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의료과실에 국가 위자료 배상 기각... "한동훈 장관, 법 바꾸겠다더니"

복건우 2023. 10. 1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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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고 홍정기 일병 유족에 '이중배상 금지원칙' 적용... "군대 잘못 없다는 것 아니지만"

[복건우 기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 복건우
 
"1심 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올 건지 국방부가 눈여겨보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군의 책임과 다른 문제라니요. 군대는 계속 책임을 면하려 하는데, 아이를 군에 보낼 의무만 있고 아이를 명예롭게 떠나보낼 책무는 없는 건가요. 판사님, 너무 안타깝습니다."

군 의료과실로 숨진 고 홍정기 일병 유족이 국가로부터 위자료를 지급받지 못한다는 법원 판결이 내려진 직후, 홍 일병 어머니 박미숙씨가 법정에서 쏟아낸 말이다. 유족은 "국방부에서 잘못된 일을 법원에서도 바로 잡아주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단독(판사 윤성헌)은 13일 홍 일병 유족이 위자료 명목으로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유족이 소송을 제기한 이후 약 4년 반 만에 나온 판결이었는데, 법원은 "유족들이 중복해 위자료를 청구하는 건 현행법상 불가능하다"고 봤다.

고개 떨군 어머니 "명예롭게 보낼 책무조차 안 하는 군대"

이날 재판부는 "이중배상 금지 원칙을 규정하는 국가배상법 제2조 1항 단서의 적용을 받느냐, 군의관들의 의료상 과실이 존재하느냐가 이번 사건의 두 가지 쟁점"이라며 "(홍 일병이) 군 복무 중 발병하거나 악화한 급성 골수성 백혈증과 소뇌 출혈로 인해 사망한 점, 육군 보통전공사상심의위원회에서 공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순직 결정을 한 점 등을 볼 때 유족들의 청구는 의료상 과실을 판단하기에 앞서 국가배상법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군인의 순직처럼) 별도의 보상 제도가 마련돼 있는 경우 이중배상 금지 원칙에 따라 국가에 대한 국가배상법 혹은 민법상 손해배상이 절대적으로 금지되고 있고, 여기서 금지하는 손해배상에는 위자료 청구도 포함돼 있다는 게 지금까지 대법원에서 확립된 견해"라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하급심은 대법원의 견해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이 유족 입장에서는 많이 안타까운 일이고 군 의료체계의 문제로 (홍 일병이) 사망했다는 건 여러 곳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이라며 "다만 현행법 체계에서는 위자료를 중복해 또다시 청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1심 재판부의 입장"이라며 말을 끝맺었다.

판사가 선고를 마치자, 원고석에 앉아 있던 박씨는 고개를 떨군 채 "(이중배상 금지 원칙의 문제점과 관련해) 국가배상법 개정을 기다려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라며 "돈을 받고 싶다는 게 아니라 군이 아이의 죽음에 무거운 책임을 갖고 부모들이 군에 더는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해달라는 것뿐"이라고 밝혔다.

박씨가 이어 "군이 아이를 죽여놓고 명예롭게 보내줄 책무를 다하지 않는 사이 우리는 계속 아이의 고통을 되새김질하고 있다"고 말하자, 판사는 "군대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취지가 아니라, 현행법상 보상과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다시 말씀드린다"라고 답했다.

지난 5월 한동훈 장관 "법 개정할 때 됐다" 했지만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씨가 13일 오후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기각 판결이 내려진 후 유튜브 영상이 담긴 휴대폰을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해당 영상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월 이중배상 금지를 규정한 국가배상법을 개정하겠다고 하는 내용이 담고 있으나, 이후 논의는 진척이 없는 상태다.
ⓒ 복건우
이날 판결에 앞서 지난 2월 재판부는 유족에 대한 애도와 위로를 포함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담은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으나, 유족과 달리 대한민국(피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의 의료과실을 인정할 수 없을 뿐더러 이미 순직 결정으로 유족이 보상금을 받은 만큼 국가배상법상 이중배상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대한민국이 화해권고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이 소송은 계속 진행됐고, 유족은 이날 판결에 따라 위자료를 지급받지 못하게 됐다. (관련기사 : [단독] 의료과실 사망 군인, '국가책임' 인정 화해권고... 법무부 판단만 남았다 https://omn.kr/22tj3)

한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5월 "유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를 금지한 국가배상법 규정은 베트남전 파병 시기에 도입됐다. 당시 국력 기준으로 재정적 부담을 고려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현재 대한민국의 국력이 커진 것과 사회적 참사·희생에 대한 경제적 배상과 형평성을 고려하면 개정할 때가 됐다"고 법 개정 의지를 밝혔으나 이후 논의는 진척이 없는 상태다.

박씨는 선고 이후 법정 밖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잘못된 법을 고치겠다는 한 장관은 다섯 달 넘게 뭘 하신 건지 모르겠다"며 "국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는데 이렇게 유족들을 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와 동행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이중배상 요구로 박정희 정권이 이 조항을 헌법에 꼼수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법원은 이 부분에 대해 판결을 하진 못하더라도 입법부가 피해 구제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충분히 얘기할 수 있었다"며 "법률 개정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판사가 판결문을 쓰는 건 재량의 문제이긴 하나 충분히 다르게 판단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홍 일병은 지난 2016년 군 의료과실로 사망했다. 그는 2015년 8월 건강한 상태로 입대해 체력검정에서 특급을 받을 정도로 신체에 문제가 없었으나, 2016년 3월 6일 처음 이상증상을 느꼈다. 이후 구토를 하거나 몸에 멍이 드는 등 급성 골수성 백혈병 증세를 보였고 연대 의무중대와 사단 의무대에서 진료와 처방을 받았다.

같은 달 21일 민간 병원 의사는 홍 일병의 '혈액암 가능성' 소견을 밝혔으나, 군의관은 응급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그를 부대로 돌려보냈다. 고통을 호소하던 홍 일병은 국군춘천병원 검사에서 백혈병에 따른 뇌출혈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4일 결국 숨졌다.

한편 유족들은 소송대리인과 상의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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