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올바른 것'을 고르는 국어 문제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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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딸의 시험지를 보다가 국어 시험의 빌런은 '가장 올바른 것'을 구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맞히고 안 맞히고보다는 읽는 순간 여러 개의 올바를 수 있는 문항들 중에서도 '가장' 올바른 것을 구하려 하는, 그러니까 '가장'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감각적으로 느끼는 바로 그 언어의 예민함이야말로 국어를 잘하는 척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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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숙 기자]
중학생 딸의 시험지를 보다가 국어 시험의 빌런은 '가장 올바른 것'을 구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는 올바른 것이 여러 개 있다는 속뜻이 숨어 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 가장 알맞은 것을 골라보라는 문제집 문항. |
ⓒ 최은경 |
나는 중학교 때 '가장'의 함정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시험에서 틀리는 갯수만큼 엄마한테 나무 빗자루로 맞았으니 쉽게 틀리진 않았을 거라 추정할 뿐이다. 그때 알았다기보다는 나이가 들어 이제 중학교 시험지를 보니 아이들을 헷갈리게 하는 그 문제의 의도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런데 그 문제를 맞히고 안 맞히고보다는 읽는 순간 여러 개의 올바를 수 있는 문항들 중에서도 '가장' 올바른 것을 구하려 하는, 그러니까 '가장'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감각적으로 느끼는 바로 그 언어의 예민함이야말로 국어를 잘하는 척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 시험은 그렇게 문제 곳곳에 언어를 예민하게 관찰해야만 풀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해놓았구나 싶었다. 그러니 '가장'의 의미를 눈치채고 고민을 한 아이라면 혹시 답은 틀렸더라도 국어를 잘한다고 말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큰딸과 국어 시험지를 놓고 마주 앉았다. 틀린 문제를 풀어보며 나는 앞에 늘어놓은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언어의 예민함이 어쩌고저쩌고 하고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딸이 심드렁한 눈빛을 보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꼼지락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그제야 왜 틀렸는지 물어보니 봇물처럼 자기 의견을 쏟아냈다. 이러쿵저러쿵. 미주알고주알. 요래요래 조래조래. 정확히 무슨 말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가 낳은 딸, 그랬으니 당연히 날 닮을 수밖에 없는 딸이 글에 대해 나랑 비슷하게 예민하게 굴며 하는 모든 얘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이상 국어 시험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올바른 것'에서 '가장'의 중요성을 두고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소울메이트를 만난 듯 행복해지고 말았다. 넌 누가 뭐래도 국어를 잘하는 아이라고 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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