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로로와 동물 친구들에게서 우리 아이들을 데려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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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신문 강정희]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딸 가족과 나들이 겸해서 점심을 먹으러 교외로 나갔다. 가끔 가는 채식 뷔페를 검색해보니 영업 중이라고 안내되어 있어서 반가워하며 갔는데, 도착해보니 주차장이 텅 비었고 조명도 꺼져 있었다. 돌아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오랜 전통의 한정식 식당이 있음을 기억해내고 찾아갔다.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들어차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나무 아래 삼삼오오 서성대는 사람들은 자리가 없어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차들은 계속 들어와 차창을 내리고 빈 곳을 찾아 느리게 움직였다.
준비된 노트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두고 나온 사위가 대기 시간이 50분 정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이것이 소위 '웨이팅'이라는 것이구나. 나는 그 상황이 낯설기도 하고, 사람이 많으니 실내 분위기도 소란할 것 같아 다른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곳도 30분이 걸리고, 거기도 상황이 어떨지 모르니 그냥 초가을 풍광을 구경하면서 기다리자는 의견이 많았다. '집에서 한끼 편안히 먹을 걸 괜히 번거롭게 외식을 한다고 밖으로 나왔구나.' 살짝 후회가 밀려왔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 대기는 쾌청하고 하늘에는 햇솜처럼 부푼 구름이 무슨 예술작품 못지않은 장관을 연출하였다.
릴케의 시 '가을날'처럼 포도와 사과에 마지막 단맛을 스미게 하는 볕이 따사롭게 등에 닿았다. 고흐의 '추수'처럼 논에 벼는 노릇노릇 익어가고, 하얗게 피기 시작하는 억새와 수줍은 듯 낮게 피어 더 눈길이 가는 연보라 구절초와 단단하게 여문 맨드라미가, 이 가을도 잠시 잠깐이라고 알려주었다. 손주에게 가을 풍경을 보여주고 싶은데 감기 기운을 못 이기고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어 아쉬웠다.
어느새 우리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입식 테이블이 배치된 아래채 별실에는 6인과 4인 구성의 두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도 있었다.
걱정했던 바와 달리 실내는 매우 조용하였다.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얘기하며 서로를 챙기고 음식을 나누고 있었다. 휴대폰도 울리지 않고 통화하는 사람도 없었다. 덩달아 우리도 조심히 자리를 잡고 앉아 가만가만 얘기를 하게 되었다. 아기를 데리고 있어서 혹시 폐가 될까봐 더 조심했다. 그날 그 방의 식사 분위기는 참으로 우아하였다.
가끔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큰 목소리로 얘기하는 사람들을 본다. 어찌나 크게 얘기를 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그 내용을 훤히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일행 중 누군가 내게 말한다.
"제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공중도덕을 잘 가르쳐서 졸업 시켜요."
지난 주말 점심에 남편과 팥죽을 먹으러 갔다. 옆 탁자에는 네다섯 살로 보이는 딸과 초등 1, 2학년으로 보이는 아들, 그리고 성인 4명의 가족이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같은 탁자에 앉은 어른 넷은 대화에 열중했고 우리쪽으로 옆 좌석에 두 아이가 마주 앉아 있었다.
포크를 들고 비교적 능숙한 손짓으로 면발을 먹고 있던 딸이 엄마를 불렀다.
"엄마!"
"지금 어른들과 대화 중이잖아?"
엄마 목소리는 단호했고, 아이는 바로 조용해졌다.
내가 그들을 유심히 보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딸의 그릇 너머에는 파란색 프레임의 장난감 같은 아이패드가 거치대 위에 세워져 있었다. 화면에서는 노란색과 핑크색의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 나와서 서로 어울리고 깡충거리며 노는 애니메이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화질은 선명하고 동물 친구들 캐릭터는 눈에 쏙 들어오게 깜찍하였다. 대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실내가 소란해서인지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아이는 포크로 음식을 입에 떠넣으면서도 눈은 화면에 고정하고 있었다.
맞은 편의 아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음식은 그릇에 절반 이상 남아있는데 먹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빠와 여동생은 탁자에 마주 앉아 있지만 사실은 아주 멀리 있었다.
부모와 자녀는 나란히 앉아 있지만 같이 있는 게 아니었다. 식사가 끝나고 모두 일어나 나갈 때까지 동물 친구들 영상은 탁자 위에서 계속 재생되고 있었고, 계산을 마친 아빠가 다시 돌아와 챙겨 들고 갔다.
요즘 육아에 아이패드가 필수란다. 아기가 울 때 뽀로로 영상을 보여주면 바로 울음을 그친단다. 아기의 울음은 아기의 말, 아직 지구별의 언어를 배우지 못해 울음으로 대신하는 것, 어른이 들여다보고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내야 하거늘, 뽀로로 영상으로 아기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말을 못 하게 하는 게 아닌가.
그게 지능이나 디지털 능력과 이어지는 것인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기들은 잠시도 한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변의 모든 것이 궁금해 입에 넣어보고 만져 보고 던져보고 어른을 불러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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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강진대구중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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