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그날 밤, 밸런스 게임의 승자

2023. 10. 13. 04: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서
화제 남긴 FT아일랜드, 음악
팬을 하나로 만드는 힘 있어

‘밸런스 게임’이란 게 있다. 선택하기 어려운 두 항목을 동시에 제안하고 그 가운데 하나를 필수로 선택해야만 하는, 최근 예능이나 토크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놀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탕수육 부먹(소스 부어 먹기) vs 찍먹(소스 찍어 먹기), 사흘 동안 밥 안 먹기 vs 잠 안 자기, 초콜릿 맛 개구리 vs 개구리 맛 초콜릿. 아무리 단호한 이라도 한 번쯤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되는 질문들이다. 음악계로 질문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앨범형 가수 vs 음원형 가수, 실력을 인정받는 아이돌 vs 아이돌 같은 인기의 중견 가수, 별 다섯 개 앨범 한 장만 내기 vs 별 셋 정도 앨범 부침 없이 내기. 괜스레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질문들이다.

그러면 이 밸런스 게임은 어떤가. 하고 싶은 음악은 아니지만 냈다 하면 히트하는 가수 vs 큰 히트곡은 없어도 꾸준히 내 음악을 하는 가수. 얼핏 당연히 전자가 좋지 않나 싶다가도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긴 호흡으로 일생에 걸쳐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후자가 가진 매력을 절대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오래전 과감한 선택을 내린 그룹이 있다. 밴드 FT아일랜드다.

대한민국에서 21세기를 산 사람 가운데 이들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혹시 그룹 이름은 몰라도 이들의 데뷔곡 ‘사랑앓이’를 모를 리는 없다. ‘사랑앓이’가 발표된 2007년은 아이돌 음악 대중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K팝의 고전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와 빅뱅의 ‘거짓말’이 전국을 호령하던 시절이었다. 덕분에 아이돌은 실력이 없다거나 특정 성별과 연령대만 아이돌 음악을 듣는다는 고정관념은 서서히 녹기 시작했지만, 록과 아이돌의 사이는 여전히 멀디멀었다. 재미있는 건 그런 사람들마저 노래방에 가면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를 목 놓아 불렀다는 점이다. ‘뽕기’ 있는 멜로디와 이홍기의 보컬을 과장해 따라 하면서도 노래만은 잃을 수 없었다.

10월을 여는 주말 부산에서 열린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 FT아일랜드가 섰다. 그리고 페스티벌 출연자 가운데 가장 큰 화제를 남겼다. 좋은 의미로 기대를 부순 무대였다. 이제는 꽤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밴드형 아이돌’의 원조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처음 라인업이 발표된 후 이들을 둘러싼 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관객 대부분의 기억이 ‘사랑앓이’에 멈춰있는 탓이었다.

공연 당일 무대에 오른 보컬 이홍기는 관객들이 마음 한구석 몰래 품고 있던 ‘그 질문’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오늘 저희 노래 들으면서 뭐야, FT아일랜드 ‘사랑앓이’ 안 해? ‘바래’ 안 해? ‘지독하게’ 안 해? 이렇게 생각한 사람 손! 다 집어치워. 안 할 겁니다.”

아는 사람은 안다. 2023년의 FT아일랜드는 음악적으로나 활동적으로 ‘사랑앓이’를 전생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먼 곳까지 왔다. 2015년 발표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아이 윌(I Will)’을 기점으로 자신들이 정말 하고 싶었다는 하드록을 앨범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곡도 멤버들이 직접 썼다. 차트를 휩쓰는 히트곡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지만 밴드로서는 점차 성장해 갔다.

데뷔 초부터 공들여 온 일본 시장 반응이 특히 좋았다. 국내 미디어에서 모습을 찾기 어려웠던 2010년대 중후반, 밴드는 일본에서 1년에 한 장씩 정규 앨범을 냈고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 무도관’ 공연이나 아레나 투어를 열었다. 부산에 모인 불특정 다수의 음악 팬을 하나로 만든 힘은 그런 성실한 창작과 라이브로 탄탄하게 자리잡은 밴드의 근육 덕분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16년 차 밴드의 여유도 더해졌다. 공연 마지막 곡으로 ‘이거 듣고 싶었어요?’라는 말과 함께 ‘바래’의 전주가 흘렀다. 페스티벌의 밤, 커리어를 건 밸런스 게임의 승자는 누가 뭐래도 FT아일랜드였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