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야 하는 이유

김희연 2023. 10. 1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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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박성제 지음 < MBC를 날리면 >을 읽고

[김희연 기자]

지난 2010년, MB 정권 시절 보행자 우측통행이 실시됐다(2010년 7월 도로교통법으로 규정). 우측통행 실시는 전문가들이 연구를 통해 합리적인 이유를 도출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학교 복도에서건 인도에서건 좌측통행에 익숙했던 나는 한동안 우측과 좌측을 오가며 우왕좌왕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이런 농담을 했다. "아, 헷갈려. 왜 왼쪽 길로 잘 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으로 바꾸라는 거야. 하긴 얼마나 좌파가 싫었으면 통행도 오른쪽으로만 하라고 하겠어." 나는 이런 우스갯소리를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언론은 어떤가.     

광우병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에게 박수를 받던 MBC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서는 '엠빙신'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세월호 참사 보도는 사실 뉴스라고 해도 되나 싶을 만큼 처참했다. 뉴스 신뢰도는 바닥을 쳤다. 정권이 바뀌고 사장도 바뀌었다.

최승호 사장을 거쳐 박성제로 이어지면서 MBC 뉴스의 시청률은 예전의 명성을 되찾았고 회사 전반의 경영 실적도 좋아졌다. 시청률과 경영 실적은 숫자가 나타내는 것이니 여기까지는 팩트다. 이것도 아니라고 우긴다면 유구무언이고.
 
 MBC를 날리면 - 언론인 박성제가 기록한 공영방송 수난사, 박성제(지은이)
ⓒ 창비
 
박성제 사장은 연임에 실패했다. 그리고 책을 썼다. <MBC를 날리면>(박성제, 창비, 2023)은 전 MBC 사장이자 언론인인 박성제가 기록한 공영방송 수난사다. 카피에도 나오듯이 정국이 요동침에 따라 언론사들도 수난을 당한다. 나는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행동이 어느 정권에서는 잘못이 되고 또 다른 정권에서는 괜찮은 일이 되는 패러다임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순진하다고 했다. 권력의 속성이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언론은 누가 정권을 잡건 자신의 본분을 다하면 된다는 생각이 순진하다고? 그래서 화가 날 때가 많았다(언론의 본분이 권력과의 짝짜꿍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유구무언이고!).     

그러면서 잊고 살게 됐다. MBC가 '만나면 좋은 친구'이건 '만나면 열받는 친구'이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이 책의 3부 'MBC 죽이기의 시작'을 읽으면서 잊고 있던 '화'가 스멀스멀 밖으로 나왔다. 

<MBC를 날리면>에는 굵직한 정치권의 사건과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 다시 이에 대항(?)해 방송을 길들이려는 막후의 움직임이 기록돼 있다. 뒷표지의 소개 문구에 따르면 '박성제가 직접 보고 겪은 언론장악의 막전막후'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화를 누르며 생각한다. '혹시 내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미 정해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성제 사장이 자신과 MBC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쓴 글에 내가 넘어간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검증하고 있는 나에게 화가 났지만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생각의 결과는 같았다. 

MBC에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KBS는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가 불거졌다. 공영방송의 무력화 움직임을 두고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순진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눈 가리고 아웅이다.

나쁜 정권은 있고, 나쁜 정치인도 있고, 나쁜 언론도 있다. 나쁘기만 한 사람이나 조직이 어디 있겠냐고도 한다. 그럼 다시 말해보자. 진짜 나쁜 권력과 언론이 있다. 좀 덜 나쁜 권력과 언론이 있다. 그리고 적어도 무엇이 옳은지 길을 찾기 위해 애를 쓰는 권력과 언론이 있다.     

자, 나는 다시 생각한다. 진짜 나쁜 권력과 언론은 있다. 이것은 순진한 생각이 아니다. 그러므로 걱정도 된다. 어느 정권이든 MBC를 날리면 다시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는 뉴스를 보아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럼 또 바른 언론이고 나발이고 에라, 나도 모르겠다 같은 마음이 되지 않을까.

나는 저자가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한다. 192쪽에서 그는 말한다.
"나는 절망과 분노에 익숙하다. 오히려 피 끓는 전투 의지를 느끼고 있다. 다시 가시밭길을 걸으며 힘겨운 싸움을 준비하고 있을 MBC 언론인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그도 알고 나도 안다. MBC에 어떤 미친 바람이 불어올지. 그렇기에 지난 몇 년간 MBC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야 광풍 앞에서 버티고 설 의지가 생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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