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미동 없는 與지도부…"또 자리 매달리는 폐습 나왔다"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완패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서는 13일에도 구체적 액션이 나오지 않았다. 보수 진영 안팎에서 쇄신론이 분출하고 있지만, 당 지도부는 누구도 자신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 “권력 눈치 보며 자리만 매달리는 보수정당의 폐습이 또 기어나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여의도 국회 본관 228호에 마련된 자신의 집무실에서 당 지도부와 1대1로 면담했다. 윤재옥 원내대표, 김병민·김가람·장예찬·강대식 최고위원, 박대출 정책위의장 등이 차례대로 20여분 동안 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조수진 최고위원은 김 대표와 전화 통화했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수도권 민심과 유권자가 국민의힘을 바라보는 시각을 그대로 말씀드렸다”며 “수도권 유권자 마음을 잡기 위해 당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장예찬 최고위원은 “지도부가 먼저 국민과 당원께 반성하고 쇄신 의지가 있다는 걸 강도 높게 보여드리는 것이 위기를 수습하는 길이라고 말씀드렸다”고 했다.
총 2시간 40분의 면담을 마친 뒤 사무실을 나선 김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이번 보궐선거로 나타난 민심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논의했다”며 “국민의힘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해야 국민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도 앞으로의 핵심과제”라고 했다. 김 대표는 15일로 예정된 의원총회 전후로 혁신위원회, 인재영입위원회, 총선기획단 등을 띄우는 쇄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쇄신안에 대해 “국민이 보기에는 ‘턱도 없는 방안’일 것”이라는 말이 벌써 나온다. 윤평중 한신대 명예교수는 “아무 권한도 없는 '혁신위 쇄신안'은 현재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 모른다는 의미”라며 “혁신위를 꾸리고 명망가를 위원장으로 앉혀도 국민에게는 크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지도부 거취에 대해서는 이날도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김 대표는 자신의 사퇴는 물론 김태우 후보 공천을 주도한 이철규 사무총장,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등 임명직 당직자 교체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비공개 면담에서도 최고위원 자진 사퇴 등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한다. 여권 인사는 “지도부에선 비상대책위원회를 새로 구성하거나, 김 대표에게 책임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김 대표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움직임은 비대위 체제로 급격히 전환될 경우 당내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한다. 익명을 원한 수도권 의원은 “이번 일로 김 대표가 직을 던지고 비대위 체제가 들어서면 향후 총선 공천과정에서 오히려 대통령실 입김이 더 세지지 않겠느냐. 그렇게 되면 속절없이 진다”며 “오히려 김 대표에게 힘을 모아서 당도 쇄신하고, 용산에 할 말도 하게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아무리 좋은 쇄신안을 내건들 국민 눈에 보이겠느냐”는 반론도 커지고 있다. 윤희숙 전 의원은 CBS라디오에서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는 김 대표가 쇄신의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쇄신안을 김 대표가 내놓으면 국민은 ‘이제부터 갑자기 새사람이 된다는 걸 어떻게 믿느냐’고 반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대표 등 지도부가 책임지고 사퇴하거나, 혁신기구에 전권을 준 채 2선으로 물러나면서 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당협위원장은 “보궐선거 패배로 ‘김기현 간판’으로 총선을 치르기는 어렵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났다”며 “시간을 끌수록 국민 실망감은 커지고 결과적으로 총선 승리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운영기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권에서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윤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가 30%대인데 내년 총선까지 극적인 지지율 반등을 꾀하지 못하면, 민주당의 ‘정권 심판론’이 이번 보궐선거처럼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내년 총선은 집권 3년차 선거여서 사실상 중간평가의 성격을 띤다. 대통령 지지율이 결정적 요소”라며 “만약 국정기조를 지금처럼 강경일변도로 끌고 가면 대통령 지지율이 자칫 20%대로 떨어질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수도권 같은 스윙보터 지역에서는 필패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한 뒤 정식 기자회견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며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 형식이 아닌 정식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 정책에 대해 솔직하게 의견과 계획을 밝히면서 ‘국민께 안심해달라’는 메시지를 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왜 우리만 덤터기를 쓰느냐, 대통령실 인적쇄신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국회 운영위의 대통령실 국정감사가 있는 11월 7일 직후 몇몇 수석급 인사가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대통령실을 나올 예정인데, 이와 맞물려 대통령실도 큰 폭의 인사 교체가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간 보수정권은 선거에 패배하면 확실한 혁신을 통해 국민 신뢰를 회복했는데 이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며 “현 정부 들어 국민 피부에 닿는 정책이 없었다. 정부·여당이 합심해 좋은 정책을 내야 국민 시선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김효성·전민구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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