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양 외면, 대입 유불리로만 판단되다 보니…선택과목, 결국 폐지됐다

박상우 2023. 10.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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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탐, 생활과 윤리·사회문화 쏠림 현상 심각…경제·법과 사회, 학생들 철저히게 외면
과탐, 생명과학Ⅰ·지구과학Ⅰ 과목 집중 선택…과탐Ⅱ과목은 전체 선택의 1%대 그쳐
학생들 "기피 과목 선택하려고 하면 주변서 만류…응시자 많을수록 등급 잘 받아"
학원강사들 "수험생 기피 과목은 학원도 강의 진행 어려워…어렵기 때문에 기피하는 것"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가 치러진 지난달 1일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마스크를 벗은 채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연합뉴스

수능 선택과목 제도가 2028학년도(현 중2)부터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선택과목에 따른 대입 유불리 상황이 심각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탐구과목의 경우 '경제', '법과 사회' 등 일부 과목들이 어려운 난도로 학생들의 기피 과목이 되면서 수능 선택권이 기본 소양교육 외면으로 이어졌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2028학년도 대입개편안' 발표를 통해 2028학년도 수능부터 '통합형 과목체계'를 도입하겠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2022학년도 수능부터 국어·수학에 도입됐던 '공통과목+선택과목' 구조를 6년 만에 폐지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2028학년도 수능부터 모든 수험생은 국어·수학에서 동일한 문항을 풀어 경쟁한다.

이러한 개편 배경엔 선택과목 쏠림 현상이 있었다. 당초 교육부는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는 고교학점제와 호응해 수능에서도 응시 과목에 대한 선택지를 열어줬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수험생들은 과목 선택 기준을 진로나 적성이 아닌 대입 유불리에 뒀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에서 '화법과 작문' 선택 비율은 전체 43만1904명의 수험생 중 64.9%(289,565명)로 나타났다. 나머지 35.1%(156,478명)는 '언어와 매체'를 선택했다. 2022년도 수능에서도 ‘화법과 작문’ 쏠림 현상은 동일하게 나타났다. 전체 70%(312,691명)이 '화법과 작문'을 30%가 '언어와 매체' 과목을 선택했다.

최근 3개년 수능 탐구과목 선택 비율ⓒ데일리안DB

탐구과목에서는 쏠림 현상이 더욱 도드라졌다. 사탐에서는 '생활과 윤리'와 '사회문화' 두 과목의 선택 비율이 최근 3년간 50% 이상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제' 과목은 3년 연속 5000여명(1%대)의 수험생만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밖에도 '한국지리' 8.0%, '윤리와 사상' 7.9%, '세계지리' 6.0%, '정치와 법' 5.9%, '동아시아사' 4.7%, '세계사' 3.8%로 10%에 한참 못 미쳤다.

과탐에서는 '생명과학Ⅰ'과 '지구과학Ⅰ' 쏠림 현상이 도드라졌다. 두 과목 모두 3년 연속 30% 이상 선택받았다. 뒤이어 '물리학Ⅰ'은 16.3%, '화학Ⅰ'은 16.3%를 선택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탐Ⅱ' 과목들은 전 과목이 1%대에 그치거나 못미쳤다.

노량진에서 만난 수험생 A(20) 씨는 "특히 탐구 과목이 쏠림 현상이 심각한 것 같다"며 "주변 n수생 중에는 일부러 화학Ⅱ 과목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본인이 풀 것도 아닌데 모의고사 책을 여러 권 구매한 사람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특히 '과탐Ⅱ' 과목은 주변에서 응시하는 학생이 적다. 혹시라도 선택하려고 하면 주변에서 만류하는 분위기"라며 "지난해에 물리Ⅱ를 골랐는데 재수학원에서 단 3명만 물리Ⅱ 과목을 수강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험생 B(19) 씨는 "나 역시 생활과 윤리 과목을 지원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주변에서 많이 응시한 과목이라 지원하게 됐다"며 "시험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등급을 잘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리를 좋아해서 공부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라며 "주변 친구들도 선택을 하지 않아 공부 자료를 공유하는 게 어렵다"고 토로했다.

입시학원 강사 C 씨(30대)는 "사탐만 보자면 경제나 법과 사회 같은 과목은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배제하는 과목"이라며 "사실 사회생활을 위해 기본 소양으로 쌓아야 할 과목인데 이렇게 기피과목이 된 것을 보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만기 유웨이평가연구소장은 "현재 수험생들 사이에서 '경제', '정치와 법'과 같이 난도가 높은 과목들은 학생들에게 대우를 못 받고 있다"며 "2028년부터 탐구과목이 통합과목으로 바뀌면서 여러 과목을 포괄하게 되면 양상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험생이 기피하는 선택과목은 수강생 자체가 적다 보니 학원에서도 강의 진행이 어렵다"며 "학교에서도 17개 탐구 과목을 모두 가르칠 수 없다. 수능에 유리한 과목 위주로 구성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생들이 과목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렵기 때문이다. 과학탐구의 경우 전체 70%가량이 생명과학, 지구과학 두 과목으로 압축된다"며 "짧은 시간 효율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외면받는다. 한번 외면받은 과목은 선례가 있어 다음 학년들에게도 기피과목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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