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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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은 경복궁의 가장 큰 문이다.
각계의 반대를 이기지 못한 조선총독부가 대신 광화문을 경복궁 동쪽 건춘문 쪽으로 이전했다.
1968년 복원된 광화문은 고증이 엉터리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필체로 만든 '광화문'은 한자가 아니라 한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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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은 경복궁의 가장 큰 문이다. 조선의 개국 공신 정도전이 경복궁을 설계하면서 지은 이 문의 이름은 ‘정문(正門)’이었다. 이름을 ‘광화(光化)’로 고치도록 한 이는 세종대왕이었다. 다만 세종실록에는 집현전 학자들이 어떤 논거로 이런 이름을 내놓았는지 분명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광화의 어원에 대한 추측이 여럿이다. 가장 유력한 설은 ‘광화’를 ‘임금의 어진 덕으로 백성들을 감화시킨다’는 뜻이 담긴 ‘덕화(德化)’로 풀이하는 해석이다. 고대 중국 위나라의 역사서에 나오는 한 대목을 인용한 것이다. 요즘 말로 옮기자면 ‘좋은 정치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뜻이다. 광화가 태평성대라는 뜻의 ‘광천화일(光天化日)’을 줄인 말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의 출처가 세종 이후 청나라 시대의 책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광화문은 수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광화문은 270년 넘도록 방치됐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중건했으나 일제 강점기에 철거될뻔 했다. 각계의 반대를 이기지 못한 조선총독부가 대신 광화문을 경복궁 동쪽 건춘문 쪽으로 이전했다. 6·25 전쟁 중에는 폭격으로 석축 위 문루가 완전히 사라졌다. 1968년 복원된 광화문은 고증이 엉터리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필체로 만든 ‘광화문’은 한자가 아니라 한글이었다.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광화문은 위치도 비뚤어져 있었다. 2010년엔 복원된지 3개월 밖에 안된 현판에 균열이 발생했다.
2018년부터 다시 대대적인 발굴과 복원 작업에 들어간 광화문이 새 단장을 마치고 15일 일반에 공개된다. 현판도 155년 전 중건 당시 모습을 재현한다. 검정색 바탕에 금색 글씨로 한자로 새겨진 현판이다. 임금의 행차 등에 쓰이던 광화문 월대도 100여년 만에 원래의 위용을 드러낸다.
광화문의 복원을 맞아 한국 정치도 복원되기를 희망한다. 여야 정치인들이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정치를 회복하는데 앞장서기를 기대해 본다.
전석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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