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타' 고찰에서 시작된 이야기... "공존 없는 공정은 이기주의"

유지영 2023. 10. 1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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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임윤경 연세대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쓴 <공정감각> ... 인세, 청소노동자들에게 전액 기부

[유지영 기자]

지난 2022년 5월, 서울 신촌 연세대학교 재학생이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으로 인해 자신의 '수업권'이 침해당한다는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가 논란으로 번진 일이 있었다.

당시 대학교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도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고소를 한 재학생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등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이들 청소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분을 반영해 학교 측에 시간당 임금을 400원 가량 인상하고 샤워 시설을 마련해달라는 상식적인 요구를 했음에도 '에브리타임'에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에브리타임' 바꿔볼 수 없을까
 
 책 <공정감각> 표지 이미지
ⓒ 문예출판사
 
그 다음 학기를 맞이해 연세대학교에는 '사회문제와 공정'이라는 수업의 계획서가 업로드된다. 수업을 개설한 이는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나임윤경 교수.

그는 수업계획서에서 "연세대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 의무는 학교에 있지 청소노동자들에게 있지 않음에도, 학교가 아니라 지금까지 불공정한 처우를 감내해 온 노동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이들의 '공정감각'이 누구를 향한, 혹은 누구에게 향했어야 할 감각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이어 "그뿐만 아니라 그 눈앞의 이익을 '빼앗은' 것으로 호도된 사람들을 향해 '에브리타임'에 쏟아내는 혐오와 폄하, 멸시의 언어들은 과연 이곳이 지성을 논할 수 있는 대학이 맞는가 하는 회의감을 갖게 한다"라며 "본 수업을 통해 '에브리타임'이라는 학생들의 일상적 공간을 민주적 담론의 장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을지 모색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여러 언론을 중심으로 나임 교수의 '사회문제와 공정' 수업계획서가 재학생의 고소와 더불어 큰 화제를 불러온다. ( 관련기사 : "학생들 청소노동자 고발, 부끄럽다"...수업계획서로 일침 놓은 연대 교수 https://omn.kr/1zm5c ) 

그리고 9개월이 흘러 나임윤경 교수와 '사회문제와 공정' 수업을 들었던 수강생 13명이 모여 책을 묶었다. 그것이 지난 9월 20일 출간된 책 <공정감각>(문예출판사>'에브리타임에서 썰리고 퇴출당하며 벼려낸 청년들의 시대 감각'이다.

수강생들은 '에브리타임'에서 줄곧 비웃음 사곤 했던 노동, 성차별, 능력주의, 장애인 인권, 성소수자, 기후 위기(비거니즘) 등의 주제를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나임윤경 교수에 따르면 수강생들이 선택한 주제들은 각자 '에브리타임'에서 가장 많이 조롱되고 폄하되는 주제라고 한다. 
 
"'에브리타임'이 전국 대학생들의 공통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대학생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공간은 아니다. 소수의 목소리 크고 선명성이 남다른 사람들의 압도적으로 많은 의견에 언론이 마이크를 갖다 대니, 그들이 마치 20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양하게 된 것이다." (책 <공정감각> 223쪽서 인용)

책 <공정감각>의 말미에 나임윤경 교수는 "청소노동자 분들의 힘든 투쟁이 수업은 물론 이 책의 출간까지도 가능하게 했던 만큼, 학생들과 협의하여 인세는 어떤 형태로든 모두 그분들께 드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결정을 매우 흔쾌히, 기꺼이 내려준 학생들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20대 내부에도 다른 목소리가 있다

지난 10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나임윤경 교수는 "책 인세의 기부처를 고민하는 수강생들에게 '우리 수업이 청소노동자들로부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기부하면 어떨까'라고 먼저 제안하니까 다들 너무 좋아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연말쯤에는 인세를 모아 선물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책 '공정감각'을 기획한 이유에 대해서도 "유시민씨도 최근 (소위 '이대남'에 대해) 굉장히 신랄하게 말했지만 20대 내부에도 다른 목소리가 분명히 있다. '이대남'이 아니라 책 '공정감각'에 담긴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20대 안에서 리더가 될 거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썼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감각'이 중요하다. 그런데 '공정'이라는 개념은 '공존'을 전제로 했을 때만 바로 설 수 있다. 좋은 학교를 나와서 열심히 공부했다는 이유로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자기에게만 공정한 거다. 공존을 염두에 두지 않는 공정은 사실 '이기주의'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인구가 줄고 점점 살기 팍팍해지는데 이럴 때일수록 함께 버티고 살아가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나 공존의 의미를 상실한 채로 '공정'만을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나친 경쟁으로 치닫는 사회가 지속 가능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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