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전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

신아연 2023. 10. 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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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②]

저는 지난 9월 2~7일,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이 주관한 '일본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 관헌과 민간인들이 재일조선인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말합니다. 학살 당한 대부분이 먹고 살 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넌 일용직 노동자에, 부두 하역 잡부들, 그리고 그 식솔들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씨알(민초)이었을 뿐인데...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납니다. 그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치른 5박 6일간의 추모제 동행기를 쓰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신아연 기자]

 나리타 공항과 연결된 지하역사에서 만난 모녀
ⓒ 신아연
(* 지난 기사 관동대학살, 100년의 침묵을 깨우다 에서 이어집니다.)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은 변리 업무 관계로 장기 근무도 하셨지만, 일본을 처음 가본 저는 모든 것이 신기합니다.

사방으로 두리번거리며 팔방으로 사진을 찍어댑니다. 제게 기록은 본능과도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는 이유죠. 심지어 공중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면서 변기 모양만 약간 달라도 사진에 담아와 그것에 대해 글을 씁니다.

일본말을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저를 '순한 양'으로 만듭니다. 내 생각, 내 주장, 심지어 걱정 근심조차 끼어들 여지가 없지요.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그저 인솔자만 따라다니면 되니까요. 엄마 손을 붙잡고 조잘대는 사진 속 꼬마처럼. 

케이세이 우에노역으로 가는 열차 창을 통해 동경 외곽을 바라봅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빠져 나와 처음 접하는 일본의 또다른 실상. 푸른 하늘과 흰 뭉게구름이 검은색 일색의 공항 내부와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열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동경의 외곽지역
ⓒ 신아연
 
비행기로 겨우 2시간 30분 거리일 뿐인 우리나라와 일본의 하늘이 이렇게 다를 수가! 일본 하늘에 대한 탄성과, 한국 하늘에 대한 탄식이 동시에 나옵니다.

거의 모두 새벽 2시 이전에 집에서 출발한 일행은 정오 무렵 케이세이 우에노역에 도착했을 때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도 탑승까지 시간이 빠듯하여 커피 한 잔 마실 새가 없었으니 전날 저녁 먹은 이후 거의 16~18시간 공복상태였으니까요. 공항 가는 차 안에서 오이를 먹은 저와 김이사장님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던 편이죠.

그러나 2시 추모 행사에 맞추려면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역앞 대중 식당에서 적당히 허기만 면한 후 추모 장소인 야히로 행 열차를 바로 타야 했습니다.

요기를 한 후 야히로역을 향해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가 열리는 장소와 가까운 야히로역
ⓒ 신민자
 
일행은 또 바삐 움직입니다. 각자 행장은 옷가방 하나로 단촐하지만, 행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나눠지고, 같이 들고 하느라 분주히 챙길 것들이 많았습니다.

일본어를 하실 줄 아는 김이사장님이 앞장을 서서 일행을 인솔하셨지요. 김이사장님은 야히로 행 열차 시각에 맞추려면 그만 먹고 이제 일어나야 한다며, 케이세이 우에노역 인근 식당에서 후식으로 제공되는 아이스크림도 드시지 않으셨지요. 평소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시는 분이.

식당 주인에게 야히로역 가는 방법을 물으니 아예 안내문이 비치되어 있더라며 참 친절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정신없이 밥을 먹는 동안 이사장님은 우리에 앞서 채비를 하셨던 것이죠.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편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누군가를 그저 따라가는 것, 내 길을 맡기는 것에서 오는 천진한 평안함!

드디어 야히로역에, 그리고 숙소에. 이 숙소에 대해서도 할 말이 한 보따리. 숙소의 이름은 'NICE'지만 거의 나이스하지 않았던.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고생들로 인해 더 보람이 느껴지고 더 많은 이야기거리가 생기는 법이죠.

"나이스 호스텔이 나이스하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하네요."
"일본은 하늘만 컬러고요, 거리와 사람은 대체로 흑백이죠. 튀면 안 되는 문화라..."

사람들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일본을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고 할까요? 지인들 중에는 최소 5번, 최고 100번까지도 다녀오셨다고 하네요. 여행으로든, 일로든 일본은 정말 우리와 가까운 나라임을 실감합니다.

아, 참 숙소가 '나이스'하지 않았던 이유요? 곧 말씀드릴게요. 

(*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일행이 묵었던 야히로 나이스 호스텔
ⓒ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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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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