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을 놓치지 마세요

노은주 2023. 10. 13. 10: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담양에 있는 관방제림을 다녀와서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노은주 기자]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더위가 어느 순간 소리도 없이 자취를 감췄다. 얇은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했다가 화들짝 놀라 어이없게 히터를 바라봤다. 며칠 전만 해도 에어컨에 의지해 생활했는데 마음의 변화가 참으로 간사하게 느껴졌다. 계절이 추석을 전후로 완벽하게 얼굴을 바꾼 것이다. 본격적인 가을로의 입성이다.

이런 가을에는 일교차 또한 크니 주의해야 한다. 자칫 방심했다간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낮 동안의 청명함과 따사로움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공기를 제공하여 몸을 움츠리게 한다. 더위로 느슨해진 몸이 갑작스러운 추위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반응 하나하나가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날이 차가워지고 있으니 어서 몸을 움직여 열을 내라는 심도 있는 의미의 신호. 그래서 가을에는 집에만 머무르는 걸 경계해야 한다. 햇빛을 보기 위해, 살랑이는 바람을 맞기 위해 우리는 가까운 자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부드러워진 공기를 맞이해야 한다.
 
▲ 담양 관방천 담양 관방천 위에서는 오리배를 탈 수 있다. 어린이를 위한 자동차배도 있다.
ⓒ 노은주
 
지난 주말 담양에 있는 관방제림엘 다녀왔다. 햇빛을 느끼고, 바람을 맞으며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서였다. 피부에 닿는 햇빛의 순함과 공기의 신선함으로 계절의 변화를 실감했다.

여름날의 햇빛은 따갑게 머리를 찔러 화를 불러오지만, 가을날의 햇빛은 시인의 기도처럼 따스하게 다가온다. 성난 화산처럼 부글거리던 마음이 잔잔한 호수가 되는 것이다. 그런 온화함은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보았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명랑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내가 거닐었던 관방제림은 광방천에 있는 제방을 이르는 말이다. 광방제가 유명해진 것은 광방천을 따라 멋스럽게 조성된 거대한 나무숲 때문이다. 2km에 달하는 풍치림(멋스러운 경치를 더하기 위하여 가꾸는 나무숲)은 관방제를 광방제림으로 불리게 만들었으며, 1991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했다. 잘 조성된 나무숲 하나가 제방과 어우러져 멋진 관광자원이 된 것이다.
 
▲ 담양의 국수의 거리 담양 국수의 거리에서는 관방천을 바라보며 국수를 먹을 수 있다.
ⓒ 노은주
 
관방제림의 관방천 위에서는 오리배를 탈 수 있고, 천을 가로질러 놓여 있는 징검다리 위에서는 물속을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을 관찰할 수 있다. 징검다리에 쪼그리고 앉아 자잘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헤어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물멍을 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물아일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과 노닐다 보면 서서히 배가 고파온다. 그럴 땐 근처에 있는 국수의 거리를 찾으면 된다.

국수의 거리는 관방제림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데, 노천에 식탁을 놓아 광방천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여름이라면 에어컨이 없는 환경이 짜증이 날만도 한데, 가을날의 신선한 바람은 뜨근한 국물을 들이킬 수 있는 이곳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로 만들어준다. 혹시라도 국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관방천을 따라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또다른 음식들을 맛볼 수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선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국수의 거리에서 음식을 즐기고 배가 부르다 싶으면 근방에 있는 죽녹원에 들러 산림욕 하는 것도 권해 본다. 죽녹원은 담양의 대표적인 명소로 담양군이 추진한 대나무숲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테마공원이다.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공원'이란 뜻의 죽녹원에서 울창한 대나무들이 들려주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세상의 시름이 사라지는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잠깐 동안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눈과 순한 말을 하는 자신의 입을 보게 될 것이다.
 
▲ 관방천 징검다리 관방천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 사진 속 징검다리는 안전하나 운치는 없다. 위쪽에 돌로 만든 징검다리도 있다.
ⓒ 노은주
 
이만큼이나 즐겼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싶으면 차를 타고 자리를 이동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주변에 있는 메타프로방스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메타프로방스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근처에 만들어진 테마파크인데, 메타세쿼이아의 메타와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프로방스의 프로방스가 합쳐져 만들어진 곳이다.

이곳에서는 프로방스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이국적인 건축물들을 볼 수 있고, 다양한 수제 기념품들도 구경할 수 있다. 구경하다 지쳤을 때 찾을 수 있는 카페와 식당도 많으니 아이를 대동하더라도 큰 걱정 없이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각 계절이 주는 매력에 순위를 매길 순 없지만, 유독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계절이 있으니, 그 계절에 밖으로 나가 활력을 충전해 보는 건 어떨까? 순한 마음을 하고 순한 마음의 자연과 함께 호흡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자칫 다음에 나가야지 하다가 계절을 놓쳐버리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으니 이 가을, 그가 가기 전에 당장 문 밖으로 나가 붙잡아 볼 일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스토리와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