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새로운 리더, 잘나가던 SW는 힘을 잃었다 [스페셜리포트]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3. 10. 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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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는 지난 2년 동안 IT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였다. 2021년 10월 글로벌 소셜미디어(SNS) 기업 페이스북이 회사명을 ‘메타’로 변경할 정도였다. 국내에서도 수많은 메타버스가 등장했다. “마구잡이로 여기저기 메타버스를 붙인다”는 비판에도 기업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2023년 10월 현재, 메타버스를 향한 관심은 차갑게 식었다. 화려한 등장만큼이나 급작스러운 몰락이다. 메타버스를 신사업으로 내세웠던 기업들은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게임 업체 컴투스는 지난 9월 메타버스 서비스 자회사 컴투버스의 구조조정을 결정했다. 컴투버스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이다. “메타버스는 돈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메타버스 시대가 끝났다’고 평가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안정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 메타버스 생태계는 크게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로 나뉜다. 지금까지는 SW 개발을 통한 플랫폼만 우후죽순 생기며 거품론이 불거졌다. 하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HW 분야는 이제야 꽃을 피우고 있다. 애플과 메타가 확장현실(XR) 기기 비전프로와 퀘스트3를 내놓으면서다. 시장 반응도 뜨겁다. 시장조사 업체 IDC는 글로벌 XR 시장 규모가 2022년 139억달러(약 18조원)에서 2026년 509억달러(약 67조원)로 4배가량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기업 간 거래(B2B) 시장을 겨냥한 메타버스도 ‘핫’하다. 특히 메타버스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제조업 분야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실을 가상 세계로 복제한 디지털 트윈 등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해 생산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생산성을 개선하는 식이다. 노키아와 언스트앤영(EY)이 최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산업용 메타버스 도입 기업은 ‘자본 지출 감소’ ‘안전성 개선’ 등의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애플이 내놓은 ‘공간 컴퓨터’ 헤드셋 비전프로. (애플 비전프로 영상 캡처)
메타 퀘스트3. (메타 제공)
메타버스 흐름은 HW로

장비 기업이 주도한다

메타버스가 처음 등장한 후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기대한 것은 ‘생생한 가상현실(VR)’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가상현실 기기들은 조잡했고, 이질감과 어지럼증을 유발했다. 이에 기업들은 콘텐츠에 집중했다. SW 개발을 통해 가상현실 플랫폼을 내놓고 “이게 메타버스야”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게임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플랫폼에 소비자들은 메타버스를 외면했다. 로블록스와 컴투스 등 메타버스 플랫폼을 내놓은 기업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메타버스 산업 주도권은 HW와 장비 생산 기업으로 넘어왔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기업이 장비 시장에 속속 참전하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분위기다.

메타버스 하드웨어 생태계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VR과 XR 기기를 만드는 완성품 업체와 해당 업체에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다. 전자는 애플과 메타, 후자는 한국·대만·중국의 장비 제조 기업이 대표 주자다.

미국 빅테크 중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은 애플이다. 현재 대중이 생각하는 ‘가상 세계’ 수준을 가장 가깝게 구현할 수 있는 회사로 꼽힌다. 애플은 가상 공간을 현실에 생생히 구현하는 ‘비전프로’를 곧 선보일 예정이다. WWDC(애플 세계 개발자 회의)에서 공개된 비전프로는 압도적인 성능과 소프트웨어로 호평받았다. 아직 제품이 시장에 나오지 않았지만, 나오기만 하면 경쟁 제품을 충분히 제압하지 않겠냐는 게 IT업계 의견이다.

디스플레이 성능부터 기존 제품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비전 프로는 안경 양쪽에 2300만픽셀을 밀집시킨 OLED 디스플레이를 각각 탑재했다. 안경알 하나마다 ‘4K’ TV 성능의 화면을 그대로 이식했다. OLED가 들어간 MR 헤드셋은 비전프로가 최초다.

애플은 헤드셋 전용 운영체제도 만들어냈다. 이른바, 비전OS다. 별도 키보드와 마우스 없이, 손짓과 눈짓만으로 화면을 조정할 수 있도록 돕는다. 카메라와 센서가 이용자의 눈·손·음성을 인식해 기기를 조작한다. 다수 카메라와 센서(카메라 12개, 센서 5개)를 조작하기 위해 M2(메인 컴퓨터용) 칩에 추가로 R1 칩을 적용했다. 기기의 ‘뇌’ 역할을 하는 AP 프로세서를 2개 탑재,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애플은 비전프로를 단순 ‘MR 헤드셋’이 아닌 ‘공간 컴퓨터’로 정의했다. 게임과 영상 감상 용도로만 쓰이던 기존 제품과 달리 회의, 영상통화 등 컴퓨터가 필요한 대다수 작업이 ‘비전프로’만 있으면 실행 가능하다. 팀 쿡 애플 CEO는 “(비전프로는) 완전히 새로운 AR(증강현실) 플랫폼”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애플을 뒤잇는 주자는 메타다. VR 기기 업체 오큘러스를 인수하며 장비 시장에 뛰어든 메타는 이 분야 ‘터줏대감’으로 꼽힌다. 애플이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비전프로로 승부수를 띄웠다면, 메타는 대중성을 올린 ‘퀘스트’ 시리즈를 내세운다. 9월 27일 최신 버전인 퀘스트3를 공개했다. 제품은 10월 10일부터 판매에 들어간다. 퀘스트3는 중앙처리장치(CPU)로 퀄컴의 ‘스냅드래곤 XR 2세대’ 반도체를 탑재했다. 2년 전 선보인 기존 퀘스트2보다 그래픽 처리 능력이 두 배 향상됐다고 메타 측은 설명했다. 또한 카메라를 통해 실제 외부를 볼 수 있는 ‘패스스루’ 기능을 적용해, 헤드셋을 벗지 않고도 주변 사물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기존 기기에 비해 성능은 대폭 향상됐다지만, 비전프로에 비하면 다소 밀리는 게 사실이다. 다만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퀘스트3는 기본 가격이 499.99달러다. 3499달러에 달하는 비전프로 가격의 7분의 1 수준이다. 메타는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애플보다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외에 구글과 퀄컴 등도 XR 시장 선점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시민들이 VR 기기로 재생되는 콘텐츠를 관람하고 있다. (매경DB)
삼성·LG도 ‘하드웨어’ 부문 공략

‘빅테크 납품’ 중견 업체도 주목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장 적극적이다. 양 사 모두 메타버스와 XR을 신사업으로 내세우며 활발한 연구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알파벳(구글)과 손을 잡았다. 사미르 사맛 구글 제품관리 이사는 올해 5월 연례 개발자 회의에서 “삼성전자와 협력해 안드로이드OS 기반 XR 기기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2월 미국에 열린 ‘갤럭시 언팩’에서 삼성전자·구글·퀄컴과 3자 협력해 차세대 XR 폼팩터를 개발한다는 사실이 최초 공개됐다.

LG전자 역시 향후 육성할 신사업으로 ‘메타버스’를 선택하고 현재 관련 기기를 개발 중이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7월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메타버스와 관련해 몇몇 파트너사와 사업 가능성 부분에서 검토하고 있다. 구체화할 때 내용을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부품 업체 움직임도 바쁘다. XR 기기에는 디스플레이, 카메라, 센서 등 무수한 부품이 들어간다. XR 기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부품 기업도 상당한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5월 2900억원을 투자해 미국의 이매진을 인수했다. 이매진은 2001년부터 XR 기기 핵심 부품인 마이크로 디스플레이를 개발한 업체다.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은 애플 비전프로의 핵심 부품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디스플레이는 XR 기기에 탑재되는 디스플레이 ‘올레도스’를, LG이노텍은 공간 인식, 움직임 캡처에 필요한 3D 센싱 부품과 XR 기기용 반도체 기판 등을 생산한다.

삼성과 LG 외에 덕우전자, 나무가, 뉴프렉스 등 미국 빅테크 기업에 VR 기기용 부품을 납품하는 중견 제조 업체도 대표적인 메타버스 생태계의 핵심 기업으로 꼽힌다. 덕우전자는 카메라 모듈과 전장용 부품을 생산한다. 기존부터 애플에 주요 부품을 공급해왔다. 나무가는 2022년 초부터 글로벌 IT 업체와 함께 XR 기기에 적용되는 ToF 카메라 모듈을 공동 개발 중이다. 뉴프렉스는 메타에 XR 기기 필수 부품인 FPCB(연성인쇄회로기판)를 납품한다.

경기 수원시에서 ‘XR버스 1795행’에 탄 승객들이 수원화성을 이동하며 투명 OLED 디스플레이를 통해 확장현실(XR) 체험을 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제공)
제조업이 찾는 ‘산업용 메타버스’

스마트 공장 구축 시 ‘필수’ 요소

메타버스의 새로운 쓰임새도 주목할 만하다. IT업계에서 외면받는 메타버스가 쓰임새를 찾은 곳은 ‘제조업’ 부문이다. 메타버스는 스마트 팩토리를 현실화하기 위한 필수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공장 근로자들은 메타버스를 활용해 작업에 필요한 각종 부품 정보와 재고 현황을 파악한다. 딜로이트는 지난 5월 발표한 ‘산업용 메타버스 탐색(Exploring the industrial metaverse)’ 리포트에서 “산업용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공상 과학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단계”라며 “현재 제조 업체들이 디지털 전환, 스마트 팩토리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산업용 메타버스 인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용 메타버스 기술은 크게 3D 모델링·스캐닝 등 디지털 트윈(현실 복제)과 에지 컴퓨팅(서버 분산화), 블록체인 기술 등으로 구분된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이 중 제조 업체가 가장 관심 갖는 분야는 디지털 트윈이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를 가상 공간에 복제하는 기술이다. 제조업 입장에서는 이를 활용, 생산 과정 전반을 미리 모니터링해 생산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다. 딜로이트가 미국 제조 기업 임원 3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생산(Production) 과정에 메타버스를 도입했다는 대답이 34%로 가장 많았다.

LG전자 직원들이 LG스마트파크의 지능형 공정 시스템이 보여주는 버추얼 팩토리를 지켜보고 있다. 지능형 공정 시스템은 냉장고 생산, 부품 이동과 재고 상황 등 실제 공장 가동 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LG전자 제공)
관련 사례도 꽤 많이 찾아볼 수 있다.

2021년 4월 ‘가상 공장 프로젝트’를 본격화한 독일 BMW그룹이 대표적이다. 가상 공장 프로젝트는 실제 공장을 그대로 본뜬 가상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부품 위치와 이동 경로, 생산라인을 변경해보며 생산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형태다. 실제 생산 과정에서 수율을 높이고 생산 효율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BMW그룹은 AR 기술을 활용해 부품이 치수에 잘 맞는지, 부품 간 간섭은 없는지, 조립 불량은 없는지 등을 검수한다. AR 기술 도입 이후 불량률이 크게 줄었다는 게 관련 업계 평가다.

포스코그룹도 각 공장에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트윈을 통해 제강 조업 최적 스케줄링부터 제조 시운전, 원료 구매 비용 최소화, 원료 배합 최적화 의사 결정 등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그룹의 경우 계열사 포스코DX가 스마트 공장 솔루션 사업을 맡고 있다. 김미영 포스코DX 기술연구소장은 지난 9월 열린 AI 콘퍼런스에서 “디지털 트윈을 이용해 제강 공정 중 12만5000개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했다”며 “온도 적중률을 80%에서 90%로 끌어올렸다”고 자랑했다. 제강은 적정 온도의 용강을 만드는 공정이다.

중소기업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자동차 전동 펌프 모듈 사업을 하는 ‘코아비스’가 대표적이다. 코아비스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이 내놓은 ‘2023년 메타버스 팩토리 구축 지원 사업’ 수행 기관으로 선정되면서 메타버스 팩토리 구축에 뛰어들었다. 디지털 트윈 기술을 기반으로 생산 과정 전반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을 비롯해 현장 제품 현황 확인, 설비 기계 제어까지 메타버스 도입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손인석 코아비스 대표는 “메타버스 팩토리 구축 사업에 국내 자동차 부품 업체로는 유일하게 선정된 만큼, 디지털 전환의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 것”이라며 “향후 모든 부품 생산 공정에 적용 가능한 표준화된 메타버스 팩토리 중앙 플랫폼을 만들고 멕시코·슬로바키아·중국 법인 등 다양한 지역 공장을 연결해 제어하는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제조 업체들이 연달아 산업용 메타버스를 도입하면서, 관련 시장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프레시던스리서치에 따르면 스마트 공장 등 산업용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지난해 1297억4000만달러(약 166조원)에서 2032년 3219억8000만달러(약 412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이에 산업용 메타버스 구축을 돕는 기업도 주목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포스코DX도 그중 하나다. 포스코DX는 자동화 설비와 제어 시스템, 통합생산관리 시스템, 창고 자동화와 산업용 로봇 등을 적용한 스마트 팩토리 시스템을 공급한다. 올해 상반기 누적 매출 7756억원, 영업이익 642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64.6%, 98.1% 증가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현재 주된 고객사가 포스코그룹사에 한정된다는 것. 다만 고객 다변화 가능성은 남아 있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포스코퓨처엠 같은 2차전지소재 계열사들이 해외 주요 제조 업체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포스코DX의 스마트 공장 솔루션도 수혜를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SK C&C도 빼놓을 수 없다. SK C&C는 디지털 공장 솔루션 ‘아이팩츠’를 활용해 SKC 자회사 앱솔릭스가 미국에 건설 중인 반도체 부품 공장을 스마트 공장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반도체 글라스 기판 전체 생산 공정을 자동화 환경으로 구현하고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또 생산, 자재, 설비, 품질, 반송 물류 등 생산 관련 전 영역에서 실시간 추적이 가능하도록 만들 예정이다. 산업용 메타버스를 활용해 전체 생산라인을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공장은 2024년 상반기 완공 예정이다.

LG CNS와 삼성SDS도 디지털 트윈 솔루션을 제공한다. 두 회사는 물류 등 공급망 관리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9호 (2023.10.11~2023.10.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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