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장례식조차 안 갔다…하마스 기습 설계한 '그림자 남자'
" 우리는 신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의 압제를 끝내려고 한다. 적들은 아무 책임 없이 괴롭히는 시간은 끝났음을 이해해야 한다 "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군사 조직인 알카삼 여단을 이끄는 모함마드 데이프(58)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뒤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감시망을 피하면서 이번 기습 작전을 막후에서 2년 동안 설계하고 주도했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데이프가 선포한 이번 공격은 2년 전부터 기획됐다. ‘알아크사 폭풍 작전’이란 작전명은 2021년 5월 이스라엘의 알아크사 사원 공격으로 시작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11일 전쟁(2021년 5월 10일~21일)’에서 유래됐다. 이 전쟁은 11일 동안 가자에서 248명, 이스라엘에서 13명의 사망자 내고 휴전 협정으로 끝났다.
하마스 소식통은 “11일 전쟁은 이스라엘이 알아크사 사원을 습격해 신도들을 구타하고 공격한 사건이 분쟁의 계기”라며 “이번 공격은 그에 대한 보복 성격”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당시 분노한 데이프는 2년 동안 하마스가 더는 분쟁에 관심 없는 척 이스라엘에 대한 ‘기만 작전’을 펼쳤다. 군사력 증강 대신 가자지구 경제 개발에 힘쓰는 듯한 행동을 취한 것이다. 하지만 지하에선 공격 준비에 한창이었다. 이에 이스라엘은 속은 듯 가자지구 근로자들을 위해 경제적 유인책까지 내놓았다. 대놓고 이뤄진 하마스의 군사훈련도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보여주기식 훈련’이라며 넘어갔다.
데이프는 애초 이스라엘의 테러리스트 수배 명단의 최상위에 있는 인물이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습 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데이프 가족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 집중됐다고 전했다. 데이프의 아내와 7개월 된 아들, 3살 딸은 2014년 이스라엘의 공습 당시 사망했다.
하지만 데이프 본인은 2002년 하마스 카삼 여단의 최고 사령관에 오른 이후 21년 동안 최소 7번 이상의 암살 시도를 겪고도 살아남았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2년 전에도 데이프를 두 차례 암살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밝혔다. BBC는 데이프의 끈질긴 생명력에 “꼬리(목숨)가 9개 달린 고양이(cat with nine lives)”라고 보도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데이프는 이스라엘의 수차례 공격에 한 쪽 눈을 볼 수 없고, 팔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다리를 심하게 다쳐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그런데도 데이프가 세계 최고 정보기관으로 불리는 모사드의 감시망을 피해 살아남았던 이유엔 철저한 은둔생활 때문이라고 외신은 분석한다. 그는 매일 밤 거처를 옮겨 다니고, 보좌하는 부하들도 매일 바꾸면서 활동해 ‘손님(guest)’이라 불린다.
2011년 데이프의 어머니가 사망할 당시에도 데이프는 오지 않았다고 아랍 일간 아샤르크 알아우사트가 전했다. 손님처럼 그를 제외한 다른 하마스 지도자들만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그가 노인으로 변장하고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데이프는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2014년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인터뷰한 전직 하마스 고위 간부는 데이프가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여러 개의 여권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하마스 소식통은 데이프를 “그림자 속에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어둠 속에서 하마스를 이끈 데이프는 정확한 인상착의조차 알려진 바가 없다. 대중에 공개된 그의 사진이라곤 단 3장뿐이다. 1장은 오래된 20대 사진, 다른 1장은 마스크로 가린 모습, 마지막으로 어둠 속 뒷모습이다.
데이프는 1965년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칸유니스난민캠프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캠프는 1948년 1차 중동전쟁 뒤에 설치됐다. 이스라엘은 물론 인접한 시리아 내전의 불똥마저 튀는 곳이어서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불리는 곳 가운데 하나다.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1차 민중봉기(1987년) 당시 하마스에 합류한 데이프는 1989년 이스라엘에 체포된 뒤 약 16개월 동안 구금 생활을 겪은 뒤 풀려났다. 대학에서 물리학, 화학을 전공한 그는 폭탄 제조 기술을 전수받아 하마스의 폭탄 테러를 이끌어왔고 2002년 이스라엘 공습으로 전임 군사 지도자인 살라 셰하데가 사망한 뒤 직을 이어받았다.
데이프의 행방은 극소수의 다른 하마스 지도자만 알고 있는 극비 사항으로, 로이터통신은 데이프가 스스로 설계한 가자지구 땅굴 은신처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하마스는 북한의 땅굴 기술을 받아 가자지구에서 이집트 등으로 빠져나가는 땅굴 수십 개를 건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알아크사 폭풍 작전’ 이후 이스라엘에선 최악의 테러리스트로 불리지만, 팔레스타인에선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FT는 가자지구의 소식통을 인용해 “데이프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에게 신과 같은 인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상혁 기자 moon.sanghy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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