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하마스, 사람 아니다"…대피시한 주며 가자 진입 포고
이스라엘 국방부가 13일 0시쯤(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의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유엔 등 국제기구 직원들에게 24시간 내 대피하라고 통보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섬멸 작전에 돌입한 가운데 이스라엘 지상군의 가자지구 침투가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뉴욕타임스(NYT)·악시오스에 따르면 이스라엘군(IDF)은 이날 오전 “가자시티의 시민들께, 여러분 자신과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남쪽으로 대피하고 당신들을 인간 방패로 이용하는 하마스 테러리스트들로부터 거리를 두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가자시티는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가르는 가자 강 북부의 인구 밀집 지역이다. 이곳 인구는 110만명으로, 가자지구 내 전체 230만 명 가운데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가자지구 북부는 지난 7일 이스라엘 영토를 공격한 하마스의 근거지가 있는 곳이다.
IDF는 “이번 대피는 여러분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또 다른 발표가 있을 때까지 가자시티에 돌아오지 말라”면서 “IDF는 앞으로 며칠 동안 가자지구에서 상당한 병력을 동원할 예정이며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광범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와 관련 “IDF가 하늘에서 ‘남쪽으로 대피하라’는 전단지를 살포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앞서 유엔의 스테판 두자릭 대변인은 미 언론에 “전날 자정 직전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 직원 등이 이스라엘군 연락관으로부터 가자지구 북쪽 인구가 앞으로 24시간 내 가자 남부로 이동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모든 UN 직원과 학교, 보건소, 진료소 등에 동일한 명령이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이번 움직임은 인도주의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면서 “이 명령을 철회할 것을 이스라엘에 강력히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하마스는 반면 “이스라엘군에 맞서 집에 머물라”는 정반대 메시지를 발표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하마스의 난민 당국은 “가자 주민들은 변함없이 집에 머물러야 한다”면서 “이스라엘 점령군의 이 혐오스러운 심리전에 굳건히 맞서라”고 요청했다. 하마스는 “점령군들이 우리 내부 전선을 안정을 훼손할 목적으로 다양한 수단으로 거짓 선전을 퍼뜨리고 있다”라고도 주장했다.
하마스는 이와 더불어 “지난 24시간 동안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스라엘 인질 중 13명이 사망했으며, 이 가운데 외국인도 있다”고 발표했다.
美승인 업고 “24시간 뒤 진입” 하마스에 포고했나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0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통화한 데 이어 12일엔 이스라엘로 급파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협의했다. 블링컨 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의 자국 방어 권리와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재확인하면서 “미국은 항상 이스라엘 옆에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3일에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이스라엘을 찾은 데 이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EU 관계자들도 이스라엘을 방문해 연대 의사를 밝혔다.
앞서 IDF는 가자지구 접경에 병력 30만 명과 전차 등을 배치하며 지상전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하마스를 지구상에서 쓸어버릴 것”이라고 밝혔고, 네타냐후 총리도 의회 연설 등에서 “모든 하마스 대원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며 “하마스를 IS처럼 분쇄하고 파괴하겠다”고 공언했다. IDF는 12일 “지난 7일 이후 가자지구에 총 무게 4000t의 폭탄 6000발을 투하했다”고 발표했다.
양측 사상자는 이날 기준 1만 명을 넘어섰다.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1537명, 이스라엘은 약 1300명이 사망한 가운데 부상자는 수천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유엔 직원 12명도 사망했다.
이스라엘의 보복 조치가 임박하면서 전선이 서안 지구로 확대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 내 하마스 다음으로 규모가 큰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이슬라믹 지하드는 12일 “하마스의 대이스라엘 공격 작전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미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이슬라믹 지하드의 군사 조직 알 쿠드스 여단 아부 함자 대변인은 이날 “우리의 전투는 가자지구에 국한되지 않으며, 서안 지구까지 확산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의 후원자격인 이란도 힘을 보탰다. CNN에 따르면 아미르 압돌라안 이란 외교부 장관은 현지 매체에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가 계속되고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주의적 포위가 계속되는 한, 다른 저항 세력의 결단이 있을 수 있다”며 확전 가능성을 위협했다. 헤즈볼라 등 친이란 성향 이슬람 무장 세력의 가담은 이스라엘과 서방 국가들이 가장 경계하는 지점이다.
美, 이란 대금 재동결하고 포위 외교 돌입
미국이 하마스와 그의 잠재적 배후로 지목된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한 ‘포위 외교’에 돌입한 모양새다. 블링컨 장관이 상대적으로 온건 노선을 추구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나는 것은 하마스를 팔레스타인 주민·자치 정부와 분리 대응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동시에 미 재무부는 한국에 묶여 있던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 60억 달러(약 8조 원)를 재동결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월리 아데예모 미 재무부 부장관이 하원 민주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과 카타르 정부가 카타르 은행에 예치된 이란 원유 수출 대금 60억 달러를 이란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아데예모 부장관은 “그 돈은 한동안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고도 했다.
한국의 대(對)이란 석유 대금은 미국의 제재로 한국에 묶여 있다가 지난달 미국이 이란 내 미 수감자들을 넘겨받으며 동결이 해제, 카타르로 송금됐다. 아직 이란 측에 넘어가진 않은 상태인데, 하마스 사태가 터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 내 일각에서도 60억 달러의 재동결하라는 여론이 커졌다. 이날 블링컨 장관은 “현재까지 해당 계좌에서 단 1달러도 지출되지 않았으며 우리는 이 계좌를 동결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유엔 주재 이란대표부는 WP에 보낸 성명에서 “해당 자금은 이란 정부가 이란 국민의 필수품 구매에 사용하도록 지정된 돈으로, 이란 국민의 정당한 소유”라고 주장했다.
네타냐후, 영아 시신 공개로 명분 쌓기
총리실은 “하마스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IS(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라면서 “이 사진은 네타냐후 총리가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도 보여줬다”고 했다. 이는 하마스의 잔혹성을 부각해 가자지구 진입의 명분 쌓기를 하는 동시에, 미국에는 지속적인 지원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반면 하마스 대변인 이자트 알 리쉐크는 CNN에 “우리가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을 참수하고 여성들을 공격했다는 증거는 없다. 이스라엘군이 조작한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WHO “중증 환자 대피령은 사형 선고”
타릭 자사레빅 세계보건기구(WHO) 대변인도 13일 로이터통신에 “가자지구 병원에는 부상으로 인해 생명 유지장치에 의존하는 중증 환자들이 있다”면서 “이들을 대피시키라는 건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응고지 오콘조 이웰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도 같은 날 “이번 사태가 확대되면 세계 무역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모두가 살얼음판을 걸으며 최선책을 희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책임론을 지적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예루살렘포스트에 따르면 현지 여론조사 기관 대화 센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6%는 “네타냐후 총리가 이스라엘의 반격 작전 이후 사임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다예가 수홍이 가스라이팅" 박수홍 모친, 큰아들 무죄 주장 | 중앙일보
- 새벽 112에 돌연 "짜장면 1개, 빨리요"…여성 집 훔쳐보던 남성 체포 | 중앙일보
- 성관계 영상만 140만개…모텔 돌며 몰카 단 중국인의 수법 | 중앙일보
- 안세영 "메달 하나로 연예인 아니다"...방송·광고·인터뷰 다 거절한 이유 | 중앙일보
- 끝까지 반성 없었다…'제자 성폭행' 성신여대 교수가 받은 형 | 중앙일보
- 내가 재계 로비 받은 듯 비난…김종인, 어처구니없었다 [박근혜 회고록 6] | 중앙일보
- 설리도 관객도 눈물 쏟았다…세상 밖 나온 그녀의 마지막 인터뷰 | 중앙일보
- 야구 오승환이 일본서 번 83억원…감사원, 국세청 지적한 이유 | 중앙일보
- ‘이명박근혜’ 신조어 공격까지…그래도 난 MB 버리지 않았다 [박근혜 회고록5] | 중앙일보
- 이근, 고 김용호 조롱 논란..."모든 사이버 래커의 끝, 치얼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