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호스피스 선택권 제한은 위헌적

2023. 10. 13.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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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한국건강학회 이사장

지난해 6월 안규백 민주당 의원이 의사 조력 자살을 합법화하는 ‘조력 존엄사 법안’을 발의한 것을 계기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인프라 확충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유사한 법은 미국·캐나다·호주와 몇몇 유럽국가에서 오래전 합법화됐다. 한국사회에도 웰다잉 공론화와 호스피스 확대 필요성이 커지면서 안 의원의 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그런데 당시 천주교와 대한의사협회가 즉각 조력 존엄사 입법화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호스피스 지원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조력 존엄사법 도입을 지지하는 여론이 쏟아졌지만, 보건복지부는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워 사회적 갈등이 예상된다”면서 말기 환자들의 고통을 사실상 등한시했다.

「 복지부, 말기 암환자 고통 외면
호스피스 시설 부족 위험 수위
국가 주도로 인프라 확충해야

시론

많은 국민이 호스피스 인프라의 절대적인 확대를 요구한 지 오래됐지만, 그동안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관계자들의 호스피스 지원 확대 주장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국민 10명 중 8명이 조력 존엄 입법화에 찬성한다. 이는 천주교·대한의사협회·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생긴 비참한 죽음의 현실에 대한 국민적 호소임을 알아야 한다.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향상돼 말기 환자들의 호스피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호스피스를 이용하려면 한 달 이상 대기해야 한다. 가정 호스피스를 받기도 어렵다. 통증 조절 등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은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다.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암 사망자의 23.2%, 전체 사망자 중 6.1%만이 호스피스를 이용했다. 암 이외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증, 만성호흡기부전으로 인한 말기 환자까지 호스피스 대상자를 확대했지만, 수혜자는 1년에 70명 정도에 불과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명시된 다섯 가지 질환 이외에 국민이 호스피스 적용 확대를 희망하는 난치성 유전·신경 질환,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 심부전 등 다른 질환 환자들은 이용할 수 없다.

의료 소비자인 국민이 호스피스 선택권을 제한받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이자 위헌적이다. 웰다잉의 불평등으로 국민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되는 현실을 방관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호스피스 선택권 침해 해소를 위한 법적 보장에 대한 의견을 정부와 헌법재판소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즉시 호스피스 적용 대상자를 확대해야 한다. 환자들은 헌재에 헌법소원이라도 제기해야 한다.

지역별 수요와 불균형을 고려해 호스피스 기관을 신설하고, 호스피스 대상 질병을 확대한다면 죽음의 질을 높이고 의료비도 절감할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분석에 따르면 호스피스 이용으로 1인당 370만원의 건강보험 지출이 감소했다. 2022년 호스피스를 이용한 암 환자 2만198명의 의료비 약 750억원이 절감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와 건보공단이 웰다잉 정책에 선제적으로 투자한다면, 존엄하고 고통 없는 생애 말기를 보장하고 가족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건보 재정을 활용한 ‘웰다잉 문화 기금’을 설치해 호스피스 인프라 구축과 취약계층 말기 환자의 간병비 지원, 연명의료 결정과 호스피스 제도를 홍보하고 광의의 웰다잉 문화 운동을 진행해야 한다.

광의의 웰다잉이란 말기 환자의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연명의료 결정과 호스피스를 확대하고, 유산 기부, 마지막 소원 이루기, 정신적 유산 정리, 생전 장례식 등의 사회·경제적 지원을 통해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국민의 80%, 국회의원의 84%도 찬성한다.

미국은 카터 정부 때부터 매년 11월을 ‘국가 호스피스의 달’로 정했다. 레이건·클린턴·오바마 대통령도 전통을 이어왔다. 2016년 공포된 연명의료 결정법에 따라 한국에서는 10월 둘째 주 토요일이 ‘호스피스의 날’이다. 이날을 계기로 윤석열 대통령이 호스피스를 확대해 국민의 품위 있는 죽음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직접 선언하면 어떨까.

대통령이 말기 환자들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 의료진 및 자원봉사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보내면 좋겠다. 호스피스 선택권을 제한하는 위헌적 상황을 방치하면 ‘안락사 쓰나미’에 직면할 것이다. 정부 대응이 너무 늦지 않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영호 서울대 기획부총장·한국건강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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