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배용준인데 주식 30% 이익"…이런 사칭, 처벌할 법 없다
인스타그램에 뜬 배우 배용준 계정. 그가 올린 광고엔 “은퇴해도 아쉬울 게 없는 소름돋는 이유” “최근에 주식 교류 그룹을 설립했습니다. 제가 제공하는 모든 예측 동향은 30% 이익을 유지합니다” 등 내용이 있었다. 사진에는 “많은 스타트업에 분산 투자를 한 배용준”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계정도 가짜, 광고 내용도 가짜다. ‘더 알아보기’를 누르자 초대 링크를 받은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네이버 밴드의 한 그룹으로 초대됐다. 그룹에 가입하자 신분을 알 수 없는 ‘매니저’라는 한 사람이 1대 1 대화를 걸어왔다. 그는 “매일 무료로 우량주 종목을 추천해 드린다”고 말했다. 또다른 텔레그램 채널에 접속할 수 있는 링크도 건넸다. 12일 오후 1시 현재 이 그룹엔 142명이 가입돼 있고, 가입자들은 단체대화방에서 ‘정교수’라고 불리는 이가 추천한 종목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최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유명인을 사칭해 투자를 권유하는 가짜 광고가 잇따라 공유되고 있다. 배용준씨를 제외하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장하준 런던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등 경제분야 유명인들을 사칭한 광고 계정이 대다수다. 사칭 피해 당사자도 상황을 알고 있다. 주 전 대표는 최근 경기 분당경찰서에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자신을 사칭한 성명불상의 인물을 고소했다.
하지만 사칭 계정을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명예훼손 혐의는 ‘비방할 목적’을 주요 구성 요건으로 보는데, 단순 사칭만으로는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은 사칭으로 인해 사기나 성범죄 등 2차 피해가 접수돼야만 수사에 나서고 있다.
민사적으로 사칭 피해 당사자가 초상권 침해를 주장하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위자료를 청구하는 방법은 있다. 이를 위해선 초상권 침해로 인한 재산상 또는 정신적 피해를 입증하는 산을 넘어야 한다.
이에 일각에선 다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만큼 범죄 의도가 명백한 사칭 계정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2016년 ‘SNS상에서의 타인 사칭 방지법’이라 불리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페이스북 등 플랫폼 운영사들은 피해 당사자가 사칭 사실을 알려 해당 계정이나 가짜 광고를 삭제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대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체감 실효성은 크지 않다. 주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사칭 계정의 허위 광고라고 신고를 했지만, 페이스북 측이 ‘가이드라인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아직도 삭제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돈을 내고 광고를 했으니 페이스북이 나몰라라 하는 것 같다. 규제 기관인 방통위는 뭘 하고 있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관련 기관의 행정력을 동원하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부터 ‘불법 리딩방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하며 비슷한 사례를 적발, 수사기관에 통보하고 있다. 지식재산보호원이나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기관에서도 대응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법인 율촌 지식재산권(IP) 팀장인 임형주 변호사는 “관련 기관에서 모니터링을 하거나 신고 포상제도를 운영해 사건을 처리하고, 이와 관련한 플랫폼 규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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