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보다 바다… 마약 해상 밀수 5년 새 10배로
2021년 적발 마약 83%가 선박 이용
총 837㎏으로 2400만명 투약 가능
해경 인력 태부족… 바닷길 무방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1월 19일. 부산신항에 낡은 화물선 한 척이 입항했다.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공화국 소속 선박이었다. 콜롬비아 카르타헤나항에서 출발한 이 배에는 그리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국적의 선원 24명이 탑승해 있었다.
해양경찰청이 이 선박을 쫓기 시작한 건 입항 사흘 전부터였다. 배에 다량의 마약이 실렸다는 첩보가 입수되면서다. 해경은 해당 선박이 파나마를 거쳐 우리 해역에 들어오기까지 예의주시하다 입항과 동시에 들이닥쳤다.
해경은 선박 기관실 구석에서 코카인 1㎏이 각각 포장된 상자 35개를 발견했다. 상자 포장지에는 콜롬비아 마약범죄 조직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전갈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코카인 35㎏이면 10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시가로는 1000억원 상당이었다.
해경 등에 따르면 2021년에만 모두 837.2㎏의 마약이 선박을 통해 국내로 밀반입되다 적발됐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2021년 주요 마약류 밀반입 압수량은 1016㎏에 이르는데, 선박을 루트로 한 밀반입이 전체의 82.6%나 됐다. 해경은 코로나19 유행으로 항공기 운항이 크게 줄어들자 국내외 마약범죄 조직이 선박을 주요 밀반입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마약 밀반입뿐 아니라 해경 관할지에서의 마약범죄 적발 건수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8년 90건에서 2019년 173 건, 2020년 412건, 2021년 518건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962건에 달했다. 5년 새 1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올해의 경우 지난달까지 이미 913건이 적발돼 지난해 적발 건수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이는 해경 담당 지역에서 발생한 어촌 내 양귀비 등 불법재배, 외국인 선원 등에 의한 마약 투약 등이 모두 포함된 통계다.
외국인 마약범죄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해경에 붙잡힌 외국인 마약사범은 2018년 4명이었던 게 2019년 20명, 2020년 38명, 2021년 65명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36명으로 줄었지만, 당시 증가세로 돌아서 올해 9월 기준 51명이 적발됐다. 지난 8월 전남 영암에서 대마를 몰래 재배하던 태국인 조선소 노동자 3명이 해경에 검거됐는데, 이들은 대마를 불법 재배했을 뿐 아니라 태국에서 많이 유통되는 신종 마약 ‘야바’를 투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경은 국내에 거주하며 수산업 등에 종사하는 외국인 외에도 외국 국적 선원에 의한 마약 투약 및 유통 범죄가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국내 선원 중 외국인 비율은 45%(2만7000여명) 정도다. 이 중 동남아 국적자가 95%(2만6000명)에 달한다. 태국에서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함량이 0.2% 미만인 대마류에 대해 합법화하기로 하면서 외국인 선원에 의한 마약 유통 우려가 더 커지는 상황이다.
해경은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해상 단속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거듭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지만, 바닷길 단속은 여전히 취약한 것이다.
현재 해경 내 마약범죄 전담 수사관은 모두 26명이다. 해경청별로 4~5명 수준인데, 관할 검찰청 내 마약 수사관보다 훨씬 적은 인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13명만 항시 마약범죄 수사에 투입될 수 있는 직제 내 정원이고, 나머지는 각 청에서 임시로 배치한 인원이다.
단순 마약범죄 단속과 수사에도 인력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밀반입 단속까지 나서기엔 역부족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부산신항 코카인 사건 이후 해경이 적발한 밀반입 단속 건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해경 관계자는 “해상 밀반입은 지금도 계속되는 것으로 의심되지만, 전담 인력이 부족하니 단속이 이뤄지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해경은 마약범죄 담당 인력을 증원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초 해경은 컨트롤타워인 형사마약과를 신설하고 본청을 제외한 지방해경청 소속 전담 수사관을 30명까지 늘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 논의 과정에서 수용되지 않아 신설 조직은 정식 직제에 포함할 수 없게 됐다.
해경은 마약범죄 대응 예산도 더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경에서 추산한 마약범죄 전용 예산은 올해 7억5000만원가량 됐고, 내년에는 약 12억원이 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약 밀반입 단속을 위한 장비 도입에 쓰일 예산은 확보됐다. 그러나 관련 첩보 수집을 위한 해외 활동, 현지 정보원 관리 등에 쓰일 수사활동비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해경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마약범죄 차단을 위해서는 해경의 밀반입 단속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목포해양대 연구팀은 치안정책연구소에 게재한 논문에서 “해경은 마약범죄에 대해 다른 수사기관보다 수사 인력과 체계가 열악하다”며 “(수사부서를) 과 단위로 상향 조정하고 인력 및 장비를 보강하거나 미국 해안경비대 등과의 인력 교환으로 첩보 입수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정신교 목포해양대 해양경찰학부 교수는 “최근 우편이나 택배를 이용한 마약 밀반입이 늘고는 있지만 한 번에 대량의 마약을 들여올 수 있는 선박을 통한 밀반입이 규모로는 최대”라며 “넓은 바다에서 현재의 적은 인력만으로는 밀반입 단속이 어렵고 첩보가 없으면 적발하기도 쉽지 않아 전담 인력과 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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