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아닌, 현장에서 찾아낸 ‘해결책’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15)

2023. 10. 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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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의 비극을 넘어

‘공유의 비극을 넘어’는 노벨 경제학상 최초 여성 수상자이자 인디애나대 블루밍턴캠퍼스 교수인 엘리너 오스트롬이 지은 책이다. 주 내용은 ‘공유자원의 비극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다.

미국 정치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평생 개인의 무분별한 이익 추구가 공동체 전체를 파멸시키는 ‘공유지의 비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에 헌신했다. 그녀는 공유자원의 비극 문제는 세 가지 모델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유재의 비극, 죄수의 딜레마 게임, 그리고 집합 행동의 논리다. 오스트롬은 ‘공유지의 비극’ 문제 해결을 위해 시장이나 정부 권력이 아닌 공동체 자율 규약을 통한 제3의 길을 제시했다. 이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의 문제를 고민하던 세계 각국 관료와 학자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2009년 여성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됐다.

책은 공유자원의 비극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논의한다. 그러므로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유자원의 비극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공유자원의 비극 개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개릿 하딘이다. 그는 1968년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 ‘The Tragedy of the Commons’에서 공유자원의 비극 개념을 소개했다. 해당 논문은 자원의 과다 이용 문제를 다뤘다. 이 논문에서 하딘은 한정된 자원이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는 상황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가 결국 자원의 파괴와 전체 집단의 손해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하딘은 공유자원의 비극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00마리의 양을 기를 수 있는 제한된 공유지가 있다고 치자. 100마리 이상의 양을 기르면 결국 목초지는 과도하게 풀이 뜯겨 점차 황폐해져갈 것이다. 그러면 축산업자들은 당연히 황폐화가 되기 전에 너도나도 공유지를 이용할 것이다. 자신의 부담이 들지 않는 공짜기 때문에, 공유지에 양을 계속 풀어놓기만 하지 줄이지는 않는다. 결국 풀이 없어진 초지에는 양을 기를 수 없어 축산업자 전체가 손해를 보게 된다.”

공유자원의 비극은 개인의 이익 추구에 의해 전체의 이익이 파괴돼 공멸을 자초한다는 시장 실패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의 주장에 배치된다. 공유자원을 쓰는 개인은 분명히 자신의 이익을 열심히 추구했는데 결과는 사회 전체의 이익 증대가 아닌 사회 이익의 축소와 파멸이다. 개별 주체의 합리성과 자유가 사회 전체의 합리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제학보다 정치학에 더 가까운 오스트롬의 연구

공유자원의 비극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게 제시돼왔다.

예를 들어, 하딘은 원 논문에서 공유자원의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규제와 사유 재화 논리를 제시했다. 우선 공유자원의 사유화를 통해 자원 사용의 책임을 명확히 하자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가 법률이나 규제를 통해 자원 오남용을 방지하고 자원 사용에 대해 사용자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사회 전체가 책임감을 갖고 자원을 보호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해결책은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른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는 공유자원의 비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스의 정리에 기반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코스의 정리란 협상을 통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민간 경제 주체들이 자원 배분 과정에서 아무런 비용을 치르지 않고 협상할 수 있다면, 소유자원이 최적의 상태로 각자에게 돌아간다는 설명이다. 코스는 이 개념을 공유자원에 적용하자고 했다. 공유자원 소유권을 특정 개인에게 주면, 이후 특정 공유자원 소유권을 가진 사람들끼리 협상을 통해 최적의 형태로 공유지를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코스의 정리는 특정 조건(재산권의 명확성, 거래비용의 부재 등)에서만 성립하므로, 현실에서는 제한적인 적용성을 가질 수 있다는 한계가 명확했다.

오스트롬은 기존의 이론적인 접근이 아닌, 실제 사례를 공부했다. 성공적으로 공유자원을 관리하는 사례들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다양한 사회와 문화에서 공유자원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한 여러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오스트롬은 공유자원의 비극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시장 아니면 국가 중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스트롬은 책에서 개인을 통제하고 질서를 만드는 정부와 기업이 외부 권위에 의존하며 하향식으로 명령하고 힘을 행사하는 기구라고 분석했다. 이런 기구들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지만, 모든 문제의 해답이 돼주진 못한다. 기후변화 같은 공유지의 비극 문제가 그 예시다. 여기서 오스트롬은 하향식 권위 기구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며, 상향식으로 의사 결정이 진행되는, 공동체 구성원 자율의 질서 역시 존재한다고 말한다.

정부와 국가 권력의 개입 없이 공유재를 관리하려던 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있었다. 스위스 방목장과 네팔의 관개 시설, 마사이족 목초지, 터키 공동어장 등이 그 예시다. 오스트롬은 정부 개입이나 사유화 없이도 공유재가 관리되는 사례를 찾아 전 세계를 탐사하고 동서고금의 수많은 성공과 실패 사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를 정리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공유재를 관리하는 8가지 성공 비결, ‘디자인 원칙’을 정립했다.

오스트롬은 공유자원에 대한 게임 이론과 행태과학의 접근법도 제시한다. 특히 지방재정과 분권의 문제 등 지방자치제에 대해 해당 방안을 활용한 해결책을 내놨다. 지하수 개발 경쟁의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협상, 공공 사업 단위 신설을 위한 기업가적 활동의 게임, 공·사 파트너십과 자치 제도 등 성공적 지방자치 제도를 위한 제도 선택 분석의 틀을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오스트롬의 연구는 경제학보다는 정치학에 더 가깝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세계 각국 경제학자와 사법 관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스트롬은 공유재에 대한 개인의 탐욕이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파멸을 불러온다는 경제학계 정설을 타파했다. 또 파국을 막기 위한 해결 방안으로 정부 권력 개입이나 사유화만이 존재한다는 종래 입장을 깨고 제3의 길이 있음을 보여줬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동체 자율의 공유재 관리를 위해서 어떤 규칙이 수립돼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원칙까지 정립했다.

‘공유의 비극을 넘어’에 나온 디자인 원칙이 가장 유의미할 분야는 당연 기후변화 문제다. 오스트롬은 범세계적 기구 출범에만 의지하는 정치외교적 해결책이나 탄소배출권같이 사회적 손실의 사유화만 추구하는 경제적 해법으로는 밝은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경제학자들이 정설로 받아들이는 종래 이론은 너무나 시야가 좁고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오스트롬은 기후변화에 대한 다원적인 접근법을 제시한다. 범세계적 기구의 천편일률적인 통제를 기다리는 대신, 지역 공동체 수준에서의 환경 문제 해결이 먼저 시작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예를 들면 공장 지대나 도심 지역에서 주민 건강과 안전을 위해 배출 가스를 스스로 규제하면서, 즉각적이며 현실적인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지역 공동체 규약이 사회 전반에 신뢰를 불어넣고 더 큰 규모로 확대돼 국가적 혹은 전 지구적 합의의 기초가 된다고 덧붙인다.

오스트롬이 보기에 공유자원 분배처럼 복합적인 문제는 이론에 기반한 천편일률적 해결책 대신 현장의 맥락을 고려한 해결 방법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그는 정치과학과 미시경제학 이론을 탐구하는 대신 전 세계 각지를 직접 탐사했고, 연구실이 아닌 현장에서 디자인 원칙을 발견해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경제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9호 (2023.10.11~2023.10.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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