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숙증 환자 급증하는데 보험혜택 줄이는 정부… 왜?

신은진 기자 2023. 10. 13. 10:1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급여 대상 연령​ 여아 8세·남아 9세​ 명시… 선의의 피해자 우려
보건당국이 성조숙증 아동의 성호르몬제 억제 급여투약대상 연령을 여아 8세(7세 365일) 미만, 남아 9세(8세 365일) 미만​으로 명시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와 성조숙증 아동 보호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게티이미지뱅크
8살 딸을 둔 40대 A씨는 요즘 걱정이 많다. 또래보다 키가 크지도 않은 아이가 가슴 멍울이 잡히는 등 성조숙증 의심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주변을 보니 딸만 성조숙증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조숙증 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이미 많았고, 치료 대기 중인 아이들은 더 많았다. 치료를 받는 아이의 부모들은 성조숙증 진단만 받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며 저렴하게 치료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성조숙증은 여아에서 만 8세 이전, 남아에서 만 9세 이전에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걸 말한다. 현재 성조숙증을 치료하는 성호르몬 억제제는 2차 성징이 확인된 9세 여아와 10세 이하 남아에게 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성조숙증 치료에 사용하는 성호르몬 억제제(GnRH gonist 주사제)의 급여 투여 대상 연령을 한 살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는 줄고, 성조숙증 환자는 증가한다는데 왜 정부는 성조숙증 치료 급여 축소를 추진하려는 걸까?

◇급여대상 '여아 8세·남아 9세' 추진하는 정부
심평원은 이달 초 대한소아내분비학회 등 소아성장 관련 전문가들에게 성조숙증 치료제 급여 투여대상을 '여아 8세(7세 365일) 미만, 남아 9세(8세 365일) 미만'으로 명시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 급여투여대상 연령을 정확하게 제시해 성조숙증 진료가 적정하게 이뤄질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이유였다.

기존 급여투여 대상은 2차 성징성숙도(Tanner stage) 단계와 골연령, GnRH(생식샘자극호르몬분비호르몬) 자극검사 결과 등의 기준만 설정되어 있고, 구체적인 연령이 명시되지 않는다. 다만, 급여투여 시작 시점을 '여아 9세(8세 365일), 남아는 10세(9세 365일) 미만'으로 설정해 사실상 9세 여아와 10세 남아까지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개정안은 투여대상 연령을 '여아 8세(7세 365일) 미만, 남아 9세(8세 365일) 미만'으로 분명히 했다. 개정안을 적용하면, 여아 8세(7세 365일) 미만, 남아 9세(8세 365일) 미만에 성조숙증 진단을 받아야만 성호르몬 억제제를 보험 혜택을 받으며 사용할 수 있다. 성호르몬제 급여 치료 대상을 여아 9세·남아 10세에서 여아 8세·남아 9세로 변경하는 셈이라, 급여 대상 축소라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맘카페' 등 성조숙증 환자 보호자가 모인 커뮤니티에선 '이게 보험축소가 아니면 뭐가 보험축소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성조숙증 치료를 하는 의사들 역시 개정안은 사실상 보험급여를 축소하는 방안이라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병원 소아내분비과 교수 A씨는 "심평원은 개정안을 통해 급여투여대상을 명확하고자 할 뿐이라고 하겠지만,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환자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개정안은 급여축소안이 맞다"고 밝혔다.

실제로 심평원은 개정안이 급여 축소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심평원 관계자는 헬스조선과의 통화에서 "개정안은 현행 진료지침을 반영한 것일 뿐 절대로 급여 축소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성조숙증 진단 과정에서 확인하는 2차 성징 발현 시점은 임상진료지침에 언급되어 있어 이를 고시에 명확히 한 것이다"며 "보험급여 인정 투약 시점은 현행 기준이 유지되기에 급여가 축소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급증한 성호르몬 치료, 부담 커진 건강보험
전문가도 급여연령 기준 개정안은 보험급여 축소안이라 평가하고, 당사자인 환자와 그 보호자들도 치료혜택 축소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는 지난 5월과 같은 상황이 반복된 것임에도 정부는 '개정안이 보험축소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는 올해 5월 성호르몬 치료 급여투여대상을 명시한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환자 보호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개정안을 추진하지 못한 바 있다.

부정적 여론이 팽배함에도 정부가 이렇게까지 개정안을 추진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건강보험 재정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성조숙증 환자가 급증하면서 관련 보험재정 지출도 급증했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18세 미만 성조숙증 현황'에 따르면 국내 성조숙증 환자는 5년 새 약 80% 증가했다. 성조숙증 환자는 2018년 환자 수 10만1273명이었으나 지난해 성조숙증 환자는 17만8585명으로 76%나 늘었다. 성조숙증 전체 진료비도 2022년 1000억2567만원을 기록하며 2018년 520억7200만원에서 92%나 증가했다.

특히 급여기준 조정 대상이 되는 여아 8~9세, 남아 9~10세 사이에서 환자가 매우 증가했다. 국내 주요 대학병원과 성장클리닉에 따르면, 성조숙증 치료를 하는 40~90%는 8~9세 여아와 9~10세 남아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채현욱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성조숙증 환자가 증가추세라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성조숙증 치료 환자가 증가해 정부 입장에선 보험재정 지출에 부담을 느꼈으리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급여투여 대상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적으로 공통된 성조숙증 진단 기준(역연령 여아 8세 미만, 남아 9세 미만)으로 구체화하면, 자연스럽게 국내 성조숙증 환자의 최소 40%를 차지하는 여아 8~9세, 남아 9~10세에 대한 지출이 사라진다"며 "정부에겐 관련 보험지출을 절반까지 줄이고, 성조숙증 치료 오남용까지 해결할 기회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하필 성조숙증 치료제가 급여조정 대상이 된 걸까? 정부 사정에 밝은 또다른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B씨는 "전반적으로 커지는 보험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운 정부가 절대적인 수가 적어 비교적 만만한 소아청소년 관련 급여부터 축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심평원의 말대로 개정안은 급여기준을 명확하게 한 것도, 전 세계 공통 기준을 적용한 것도 맞다"고 했다. B씨는 "그러나 의료접근성이 좋은 나라임에도 소아내분비과 전문의에게 정확한 성조숙증 진단을 받기까지 최소 수개월, 1년 이상까지 소요되는 일이 많고, 절대적인 환자 수가 많지 않음을 고려한다면 심평원의 개정안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고 밝혔다.

◇성조숙증 아동 선의의 피해자 될 수도… 신중한 결정 필요
성조숙증 치료 전문가들은 심평원의 개정안이 추진되면, 선의의 피해아동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 성조숙증의 특성 때문이다.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안문배 교수는 "성호르몬 억제 치료제의 부작용이 거의 없다지만, 그럼에도 성조숙증 치료는 신중해야 한다"며 "그래서 초진에 치료를 결정하기보단 시간을 두고 지켜본 후 최종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결정하자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정안을 적용하면 치료제 오남용을 피하고자 돌려보낸 아이들이 보험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또한 안 교수는 "진료, 검사를 위해 수개월을 기다리다가 급여 적용 시기를 놓칠 위험에 처하는 일이나 아이가 성조숙증이 의심되는 걸 알면서도 사정상 바로 병원에 갈 수 없는 부모는 지금도 많다"며 "이런 아이들과 '보호자에게 병원에 늦게 온 당신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전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채현욱 교수도 "성조숙증은 나이가 기준이라 애매한 측면이 많은 질환이다"며 "8세 11개월에 생리를 하는 건 보험급여 치료가 필요한 상태고, 9세 1개월에 생리를 하는 아이는 보험급여가 필요없는 정상 상태라고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다만 성조숙증 치료가 남발되는 건 일정 부분 사실이라, 개정안은 이를 개선함과 동시에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했다. 채 교수는 "무분별한 성조숙증 치료가 증가하고 보험재정을 위협하고 있어 급여 기준을 분명하게 할 필요는 있다"며 "그러나 질환 특성상 충분하게 검토하고 결정할 일이다"고 밝혔다.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