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묵상도 詩처럼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 [우성규 기자의 걷기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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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에는 시인으로, 교육자의 눈에는 교육자로, 사상가의 눈에는 사상가로, 언론인의 눈에는 언론인으로, 또한 역사가의 눈에는 역사가로 보이는 만물상 같은 인물이었다.(중략)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구도자적 인물이고 시대의 부름에 따라 살고자 모든 전통과 교리의 속박을 깨트린 자유인이었다."
무섭도록 솔직한 성품의 시인 김수영은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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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에는 시인으로, 교육자의 눈에는 교육자로, 사상가의 눈에는 사상가로, 언론인의 눈에는 언론인으로, 또한 역사가의 눈에는 역사가로 보이는 만물상 같은 인물이었다.(중략)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구도자적 인물이고 시대의 부름에 따라 살고자 모든 전통과 교리의 속박을 깨트린 자유인이었다.”
함석헌기념사업회가 비폭력 평화주의 사상가 함석헌(1901~1989) 선생을 표현한 글귀다. 10월의 걷기 묵상은 서울지하철 4호선 쌍문역에서 시작한다. 4번 출구로 나와 교차로를 건너면 주택가 골목 안쪽에 함석헌 기념관이 있다. 함 선생이 말년을 보낸 자택을 기념관으로 개조했다.
선생의 서재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붓 벼루 종이 먹의 문방사우와 함께 세로줄로 표기된 개역한글 성경이 키 작은 책상에 펼쳐져 있다. 책장 한쪽엔 우치무라 간조의 ‘일일일생(一日一生)’, 공동번역 성서, 마하트마 간디 평전이 나란히 꽂혀 있다. 매일 묵상이 선생의 힘이었을 것이다.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란 시를 쓴 선생에 대해 ‘성서조선’을 함께 발행한 친구 김교신은 “바라보는 비로봉이 위대하였지만, 나와 동행하는 자 중에 더욱 숭고한 자를 보았다”고 말하며 석헌을 높였다. 평생 우정을 이어간 성산 장기려 박사는 “한국 사람은 오백년 후에나 함석헌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는 “선생은 싸우는 평화주의자”라고 평했다.
기념관을 나서 대로변을 따라 내려오다 길을 건너면 편지 문학관을 만난다. 도봉문화원에 위치한 곳으로 디지털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아날로그 감수성을 내뿜는 편지 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경북 안동 일직교회 종지기였던 아동문학가 권정생이 역시 아동문학가이자 글쓰기 교육자였던 이오덕에게 “새해에는 절대 아프지 말아 주세요”라며 눈사람 같은 아이와 소나무를 스케치해 보낸 그림 연하장이 눈에 띈다. 이오덕은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무명 저고리와 엄마’를 쓴 권정생을 찾아갔고, 이때부터 둘은 열두 살 나이 차를 뛰어넘어 2000년대 초반까지 30년간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오덕은 권정생의 글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의 작품을 알렸고, 권정생은 죽을힘을 다해 ‘강아지똥’ ‘몽실 언니’ 등의 동화를 썼다.
편지 문학관을 나와 북북서 방향으로 대로변을 걷다 보면 쌍문동에 거주했던 감리교 성도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딴 전태일길이 나온다. 도봉구가 ‘발자국길’로 명명한 시냇가 옆 보행로 쪽으로 계속 걸으면 김수영 문학관이 종착지다. ‘우리 시의 가장 벅찬 젊음’으로 불린 시인 김수영(1921~1968)의 삶과 육필이 그대로 남아있다.
무섭도록 솔직한 성품의 시인 김수영은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썼다. 걷기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며 글과 삶을 몸으로 새기는 것이 걷기 묵상이다.
문학관 2층엔 시인의 서재가 복원돼 있다. ‘상주사심’(常住死心) 호쾌한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시인의 좌우명이다. 교회가 많다고 푸념하는 글을 쓰기도 했던 시인은 좌우명 그대로 어느 날 버스 사고를 당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문학관을 나서면 북한산과 도봉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을날 노을로 물드는 산들을 바라보며 고개 넘어 북한산우이역까지 걸은 뒤 오늘의 걷기를 마무리한다.
글·사진=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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