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론자 중용한 기시다 총리, 윤 대통령의 엉뚱한 다짐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 손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과 구도 야스시 겐론NPO 대표가 지난 12일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두 연구소가 공동 실시한 '제11회 한일 국민 상호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호감도가 2013년 이래 가장 좋다는 조사 결과가 12일 발표됐다. 양국 민간 연구소인 동아시아연구원(EAI)과 겐론NPO(言論NPO)가 양 국민 각 1천 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제11회 한일 국민 상호인식 조사'에 따르면, '한국이 좋다' 또는 '한국이 대체로 좋다'고 응답한 일본인은 37.4%다.
동아시아연구원 홈페이지에 실린 12일 자 'EAI 여론 브리핑'은 2013년 이후의 조사에서 이 비율이 30%를 넘은 것은 2013년(31.1%)과 2022년(30.4%)이었음을 보여준다. 금년에는 눈에 띄게 수치가 개선된 셈이다.
그에 비해 '일본이 좋다' 혹은 '일본이 대체로 좋다'고 대답한 한국인은 28.9%다. 지난 11년간의 조사에서 이보다 높은 수치가 나온 것은 2019년(31.7%)과 2022년(30.6%)이다. 28.9%는 3번째에 해당하는 수치이기는 하지만, 한일관계가 변하기 시작한 2022년보다는 약간 낮아진 수치다. 윤석열 정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금년 들어 대일 호감도가 다소나마 낮아진 것이다.
이 조사에 대한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연세대 교수)과 김양규 수석연구원, 박한수 연구원의 분석을 담은 12일자 'EAI 이슈 브리핑'은 양국 국민들의 태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정부의 태도'라는 변수를 설명한다.
이 글은 '상대국 인상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는 관계 개선에 대한 정부 정책과 태도'라는 소제목하에서 "한국 여론은 자국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노력에 적극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며 "관계 개선의 핵심 이슈는 강제동원 문제의 해법인데, 한국 정부가 추진한 제3자 변제안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높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뒤 이렇게 정리한다.
"요컨대, 한국 여론은 한일 양국 정부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하면 일본 국민들은 한국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태도를 높이 평가하며, 부정 평가 역시 한국보다 낮다."
한국인들은 전범 기업을 비호하는 한일 양국 정부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 반면, 일본인들은 그런 양국 정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이 좋다는 한국인 28.9%'와 '한국이 좋다는 일본인 37.4%'의 비율 차이를 설명해주는 결정적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9월 20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 총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 AFP=연합뉴스 |
즉, 이번 조사에서 나타나는 것은 한국인들이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기시다 후미오 정부는 '성의'가 없다. 이것이 대일 불신을 낳는 한 가지 요인이다.
이는 지난달 29일의 자민당 인사 조치에서도 나타난다. 한국 추석날인 이날, 자민당은 한국에 대한 적대적 역사관으로 논란을 빚는 스기타 미오 중의원 의원과 마쓰카와 루이 참의원 의원을 각각 환경부회장대리와 부간사장 겸 국방부회장대리에 임명했다.
이번 인사가 얼마나 어이없는가는 9월 29일이라는 날짜에서도 나타난다. 이날은 두 의원이 극우적 역사관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이런 때에 두 의원을 중용했으니 한국에 대한 기시다 내각과 자민당의 인식이 더욱 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달 20일 자 <아사히신문> '스기타 미오 의원의 인권침범 인정(杉田水脈議員の人権侵犯 認定)' 등에서 확인되듯이, 스기타는 소수민족을 차별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 일로 인해 9월 2일 삿포르법무국으로부터 "인권 침범의 사실이 있다"는 공식 지적을 받았다.
▲ 스키타 미오. <주전장> 스틸컷. |
ⓒ 노맨 프로덕션 |
2019년 개봉된 미키 데자키 감독의 다큐 영화 <주전장>에 출연한 스기타는 위안부 피해자를 '자칭 위안부'로 폄하하면서 이들의 피해 증거가 전혀 없다는 막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다. 그는 "자칭 위안부라는 할머니들의 증언밖에 없어요"라며 "지금 와서 보면 아무런 증거가 없잖아요"라고 발언했다. 일본 정부는 1993년 고노담화를 통해 가해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는 그런 것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그런 스기타를 중용한 일에 관해 12일 자 <가나로코>는 우려를 표했다. 도쿄 인근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본사를 두고 있고 1890년에 창간된 <가나가와신문>의 뉴스 사이트인 <가나로코>는 '자민, 스기타·마쓰가와 두 의원을 중용(自民が杉田、松川両議員を重用)'에서 "자민당이 스기타 미오, 마쓰가와 루이 두 의원을 요직에 기용해 파문을 부르고 있다"며 이렇게 평했다.
"스기타 의원이 아이누민족이나 재일코리안 사람들을 야유한 투고를 삿포르법무국이 '인권침범'으로 인정. 마쓰가와 의원도 당 여성국에 의한 프랑스 연수로 비판을 불렀기 때문이다. 2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에서 역사수정주의적 주장을 퍼트리는 역사전(戰)의 유력한 담당자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며, (이들에 대한) 중용은 외교의 장에서 '역사전 중시'의 표현이라는 시각이 있다. 일본에 의한 식민 지배나 침략전쟁 희생자의 존엄을 짓밟는다는 메시지를 발신할 수도 있다고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1971년생으로 주한일본대사관 참사관 등을 지낸 전직 외교관인 마쓰가와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전범 기업의 책임을 떠안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할 당시 "한국이 스스로 해결할 문제이고, 일본은 더 이상 사죄할 필요가 없다"는 강경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미 정설로 굳어진 일본의 침략 범죄를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스기타 미오 등과 함께 역사수정주의자로 분류되는 마쓰가와는 지난 7월 자민당 여성국 프랑스 연수 중, 두 손바닥을 마주한 채로 머리 위로 올려 탑 모양을 흉내 내는 포즈로 파리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어 "관광 간 거냐?"는 여론의 몰매를 맞았다. 이 때문에 8월 하순에 당직을 사퇴한 마쓰가와를 기시다 총리는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중용했다. 기시다 내각이 이웃나라들과의 역사전쟁에 무게를 싣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는 자국민을 상대로 역사전쟁을 벌이는 반면, 기시다 내각은 한국과의 역사전쟁에 여전히 전의를 불태우는 모습을 반영하는 장면이다.
또한 한국을 상대로 극우적 발언을 쏟아내는 스기타와 마쓰가와를 논란의 와중에도 중용한 사실은 기시다가 한국인들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기시다의 이런 모습이 28.9% 대 37.4%의 차이에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추석인 지난달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원폭 피해 동포 오찬 간담회에서 권준오 한국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의 답사를 듣고 있다. |
ⓒ 연합뉴스 |
김건희 여사는 11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재일본대한민국부인회 임원들과의 차담회에서 지난 5월에 있었던 한일 양국 정상의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 참배를 두고 "한일관계 재정립을 통해 여러분께 힘이 되고자 한 대통령 결단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은 스기타·마쓰카와가 중용된 날인 지난달 추석에 원폭 피해자들과 오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우리 정부는 자유·인권·법치의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협력하면서 역내 그리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증진해 나갈 것입니다", "한일관계를 더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우리 동포를 잘 살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라고 발언했다.
대통령 부부의 발언에서는 한일관계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부심 그리고 낙관적 전망이 묻어나지만, 위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이 우리 국민들은 한일관계에 불만을 품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은 그런 감정이 기시다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가 그처럼 성의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일본의 잘못에도 기인하지만, 그런 일본을 나무라지 않는 윤석열 정부의 책임에도 기인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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