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노래엔 웃었다" 통증도 줄인 '집에서 떠난 하늘소풍'
“‘덕분에 편안하게 집에서 하늘로 소풍을 떠나셨다. 그간 감사했다’ 고 하시더라고요….”
지난 12일 오전 간밤의 부고를 전하는 김영주(43) 간호사의 눈가는 젖어있었다. 김 간호사의 호스피스 환자였던 조숙자(86)씨는 이날 새벽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막내딸 박혜연(52)씨 등 가족이 곁을 지킨 가운데 침대에 누워 조용히 숨을 거뒀다고 한다. 베게 옆엔 조씨가 생전 즐겨 듣던 노래들을 부른 가수 임영웅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김 간호사는 “한 달 사이 식사를 잘 못 하고 상태가 안 좋아졌다”며 “어제 뵈었을 때 임영웅 이야기에 미소를 지으셨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됐다”고 말했다.
“병원 싫다” 뜻 따라 시작한 호스피스
처음엔 일반병동과 외래에서 진료받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자문형 호스피스로 시작했지만 혜연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서 가정형 호스피스로 전환했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전문기관 호스피스팀이 가정을 방문해 돌봄 및 전문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평소엔 혜연씨가 조씨를 돌봤고 1주일에 한 번씩 김 간호사가 가정을 방문해 증상을 점검했다. 때론 가정형 호스피스팀에 있는 박중철 가정의학과 교수, 박혜민·성보름 사회복지사 등도 조씨를 찾아 완화치료에 힘을 보탰다.
가정형 호스피스에 되찾은 미소
가장 편안한 곳에서 원하는 것을 하니 고통이 줄었다. 거동은 여전히 힘겨웠지만, 식욕이 생겼다. 임영웅의 노래를 들을 때면 굳어가던 입술 근육이 조금씩 움직였다. 주로 5점에 머물렀던 통증숫자평가척도(NRS·10점이 최대)가 3점까지 떨어졌고 얼굴을 찡그리는 날이 줄었다. 몸 상태가 나아지진 않았지만, 어머니가 힘겨워하는 모습은 덜 볼 수 있었다는 게 혜연씨의 말이다.
하지만 지난 여름쯤부터 끼니를 거르는 날이 늘었다. 암환자용 단백질 보충제도 넘기지 못하면서 조씨는 야위어갔다. 호흡이 힘겨운 날도 늘면서 가족들도 임종이 다가왔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김 간호사의 노력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지난 11일 오전 10시 김 간호사는 박 교수와 함께 조씨를 찾았다. 환자 상태를 살피고 말동무를 하면서 수액을 놨다. 며칠간 잠을 못 이뤘다던 조씨는 이날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방안에 들어온 모기를 잡겠다”며 연신 손바닥을 치던 의료진에게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프지 마세요”라는 동행한 기자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는데 가족이 아닌 이들에게 한 엄마의 마지막 대답이 됐다고 혜연씨는 전했다.
13일 출근 전 조씨의 빈소를 찾은 김 간호사는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마지막 전담 간호사는 나’라는 생각으로 환자와 가족을 돕는 일이다”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환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환자와의 시간을 정리하기 위한 애도 차원에서 되도록 호스피스 환자의 장례식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2022 국가 호스피스 완화의료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기준 국내 등록된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112곳이다. 그중 가정 호스피스를 제공하는 곳은 39곳(약 35%)이다. “365일 응급 전화를 받아야 하고, 환자 집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수요보다 지원자가 부족하다”는 게 의료계의 분석이다. 박중철 교수는 “최근 의료기관에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임종 환자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우려가 있다”며 “장기적으론 가정형 호스피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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