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배우의 공허함을 적나라하게 그리다
[조영준 기자]
▲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 영화의 황제 > 스틸컷 |
ⓒ 부산국제영화제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라우 웨이치(유덕화 분)는 영화업계 최고의 스타다. 아내와의 불화 등 가정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대외적으로 비치는 그의 이미지는 완벽에 가깝다. 단 하나, 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영화의 처음에서 등장하는 홍콩필름어워즈의 시퀀스 역시 그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이번에도 시골 농부 연기를 했다는 성룡에게 (우리가 아는 그 성룡이 맞지만 극 중 내용이다) 밀려 남우주연상 수상에 실패한다. 심지어 수상자인 성룡은 영화제에 나타나지도 않는데, 웨이치가 무대에 올라 대리 수상을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만다. 그 상을 마치 자신이 받은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 최고의 배우가 맞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영화의 황제>는 업계 최고의 배우인 웨이치가 영화제 수상을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의 코미디 작품이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된 이 영화의 닝하오 감독은 17년 전인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또 한 편의 영화 <크레이지 스톤>으로 폐막작에 선정되었던 기억이 있는 인물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일들과 촬영을 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에피소드를 모아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오가며 흥미롭게 펼쳐내고 있다.
▲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 영화의 황제 > 스틸컷 |
ⓒ 부산국제영화제 |
자신 또한 평범한 농부 역할로 진지한 모습을 보여 영화제 수상을 할 것이라고 결심한 웨이치가 린하오 감독에게 연락을 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아직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눈앞에 산적해 있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감독은 요구하는 바가 많고, 해외 영화제 프로그래머와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투자마저 원활하게 받지 못하며 제작비마저 충분하지 않다.
현장에서의 어려움 역시 존재한다. 새로운 플랫폼이 요구하는 변화와 문화의 속도를 오래된 배우에 속하는 웨이치가 모두 따라가기는 어렵다. 주어지는 대로 따라 하면 억지로 할 수도 있겠지만 홍보와 조회 수에만 몰두한 나머지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지금의 방식은 영화배우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가 시골 마을을 체험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말에서 떨어지는 스턴트 연기를 직접 하겠다는 것도, 실제 돼지를 촬영 현장에 데려와 함께 촬영하겠다고 하는 것 모두에 그런 이유가 있다. 영화제의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이 방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는 조금도 알지 못한 채다.
03.
영화의 표면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소동에 가깝지만, 사실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소통의 부재가 존재하고, 영화는 그 지점의 주제 의식을 반복적으로 쌓아 올리고자 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아내와의 갈등 역시 같은 맥락이다. 남편이 업계 스타의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결혼 사실도 공개하지 못했고, 이혼 사실도 밝힐 수 없는 웨이치의 아내는 그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모습의 남편 앞에서 어떤 소통도 이루어낼 수 없다. 수상자인 성룡을 대신해 무대에 오르게 되는 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 영화의 황제 > 스틸컷 |
ⓒ 부산국제영화제 |
"회사도 네티즌도 진실에는 관심이 없어."
다소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고 있지만 곤경에 처하는 웨이치의 모습은 현실 속 스타의 삶을 일면 잘 표현해내고 있는 부분도 있다. 어딜 가나 몰래카메라나 도청을 의식하며 조심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이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적정 거리 이상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화려한 삶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는 그의 인생은 공허함 그 자체다. 반복되는 그런 행동 속에 그의 삶은 일정을 알리는 핸드폰의 알람 소리만으로 채워지고 그가 머무는 방 역시 적막과 외로움으로 채워지고 만다.
영화에 필요한 낙마 장면을 동물 학대로 저격당하며 인터넷상에서 악플 세례에 퇴출 운동의 상황에까지 내몰리게 되는 모습 역시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다. 그는 이 장면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며 할리우드의 유명 작품들에서도 매번 등장하는 장면인데 왜 자신만 가지고 그러냐고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한번 퍼지기 시작하는 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TV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속내를 밝히는 장면은 그래서 더 울림이 있다. 노력은 틀리지 않는 것이라며 왜 노력을 존중해주지 않느냐며 항변하는 그의 모습을 천천히 줌인해 들어가는 카메라는 그가 러닝타임 내내 쌓아온 이야기와 공명한다. 그의 행동이 모두 옳았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던 목표와 마음만큼은 진짜였다는 것을 이 시점에서는 관객들도 모두 이해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단점 하나로 다른 모든 장점마저 더럽히고 짓밟고 타락시키기도 하는데 바로 이 장면을 통해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05.
일부만을 언급했을 뿐이지만, 그 외에도 영화는 코미디라는 장르의 속성을 빌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영화 산업 내부의 문제점, 자본에 잠식된 산업 환경과 갑을 관계의 폐해, 예술을 대하는 개인의 태도와 의식까지. 이 모든 것들을 모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이유는 역시 유덕화라는 배우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이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장면이 하나 있다. 지하주차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웨이치를 향해 주차되어 있던 차들의 전조등이 하나둘씩 켜지며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부분. 수많은 헤드라이트가 반복적으로 깜빡이며 그를 비추는 모습이 마치 레드카펫의 포토월 위에 선 배우를 향해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환하게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 줄 수 있는 레드카펫 위와는 달리, 이 장면에서의 웨이치는 조금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때의 모습이야 말로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숨겨진 뒷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과정에서, 어쩌면 그 자리에 오르고 난 뒤에도 감내해야 할 세상으로부터의 무게 같은 것 말이다. 소통의 부재 속에서 일방적으로 우러러보는 자리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환상이 '영화의 황제'의 어깨 위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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