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도 관객도 눈물 쏟았다…세상 밖 나온 그녀의 마지막 인터뷰

권근영 2023. 10. 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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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석 감독 '진리에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영화 '진리에게'에서 인터뷰 하고 있는 설리.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고소를 진행하면서 더 상처를 많이 받았거든요. 기분이 좋거나 화난 게 가라앉거나 그런 것보다요. (악플을 쓴) 그 사람을 잡았다고 얘기했을 때도, 그 사람이 저한테 미안해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때는 그 친구에게 어떻게 사과받아도 상처였을 것 같아요.”

왜 악플러를 선처했느냐고 묻자 스크린 속 설리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끝내 눈물을 쏟았다. 객석의 관객들도 훌쩍였다.

7일 부산 해운대구 CGV센텀시티, 설리(최진리ㆍ1994~2019)의 마지막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진리에게’가 처음 공개됐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섹션의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월드 프리미어 초청됐다. 영화제 기간 중 3번 상영 모두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며 높은 관심을 모았다.

영화 '진리에게'에서 설리는 "(연예계 활동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건 스스로를 자책하고 깎아내리는 것 뿐이었다"고 돌아봤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11살 때 드라마 ‘서동요’로 데뷔한 설리는 2009년 F(x) 멤버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2015년 팀에서 탈퇴 후 배우 활동을 이어갔고 2019년 10월 14일 2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당초 5편으로 넷플릭스에 공개하려 기획된 ‘페르소나: 설리’는 촬영 도중 설리의 죽음으로 제작이 중단됐다. ‘페르소나: 아이유’에 이어 ‘페르소나: 설리’를 기획한 미스틱스토리는 4년 만에 인터뷰 촬영분으로 별도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넷플릭스와 스트리밍 여부를 논의중이다.


"연예인들도 사람이라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연예인 일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얘기가 ‘너는 상품이고 사람들에게 가장 최상의, 최고의 상품으로 존재해야 해’라는 거예요.”


화면 속 설리는 흰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아이돌 생활의 고충, 예쁜 아이 콤플렉스, 페미니즘 선언, 악플 선처 등에 진중하게 답한다. 답변을 위해 오래 고민하지만 회피하지 않고, 인터뷰의 마지막 남은 3분도 그냥 넘기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영화는 생전 인터뷰 속 침묵과 고민의 순간까지 담으며 중간중간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 이미지의 애니메이션을 삽입했다. ‘도로시’는 설리가 세상을 떠나기 4개월 전에 발매한 솔로 앨범 수록곡이다. 직접 작사한 노래 속에서 설리는 질투ㆍ사랑ㆍ진리ㆍ화려함ㆍ비겁함ㆍ사막ㆍ빙산 등으로 도로시를 말하며 꿈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숨지기 4개월 전에 낸 데뷔 앨범이자 유작 '고블린'.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정윤석 감독은 "배우로서 꿈이 큰 분이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정 감독은 지존파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논픽션 다이어리’(2013)에 이어 북한을 풍자하는 인디밴드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2017)로 들꽃영화상 대상을 받았다. 2020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돼 리얼돌 공장과 그 사용자들을 촬영한 영상을 전시했다. 다음은 상영 후 관객과의 일문일답

Q :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된 ’눈썹‘도 봤다. 이전 영화와 다른 전개 방식을 택한 이유는?
"제가 이래서 처음부터 관객들 질문 받기 싫었는데, 어제 잠을 못 잤다. 영화 만들 때 항상 주인공 중심으로 생각한다. 주인공의 삶 존중하면서 선 넘지 않는 것. ’밤섬‘의 박정근 씨는 국보법상 찬양ㆍ고무죄로 기소됐다. 대법원서 무죄 확정되기까지 5년이 걸렸다. 그럴 줄 알았다면 영화 찍지 않았을 거다. 5년 동안 카메라 들고 가 과정을 함께 하며 신뢰를 쌓아 갔다. 진리 씨도 마찬가지다. 찍을 때 주인공들과 눈높이 맞추려 하지 내려다보려 하지 않았다."

7일 부산 해운대구 CGV센텀시티에서 영화 '진리에게' 월드 프리미어 상영 후 강소원 프로그래머(왼쪽)와 정윤석 감독이 대담하고 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Q : 주인공으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감독만의 방법이 있나.
"서로의 말에 끼어들어 자기 분량을 따먹는 예능에서조차 진리 씨는 아주 경청하셨다. 감독인 내게도 요구하기보다 내 입장을 많이 수용하려 했다. 친절과 배려를 항상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연예인이나 아이돌이 아니라 아티스트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13살 아역배우 시절부터 14년 치 기사를 제본해서 다 읽으면서 질문을 준비했고, 주인공이 대답할 때까지 기다렸고, 대답을 고민하는 침묵도 잘려나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Q : 주인공의 상황이 바뀌면서 최초 기획과 달라진 영화다. 이에 대해 주인공이 동의도 반론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가장 주의를 기울인 점은?
"기자분이신 듯? 두 인권변호사를 법률자문으로, 청소년 정신과 상담의의 검토도 거쳤다. 유족 보호와 고인의 명예를 중시했다. 주인공이 공개를 원칙으로 인터뷰 촬영을 했다. 그 내용은 모녀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여성ㆍ약자ㆍ평등 등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주인공 진리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분을 그리워하는 이 땅의 수많은 진리를 위한 영화일 거라고 (진리 씨의) 어머니께도 말씀드렸다."

정윤석 감독은 영화 '진리에게'가 "주인공 진리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를 그리워하는 이 땅의 수많은 진리들을 위한 영화"라고 말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Q : 팬으로서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계기 마련해 줘 감사하다. 원래 넷플릭스에 내기로 했던 그 원작 영상에서 추가로 더 공개될 게 있나.
"질문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넷플릭스에 대해 뭔가 아시는 게 있나. 촬영 영상은 인터뷰가 기본, 유족의 협조 얻어 고인의 기록과 유품, 집 촬영한 것이다. 그리고 유작 중 '도로시'라는 곡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화자가 결국 진리라는 것이 중요하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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