기는 것을 연습했다. 한 주 전에는 조별 웨건과 폴딩박스에 모두 담아놓게 하여 캠핑 당일에는 그대로 트럭에 싣기만 하면 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 권유정
 
넉넉하지 않은 대안학교의 재정이지만 해마다 되는 대로 조금씩 캠핑용품들을 구입하여 늘려가는 이유이다.

뿐만 아니라 자라섬 캠핑을 앞두고는 텐트 설치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텐트는 그늘이 좁고 숙박을 하지 않는다면 타프보다 활용도가 현저히 낮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주로 타프를 치곤 했는데, 자라섬의 환경을 생각해 봤을 땐 아무리 연습을 해도 아이들이 지뢰 같은 장애물 사이에서 적당한 위치를 잡아 팩을 박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날이 아주 덥지 않으니 타프는 각 텐트 중간에, 두 조당 1개씩만 설치해 같이 쓰는 것으로 머리를 굴렸다. 대신 텐트 하나는 온전히 아이들끼리 설치할 수 있도록 집중적으로 연습하는 전략이었다. 

캠핑에 기대가 가득한 아이들은 합심하여 열심히 텐트 치는 법을 연습했다. 몇 주간 반복하자 개별 능력에 따라 할 수 있는 역할의 차이는 있었으나 모든 조가 거의 도움 없이 텐트를 완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자신들끼리 할 수 있다는 것에 성취감이 드높아진 어느 조는 담당교사에게 오지 말라며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 

십 년 넘게 발달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장 어려운 케이스는, 능력이 크게 부족한 아이도, 행동통제가 어려운 아이도 아니다. 그건 바로 지나치게 무기력한 아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아이들은 더디어도 분명히 성장한다.

그러나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의 경험으로 무기력이 학습되어 즐거움도, 의욕도, 목표도, 기대도 없이 텅 비어버린 아이는 변화의 정도가 몹시 미약하다. 인지나 기능이 부족한 아이보다 훨씬 더 변화가 어렵다. 오히려 능력이 양호한 아이들일수록 더 크게 무너져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실제로 5~6년 전 만난 한 아이는 중학교 무렵까지 장애판정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경계선 급의 인지능력을 갖고 있었다. 겉으로 두드러지는 행동 문제도 없고, 그저 조용한 아이였기에 아무도 그 아이의 속이 그렇게 곪아가고 있는지 몰랐다.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고,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대학에도 진학했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며 정원미달인 대학이 속출하는 시대인지라 일반대학들은 발달장애인에게도 입학의 문을 활짝 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곳이 태반이고, 그로 인한 부작용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건 우리 아이들이다.

아이는 홀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마침내 심각성을 눈치를 챈 부모님이 일반대학을 포기하고 우리 학교를 선택했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은 때였다.

11월 입학시험을 치를 때만 해도 소극적이지만 의사를 표현하고 문제를 풀던 아이는, 이듬해 3월 입학을 했을 땐 아예 말문이 닫혀 있었다. 누군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교실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개인위생 등 자기관리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마침내는 최소한의 신변자립조차 어려운 지경까지 다다랐다.

교육적인 접근만이 아니라 약물치료, 심리상담 등 다각도로 시도했으나 효과가 별로 없었다. 스스로 변화할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빨리 그 아이의 어려움을 알아챘더라면 어땠을까.

인지적인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스스로 병식을 인식하고 적절한 도움을 요청하기가 어렵다. 분노나 공격적인 형태로라도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밖으로 표출되면 차라리 낫다. 빠른 접근이 가능하니까.

더 심각한 경우는 눈에 띄지 않아 간과되는 아이들이다. 교실에서 그림자처럼, 숨만 쉬어도(당사자들의 표현이다) '문제'가 없으니 괜찮다고 합리화해선 안 된다.

변화하는 아이들을 보는 기쁨

무기력한 아이들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을 표현한다. 쉽게 포기하며 충분히 수행 가능한 과제에도 의욕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지시에 순응하고 주어진 일은 하지만 자발적인 시도는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귀찮은 척 반항하는 척 회피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적인 현실에서 도피하여 SNS나 게임 등 온라인 세상에만 몰두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어떠한 태도를 취하든 공통점은 그 내면에 자신은 형편없고 무능력하며, 노력해도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어 현재의 행복이나 미래의 희망 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문제가 드러나지 않아도 그대로 성인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사회생활은 더 어려워지고, 우울이나 조울, 조현병 등과 같은 정신병리적 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프로젝트 수업을 비롯한 우리 학교 1학년의 교육과정은 스무 해 넘도록 켜켜이 쌓인 상처들로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데에 중점을 둔다. 다행히 아직은 늦지 않아 자신감을 되찾고, 목표의식이 생기고, 삶의 즐거움을 느끼며 변화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직장생활이 주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잊힌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기에 있나 보다. 

호텔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캠핑 쯤이야'라고 생각했으나 예상치 못한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밍쑨.

* 발달장애 학생들과 캠핑 프로젝트 4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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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brunch.co.kr/@h-teacher)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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