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與 관계 변화 없이 국민의힘 혁신위 띄워도 무용지물
'수도권 위기론' 급부상…혁신위 언급
尹 가까운 현 지도부 인적 쇄신 불가피
국민의힘이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충격적인 참패를 겪은 뒤 대책 마련을 두고 고심에 빠졌다. 내년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6개월. 변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가 당 안팎에서 제시되지만, 핵심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사이 관계 정립’을 새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17.15%포인트 차이로 패했다. 이 지역 국회의원이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고 전통적인 강세 지역이라고 하지만, 핑계가 될 수 없다. 2021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2.2%포인트로 졌고,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이 2.6%포인트 이겼던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도부가 매일 같이 강서구를 찾았으며, 국민의힘 의원들이 동 단위로 누볐을 정도로 총력을 기울였다. 한 자릿수도 아닌 두 자릿수 패배는 여당으로서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충격적인 참패
패배의 원인은 굳이 멀리 가서 찾을 필요도 없다. 국민의힘은 애초 보궐선거 원인 제공자를 다시 공천하면서부터 스텝이 꼬였다. 당초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번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당내에서는 당규에 따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무공천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고 근거 규정도 있었다. 지방선거 공직후보자 추천 규정에 관한 국민의힘 당규 제39조 3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인해 재·보궐선거가 발생한 경우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당해 선거구의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광복절 특사 대상에 포함한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 김 전 구청장은 대법원의 징역형 집행유예 확정판결(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청장직을 상실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은 김 후보의 피선거권을 회복시켰다. 보궐선거의 책임이 있는 만큼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는 당내 여론도 이를 계기로 비리 또는 공직선거법 위반에 따른 직 상실이 아니기 때문에 공천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정우택 국회부의장은 8월 27일 자신의 SNS를 통해 "법리로 공익 제보를 무력화해 사회 정의 실현의 길을 가로막은 사법 폭거에 의한 재·보궐"이라며 "그렇기에 당헌 당규상 무공천 사유로 보기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총선을 앞두고 그런 변수(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만들지 않기 위해 강서구청장 공천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이해는 갑니다만 그것은 비겁한 처사"라며 "공익을 위한 폭로로 선고유예를 해도 될 그런 사안을 굳이 집행유예를 했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보고 대통령께서 즉시 사면한 것이 아니냐(8월 25일)"고 했다.
결국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후보를 내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후 절차상 여론조사를 통한 경선이라는 과정을 거쳤지만, 내용 면에서는 사실상 ‘김태우 밀어주기’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보궐선거를 통해 국민의힘은 수도권의 차가운 민심을 확인했다. "멀쩡한 배에 구멍이나 내는 승객은 탑승할 수 없다(이철규 사무총장 8월 16일 발언)"며 '수도권 위기론'을 언급한 의원들에 직격탄을 날렸던 국민의힘 지도부가 이번에는 집중포화 대상이 됐다.
여당의 패착, 그 원인은
여당으로서는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위험한 선택을 할 유인이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처럼 무리수를 연달아 놓은 이면에는 윤 대통령과 여당과의 관계 문제가 있었다.
실제 현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 대표자 선출 기준(당원 투표 100%)을 거치며 ‘윤심(윤 대통령 의중)’ 지도부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더욱이 지명직 지도부 역시 모두 친윤계 일색이다. 이번 보궐선거 과정에서만 보더라도 윤 대통령과 여당은 사실상 상하 수직의 일방적인 관계로 평가된다. 여당은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대로 된 역할을 전혀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게 당 안팎의 중론이다.
유승민 전 의원은 12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와 관련해 김기현 지도부에 대해 책임을 물을 생각이 없다"며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권한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언급했다. 유 전 의원은 "당에서는 그 후보를 내기 싫었고 당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면 이번 재·보궐선거는 무공천으로 갈 수도 있었던 상황인데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의지에 따라 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후보를 냈고 선거 운동만 당에서 뒤치다꺼리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어떻게 풀 것인가
김 대표는 이번 보궐선거 참패의 수습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13일 최고위원과 릴레이 간담회를 열었고, 15일 오후 긴급 의원총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혁신위 발족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수도권 위기론을 극복하겠다는 방책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를 재정립하지 않고서 혁신위를 발족해봐야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비윤’ 인물로 평가받는 이준석 전 대표가 띄웠던 ‘최재형 혁신위원회’가 그랬다. 이 전 대표가 6·1 지방선거 직후 감사원장 출신인 최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혁신위를 띄웠지만, 공교롭게도 한 달 뒤 이 전 대표는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성 상납 의혹 증거인멸 교사와 관련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당원권 정지 6개월 처분을 받았다. 윤 대통령과 친윤계 의원들의 ‘정치 보복’이라는 뒷말이 무성했다. 이 전 대표가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혁신위의 동력이 떨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장경태·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 사례에서 보듯 혁신위가 제대로 구실을 하기 위해선 비상대책위원회에 준하는 권한을 주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번 난관을 통과할 수 있는 열쇠는 김 대표가 쥐고 있다. 김 대표가 어느 정도 강도의 쇄신안을 내놓느냐에 따라 민심은 달라질 수 있다. 홍문표 의원은 최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의 중요성을 우리 스스로가 키워 전국을 뒤흔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이 선거에 개입하고 만들었었던 분들이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이 민심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당에 가했던 통제나 수직적인 용산과 여당 사이의 수직적인 당정 관계를 포기하고 당은 당대로 총선에 이기기 위해 완전히 백지에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도록 하는 양보가 있다면 총선 승리 가망이 있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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