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잔혹한' 역사 담아낸 감독 "이게 영화의 역할"

조영준 2023. 10. 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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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th BIFF] 영화 < 1923년 9월 > GV

[조영준 기자]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1923년 9월> GV 현장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11일 오후,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상영작 < 1923년 9월 >의 '관객과의 대화(GV)'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에 위치한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에서 진행됐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선정작인 이 작품은 일본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후쿠다 마을 사건을 바탕으로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뒤에 발생한 비극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된 이번 작품은 정확히 100주년이 되는 지난 9월 1일 일본에서도 정식으로 개봉되며 많은 관심을 일으켰다.

영화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뒤에 발생한 여러 비극에 대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1923년 9월, 15명의 가난한 행상단이 후쿠다 마을에 도착한 이후 생소한 지방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조선인으로 오해를 받으면서 시작된 사건이 그 중심에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영화는 잔혹한 모습을 한 인간 역시 그 이전까지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영화를 제작한 고바야시 산시로 프로듀서는 '어떤 것도 망각한 채로 지나가서는 안 된다'며 그 의미를 밝혔다.

영화가 상영되던 극장에는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객이 찾았고, 한국과 일본 양국의 멀고도 가까운 관계 속에서도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많은 감정을 함께 나눴다. 영화를 연출한 모리 다츠야 감독과 고바야시 산시로, 카타시마 이키 프로듀서가 참석한 GV의 내용을 요약해서 전달한다.

이 작품은 '묻혀버린 역사를 불러내 정면으로 마주 대하는 용기를 응원한다'는 심사평과 함께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을 수상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1923년 9월> GV 현장 사진
ⓒ 부산국제영화제
- 영화의 배경이자 소재가 되는 관동대지진 당시의 상황에 대해 감독님은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모리 다츠야 감독: "다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동대지진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현재에도 세계에서 이런 일들은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요. 저희는 그런 참혹한 역사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관동대지진이라는 사건을 영화의 소재로 삼게 된 이유가 궁금하고,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기분을 느끼셨는지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모리 다츠야 감독: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우리 사람은 실패를 할 수도 있고, 좌절을 할 수도 있고, 시련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힘든 일들을 그저 덮어두고 잊어버리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 사람과 친해질 수 없을 것같습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역사 속 어두운 부분을 점점 더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꼭 이런 어두운, 실패하고 좌절했고 절망했던 과거의 역사를 꼭 제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떤 나라든 모두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실패한 역사를 되돌아봐야 하는데 만약 미디어와 정치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일본에서 9월 1일에 개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소재 때문에라도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는지요?
고바야시 산시로 프로듀서: "사실 일본에서 이런 작품을 만들 때 투자해 주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진행할 때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진행을 했고요. 2,400명 정도의 분들께서 3,600만 원이라는 큰 금액을 펀딩 해주셨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펀딩을 진행했던 플랫폼에서 영화 분야에서는 가장 큰 금액이 모인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힘을 실어주셨어요. 자금을 모은 이후에도 과연 누가 이 영화에 출연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는데, 그런 많은 문제들을 지나며 제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카타시마 이키 프로듀서: "한정된 예산에서 어떻게 제작 퍼포먼스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릴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캐스팅부터 여러 단계에서 문제들이 있었는데요. 그런데 제 안에서는 뭐가 되든 먼저 가능한 것부터 착실하게 해 나가자 라는 게 있었고, 그게 가장 중요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일정도 빠듯했고, 예산도 빠듯하다보니 더 그랬는데요. 아까 말씀하셨던 캐스팅과 관련해서는 배우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실제로는 저희 걱정과 전혀 다르게 이야기를 했을 때 바로 출연 의사를 밝혀주셔서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 이전까지 다큐멘터리 작품만 작업해 오신 감독님께서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으로 구성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모리 다츠야 감독: "계속해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왔습니다. 다만 이 사건 자체는 100년 전 사건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블랙박스 안에 딱 들어가 있던 사건이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죠. 자료도 거의 없고 증언을 해주시는 분들도 안 계셨습니다. 그렇다 보니 다큐멘터리로 찍기는 무리라는 판단을 했고 그 대신 극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도 자료가 남아 있는 경우에는 최대한 반영을 하려고 했는데요. 이 영화에 나오는 15명의 행상객의 남녀노소 비율과 구성은 상당히 적게 남겨져 있는 자료이지만 실존하는 기록을 바탕으로 그대로 구현해 낸 것입니다. 성격이나 캐릭터들의 경우에는 이것이 드라마이고,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흥미를 갖고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각본을 여러 번 수정하여 지금의 버전을 만들어냈습니다."

- 영화에 등장하는 신문 기자의 모습이 결연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모습에 조금은 슬프기도 했습니다. 이 역할을 만들어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모리 다츠야 감독: "일단 극 중에 나오는 신문사는 저희가 만들어 낸 이름입니다. 여기에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온다' 기자와 그 기자가 어떤 말을 해도 대답을 할 수 없는 처지의 부장입니다. 원래 부장의 인물은 권력의 편에 서서 자신의 마음대로 발언을 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몸을 담고 있던 회사가 전쟁을 지나면서 판매 부수가 낮아지고 정부의 탄압을 겪으며 회사가 망했다는 설정 속에서 현재의 모습이 된 거죠. 그동안 자신이 내왔던 기사들이 사실이 아니고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생각 그대로 기사를 낼 수는 없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침묵을 하게 되는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현실에서도 TV 방송사는 시청률을 고려해야 하고 신문사는 판매 부수를 신경 써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에 입각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기사 또한 써야 하는 굉장한 모순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가까이 지내는 업계의 현직자들도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100년 전의 모습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고 미디어가 갖고 있는 폐해 같은 것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를 '온다' 기자 역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 전반부와 후반부의 표현 방식이 대조적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일본과 한국 양국이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양가적 감정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연출적 동기가 궁금합니다.
모리 다츠야 감독: "사실 제가 극의 전반부에서 마을의 사람들과 주인공들의 일상생활을 굉장히 꼼꼼하게 그린 이유는 가해자가 반드시 '괴물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가해자도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일반 사람들이거든요. 그들에게도 일상이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울고 웃고 하는 정말 보통의 사람이 대부분이죠. 그런 사람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나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어떤 계기가 발생하면 급격하게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게 집단이면 집단일수록 그 변화가 더 급격해진다고 저는 믿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열심히 보여주려고 노력했고, 말씀하셨던 국가 간의 문화적 차이나 역사의 차이 때문에 이런 방식의 연출을 하고자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모리 다츠야 감독: "처음 만들 때부터 이 영화는 한국에서 상영되어 한국 여러분들께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저 혼자 했었습니다.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서 이렇게 선보일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고, 한국에서도 정식 개봉이 되어 더 많은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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