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유료화…돈 되는 ‘팬덤 플랫폼’
과거 연예 기획사 등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의 대표적 마케팅 전략은 ‘신비주의’였다. 쉽게 말해 궁금증 유발 작전이다. 팬들은 아티스트의 일상을 가끔 방송되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접했다. ‘직접’ 소통은 꿈에서나 가능했다. 하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가장 아끼는 ‘최애 아티스트’와 메신저로 1 대 1 대화를 나누고,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며 일상을 전해 듣는다. 멀리서만 바라보던 아티스트는 내 댓글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안부를 묻는다. 가끔 비용 지불이 부담스럽지만, 최애 아티스트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
팬들의 꿈을 현실로 바꾼 것은 팬덤 플랫폼이다. 양대 산맥은 디어유와 위버스컴퍼니다. 이들은 2020년 각각 버블(메신저 기반)과 위버스(커뮤니티 기반)를 내놓고 엔터업계를 뒤흔들었다. 성장 속도도 상당하다. 위버스 앱의 누적 다운로드 수는 올해 상반기 1억건을 돌파했다. 디어유는 지난해 버블로만 492억원의 매출을 냈다. 주된 수익원은 팬들이 지불하는 ‘소통 비용’이다. 팬덤이 하나의 산업을 만들어낸 셈이다. 디어유와 위버스는 ‘해외 아티스트 영입’을 통해 해외 시장으로도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Q의 한계 파괴…영업이익률 35%
자본 시장에서도 팬덤 플랫폼을 주목한다. 기존 엔터 산업이 가진 ‘총량(Q)의 한계’를 풀어낸 덕분이다. 엔터 산업의 주인공은 아티스트다. 이들이 앨범을 내거나 작품에 출연하고, 콘서트를 개최해 1차 수익을 창출한다. 앨범이나 작품이 성공적이라면 더 좋다. 이를 활용한 굿즈(상품) 판매 등 2차 수익을 노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아티스트도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 콘서트를 열고 앨범을 제작할 수 없다. 휴식 기간이 필수다. 엔터 산업은 Q의 한계를 넓히는 방법을 늘 고민해왔다.
팬덤 플랫폼은 이를 해결했다. 앨범과 작품 활동이 없는 시기에도 ‘소통’을 앞세워 수익을 낸다. Q의 한계를 넓힌 셈이다. 주요 엔터 업체들이 팬덤 플랫폼을 갖고 있는 배경이다. 디어유는 에스엠(SM) 자회사 에스엠스튜디오스가 최대주주로 있고, 위버스컴퍼니는 하이브 자회사다. 엔터업계 관계자는 “아티스트에게는 소통도 업무 중 하나기 때문에, 피로감이 커질 수 있다”며 “다만 기업 입장에선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만들어낸 것이고, 팬과의 소통이라는 명분도 챙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 개발 단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비용 지출’이 없다는 점도 주목받는 이유다. 그야말로 ‘화수분형’ 사업 구조인 셈이다. 매출 확대가 그대로 수익성 증대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버블 운영사 디어유는 2021년부터 3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내고 있다. 영업이익률은 매출에서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예를 들어 100원의 매출을 내면 30원 이상이 영업이익으로 쌓인다는 뜻이다. 디어유는 올해 상반기도 매출 354억원, 영업이익 12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35.2%에 달한다.
팬덤 플랫폼의 또 다른 특징은 안정성이다. 경기 침체 등 외부 요인이 덜하고, 팬들의 충성심(로열티)이 높다. 고객 이탈 부담이 적다. 이에 향후 전망도 긍정적이다. 이환욱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신규 팬덤 확대가 구독 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며 “신규 재산권(IP) 입점에 따른 구독 수 증가도 주목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박수영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존 IP 팬덤 성장과 신규 IP 입점에 따른 양적 성장이 원활히 나타나고 있다”며 “다양한 기능 개선으로 질적 성장까지 동반돼 실적은 꾸준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릴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DM서 격돌…본격 ‘유료화’ 위버스
프롬 운영하는 ‘노머스’까지 3파전
팬덤 플랫폼 양대 산맥 디어유와 위버스는 사뭇 다른 수익 모델을 추구해왔다. 디어유 버블은 ‘메신저’를 기반으로 수익을 낸다. 팬이 월 단위 비용을 내고 아티스트와 1 대 1 대화를 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채팅방 내 아티스트의 손글씨 폰트 적용 기능, 이모티콘 등이 추가돼 수익 모델을 다변화하고 있다. 박수영 애널리스트는 “ ‘아티스트가 사용하는 이모티콘이라면 나도 사고 싶다’는 심리 덕에 실적에 유의미한 기여가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위버스는 라이브 방송 등 커뮤니티 기능에 집중해왔다. 플랫폼에 무료 입장한 팬을 상대로 광고를 노출, 각종 앨범이나 콘서트 티켓을 판매해 수익을 창출했다.
확실한 수익 모델(유료 메신저 구독)을 갖춘 디어유 대비 수익성이 부진했다. 결국 위버스는 최근 유료 구독형 서비스를 도입했다. 위버스는 지난 5월 아티스트와 팬이 비공개로 대화할 수 있는 ‘위버스 DM’을 시작했다. 디어유 버블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팬이 아날로그 손글씨 감성으로 꾸민 메시지를 아티스트에게 전달하는 ‘팬레터 기능’ 정도가 차별화 포인트다.
결국 디어유와 위버스의 ‘유료 메시지’ 경쟁은 누가 더 많은 아티스트를 확보하느냐에 갈릴 전망이다. 현재는 디어유의 압승이다. 올해 9월 말 기준 버블로 소통 가능한 아티스트는 500명을 훌쩍 넘어섰다. 반면 위버스 DM은 9월 말 기준 일본 인기 걸그룹 AKB48과 배우 이수혁, 츄, 펜타곤 등 총 13개 팀만 소통 가능하다. 하이브 산하 아티스트들도 아직 서비스에 발을 내딛지 않은 상태다.
디어유와 위버스가 맞붙은 사이 프롬(fromm)을 운영하고 있는 엔터테크 기업 노머스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프롬은 디어유 버블, 위버스 DM처럼 아티스트와 팬이 1 대 1로 채팅할 수 있는 서비스다. 8월 말 기준 김재중, 김준수, 지올 팍, 루셈블, 체리블렛, SF9, 오메가엑스 등 200여명의 아티스트가 프롬을 이용하고 있다. 노머스는 상장을 꿈꾸고 있다. 지난 8월에는 250억원 규모의 프리IPO(상장 전 지분 투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해외 아티스트 IP 확보 위해 JV 설립
잘나가는 팬덤 플랫폼이지만 고민은 있다. 국내 기준 구독 파워가 있는 아티스트 대부분은 팬덤 플랫폼에 입점한 상태다. 사업 확대를 위해서는 해외 아티스트를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위버스에는 제레미 주커, 뉴 호프 클럽, 히라테 유리나, AKB48, 이마세 등 해외 라이징 아티스트들이 입점했다. 다만 구독자 수를 보면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국 추가적인 사업 확대를 위해서는 ‘대형 해외 아티스트’ 입점이 필수인 상황이다. 문제는 팬덤 플랫폼에 대한 이해도다. 인지도가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업 모델을 설명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해외 아티스트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 건 디어유도 마찬가지다. 이에 디어유는 합작사(JV) 카드를 꺼내들었다. 디어유는 지난 2월 일본 최대 엔터 기업인 엠업홀딩스(m-up holdings)와 JV 설립 계약을 맺었다. JV 이름은 ‘버블 포 재팬(bubble for Japan)’이다. JV 지분 구조는 엠업홀딩스 51%, 디어유 44%, 기타 개인이 5% 형태다. 디어유는 JV에 기술 지원 등 솔루션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는다. 엠업홀딩스는 JV 운영과 IP 영업 등 사업 전반을 맡는다. 디어유 입장에서는 해외 아티스트 IP로 발생하는 매출 일부와 지분법 이익 등을 누릴 수 있다.
증권가도 디어유 행보를 주목한다. 합리적 전략으로 해외 아티스트 IP를 확보했다는 평가다. 이환욱 애널리스트는 “연내 출시되는 버블 포 재팬은 내년 디어유 실적에 추가적인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서비스 출시 후 디어유는 JV 매출의 10%를 받게 되고, 지분율 44%에 해당하는 지분법 이익도 실적에 반영될 것”이라며 “보수적으로 접근해도 매출액 증분은 43억원 정도, 지분법 이익도 43억원 정도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9호 (2023.10.11~2023.10.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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