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호수 누비며 연 1만여 섬주민 생명 살린다
동아프리카 케냐와 우간다, 탄자니아를 끼고 있는 빅토리아 호수는 세계 두 번째로 넓다. 남한 면적의 3분의 2 규모다. 호수 안에만 1000개 넘는 섬이 있고 이 가운데 40% 정도가 유인도다. 탄자니아에만 85개 섬에 주민이 살고 있는데, 이곳을 누비며 인술을 펴는 병원선이 있다. 선교단체 월드미션 프론티어(대표 김평육 선교사)가 운영하는 ‘살림(SALLIM)호’다. ‘생명을 살린다’는 뜻을 담은 살림호는 영국 선교단체가 운영 중인 병원선과 함께 빅토리아 호수의 ‘떠다니는 병원’ 2개 중 하나다.
교육·구호 NGO인 글로벌 에듀(이사장 소강석 목사) 아프리카 방문단과 함께 11일 오전(현지시간) 빅토리아 호수 남쪽 탄자니아 므완자주 항구에 정박해 있는 살림호에 탑승했다. 건물 3층 높이(전장 25m)의 병원선 내 좁은 입구로 들어서자 데크 양옆으로 초음파 검사기기가 갖춰진 진료실과 수술실, 치과진료실, 소변·혈액검사를 하는 임상병리실, 약국 등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었다. 병원선 담당 의사인 현지 출신 데이비드(33)씨는 “섬으로 진료를 나가면 통상 뭍에서 텐트를 설치해 사나흘 진료한다”며 “병원선은 진료·수술실이면서 의료진 등의 숙소와 식당으로도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살림호 병원선 사역은 이용기(51)·권영옥(45) 부부 선교사가 총괄하고 있다. 베테랑 간호사 출신의 권 선교사를 비롯한 현지 의료진 5명과 선장·선원 등 12명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진료를 받는 섬 주민은 600명에서 많게는 1000명 선으로 연간 1만명에 달한다. 이 선교사에 따르면 해안가에 사는 주민의 경우 오염된 물을 접하면서 ‘주혈흡충증’을 많이 앓는다. 이 질환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말라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사회경제적 파괴력이 강한 기생충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얀색 바탕의 살림호 옆에는 페인트칠이 아직 안 된 똑같은 규모의 선박이 쌍둥이처럼 서 있었다. 내년 7월 운항 예정인 ‘살림 2호’였다. 김평육 선교사는 “현재 한국에서 가져온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다양한 의료 장비와 시설 등을 갖추고 전용 수술실 등으로 활용도를 높이면서 더 많은 주민과 환자를 돌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살림호가 빅토리아 호수에 띄워지기까지 여정은 험난했다. 20여년 전 김 선교사는 작은 보트를 타고 빅토리아 호수의 한 섬을 방문했다가 아무런 의료혜택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섬 주민의 비참한 삶을 마주하면서 병원선을 떠올렸다. 하지만 병원선을 만들기 위한 모금, 건조, 운영에 이르기까지 꼬박 2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병원선은 2017년 첫 진료 이후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됐다가 지난해 여름부터 본격 재가동됐다.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정식 병원선으로 등록된 살림호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것이 많다. 매월 한 차례씩 나가는 현지 도서 진료 때마다 인건비와 약값, 경비 등이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 치과 진료실은 마련됐지만 아직 치과의사가 없다. 초음파 검사 기기는 구식이라며 현지 의사 데이비스씨는 다소 민망해했다.
그러면서도 그간 한국 선교사들이 펼쳐온 사역에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특히 살림호가 본격 가동되기 전부터 월드미션 의료선교팀은 10년 가까이 빅토리아 호수 인근 도서지역 주민의 진료 데이터를 차곡 차곡 쌓아놨다. 최근 탄자니아 보건 당국은 도서 지역 주민의 질환 조사 및 대책 마련을 위해 수집된 데이터를 요청했고, 월드미션 측은 흔쾌히 제공했다. 정부 당국이 해야 할 일을 바다 건너 온 한국의 선교사들이 담당한 셈이다.
김 선교사는 “한국의 많은 의료 선교팀이 한 번씩만 현지에 와서 봉사해 준다면 병원선 선교 사명을 더욱 활발하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아프리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펼치는 귀한 사역에 한국의 청년들과 의료진이 도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므완자(탄자니아)=글·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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