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영토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로마를 여행하며 놀랐던 점이 있습니다. 도시 곳곳에 거대한 성당이 위치해 있더군요. 걸어 다닐 때면 사제복을 입은 분들도 자주 마주쳤습니다.
▲ 숙소 근처의 작은 교회 |
ⓒ Widerstand |
바티칸 박물관과 성 베드로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바티칸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 두 곳입니다. 박물관에서 성 베드로 성당에 도착하고 나니, 바티칸 시국의 거의 절반 정도를 돈 셈이 되더군요.
▲ 바티칸 박물관 |
ⓒ Widerstand |
공식적으로 '교황령'이라는 땅이 등장한 것은 756년입니다. 이때 동로마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로마 땅을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가 차지합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중부의 넓은 영토를 교황에게 기증하죠.
이 '피핀의 기증'을 통해 만들어진 교황령은 교황의 힘과 함께 성장해 나갔습니다. 한때는 프랑크 왕국의 속국 취급을 받던 교황령도 곧 강성한 국가가 되었죠.
13세기 교황령은 최대의 영토를 확보하며 전성기를 구가했죠. 근대에 접어들며 교황의 권위는 추락했지만, 교황령의 번성은 여전했습니다. 교황이 지배하던 로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되기도 했습니다.
▲ 성 베드로 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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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문제가 있었죠. 바티칸은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이탈리아의 남북을 통일하려면 교황령을 정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스위스 근위대가 지키는 교황청 |
ⓒ Widerstand |
이탈리아 각지에 위치한 가톨릭 성당도 이탈리아 왕국의 정책에 저항하기도 했죠. 유럽의 일부 가톨릭 국가들도 교황령의 멸망을 인정하지 않고 외교 관계를 이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탈리아 왕국을 침입해 교황을 구출해 줄 세력은 없었습니다.
교황을 이 같은 포로 신세에서 구해준 것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였습니다. 1922년 집권한 무솔리니는 혼란스러운 이탈리아 정치를 정리하겠다는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내부 정치에서도, 국제 관계에서도 교황령 문제는 해결해야 할 사안이었죠.
▲ 바티칸을 둘러싼 벽 |
ⓒ Widerstand |
▲ 성 베드로 성당 |
ⓒ Widerstand |
하지만 교황청이 가진 영향력을 여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교황청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는 13억 명을 넘습니다. 교황은 여전히 이 수많은 신도들의 종교적 지도자입니다.
꼭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교황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는 크죠. 10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방문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났을 때, 그 모습에 위로를 받은 것은 가톨릭 신자들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의 앞에는 거대한 광장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교황이 직접 강복을 할 때면 이 광장이 가득하도록 세계 각국의 가톨릭 신자들이 몰려듭니다.
▲ 성 베드로 성당의 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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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넓은 영토를 가지고 강성했던 교황은 이제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교황의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탈리아 중부를 다스리던 교황령보다는 지금의 바티칸 시국이 교황이 있기에는 더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신자인 제가 굳이 바티칸 시국을 둘러보고 성 베드로 성당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겠지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종교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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