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단백질 많은 ‘닭가슴살 소’ 개발…비결은 유전자 가위
[연중 기획 혁신창업의 길]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57〉 장구 라트바이오 대표
생물의 유전적 성질을 이용해 신품종을 만들어 내거나 기존 품종을 개량하는 육종은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에서 벗어나 한곳에 정착해 농경·목축을 하면서 본격화했다. 개·돼지·소 등 친숙한 가축이나, 벼·옥수수·밀 등 식량이 모두 육종의 산물이다. 우수한 유전자를 선별해 수십~수백 년에 거쳐 접목·교배하던 방식은 과학의 발전으로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형질 개선으로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장구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한 형질 개선 동물로 바이오테크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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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역 시스템 역이용 유전자 가위
사업화 가능성에 주목하고 창업
21년 국내 첫 ‘근육 소’ 탄생시켜
노령 개 근감소증 치료제도 개발
」
2016년 라트바이오를 창업하고 대표이사를 맡으면서부터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장 대표는 “미국에선 ‘질병 저항성 돼지’ 판매의 식품의약국(FDA) 승인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한국과 선진국의 유전자 가위 기술 격차는 크지 않지만, 산업화에선 이처럼 6~7년 격차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시간이 지날수록 물리적으로 이 격차를 따라잡기가 어려워지므로 관련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아쉬워했다.
미국보다는 산업화 6~7년 뒤처져
유전자는 생명체가 몸을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설계도’에 가깝다. 생명체는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신체를 형성하고 고유의 형질을 발현하는데, 각각의 유전자마다 고유의 역할과 기능이 존재한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다.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질병이 발생하기도 한다. ‘유전자 가위’는 그 유전자 가닥 중 원하는 부위를 정확하게 자르고, 편집할 수 있는 기술로 돌연변이를 극복할 꿈의 기술로 꼽힌다.
박테리아는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바이러스의 데옥시리보핵산(DNA)를 잘라 보관한다. 다음에 또 같은 바이러스의 공격 받을 때를 대비해서다. 이후 똑같은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박테리아는 그 DNA를 알아보고 대항한다. 이 면역 시스템을 ‘크리스퍼(CRISPR)’라고 하고, 박테리아가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낸 유전자 효소를 ‘캐스나인(Cas9)’이라고 부른다.
이 원리를 이용해 DNA를 잘라내는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 ‘크리스퍼-캐스나인(CRISPR-Cas9)’이 2012년 탄생했다. ‘CRISPR-Cas9’은 등장과 동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가위로 떠올랐다. 기술을 개발한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UC버클리 교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는 2020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자연계 동물들은 돌연변이가 많은데, 그 원인과 치료가 궁금했어요. 특히 동물병원에 오는 개·고양이는 눈이 안 보이는 망막 유전병에 걸린 경우도 있고, 근위축증에 걸린 경우도 있어요. 사람하고 비슷한 돌연변이 질병을 가진 경우가 많죠.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접하게 된 뒤엔 돌연변이를 치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2014년 면역 거부 없는 돼지 세포 개발
장 대표는 2014년 면역 거부 유전자가 없는 돼지 세포 개발에 성공하면서 ‘유전자 가위’의 사업화 가능성에 눈을 떴다. 그리고 2년 후에 창업한다. 라트바이오는 ‘CRISPR-Cas9’ 기술을 큰 동물에 적용했다. DNA 유전자와 세포 컨트롤 기술을 바탕으로 맞춤형 동물을 탄생시키는 기술에 특화해 있다.
“국가 연구비는 구조적으로는 안정적이지만, 더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10년 전 유전자 가위를 적용한 동물 연구를 하겠다고 연구비 신청을 했을 때만 해도 부정적 평가가 많았어요. 하지만 세계적 연구 흐름을 보면서 ‘언젠간 분명히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라트바이오는 2021년 국내 최초로 근육 억제 DNA를 제거해 ‘근육 소’를 만들었다. 근육 형성을 유발하는 유전적 돌연변이를 가져 일반 소보다 근육량이 많은 게 특징인데, 자연계에도 이런 돌연변이가 존재한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스(Piemontese)’가 대표적인데, 육질이 좋고 단백질이 많아 ‘닭가슴살 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는 근육 억제 돌연변이 제거 단백질을 노령 견(犬)의 근감소증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로 근육 생성 물질을 생산하고, 이를 기반으로 만든 약품을 노령 견에게 주사해 근감소증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장 대표는 “향후 사람의 근감소증 치료제로도 활용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회사는 또 유당(락토)이 제거된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 등의 기술 개발에도 성공했다.
“GMO 기술 규제 과감히 풀어야”
구옥재 경북대 수의대 겸임교수는 “동·식물이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데 수십 년이 필요한데,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이를 수년으로 단축해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중요한 기술”이라며 “근감소증 치료제 등 치료제로 발전시키는 건 한발 더 나아간 돌파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전자 변형 생물(GMO)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유전자 가위는 GMO와 다른 기술인데, 국내에선 법적으로 동일하게 묶여 있다 보니 산업화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구 겸임교수는 “미국·일본은 이미 규제를 풀어 빠르게 기술 개발을 하고 있고,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했던 유럽도 전향적으로 규제 완화를 추진 중”이라며 “한국은 기술적으로 앞서지만, 규제 때문에 산업화에선 뒤진다. 향후 해외 제품이 수입될 경우 국내 산업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CRISPR-Cas9’ 기술은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자르고 붙일 수 있다는 점에서 GMO와 유사하다. 하지만 기존의 생물체 속에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를 끼워 넣는 GMO와 달리, 본래의 고유 유전자를 편집해 ‘교정’하는 방식이라 비교적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엔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헌터 증후군 유전병 치료를 위해 유전자 가위 시술이 시행됐다. 지난 4월엔 미국 버텍스와 스위스 크리스퍼테라퓨틱스가 세계 최초로 ‘CRISPR-Cas9’ 기반으로 개발한 희소 유전성 빈혈 치료제 ‘엑사셀’의 시판 허가를 FDA에 신청했다.
“유전자 가위가 GMO보다 안전”
이처럼 라트바이오가 어려움을 겪는 분야는 기술의 산업화다. 미국·캐나다·호주 등에선 비슷한 기술을 활용한 ‘근육 소’를 식용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했지만, 국내에선 규제 장벽에 막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 대표는 “국내에선 유전자 가위 기술을 아직도 GMO 테두리에 가둬두고 있어 산업화까지 갈 길이 멀다”며 “관련 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허가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기술을 활용한 동물용 치료제 개발이다.
장 대표는 국내 연구개발(R&D)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바이오테크 등 신산업 분야에서 국가 차원의 산업화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나라인데 ‘퍼스트 무버’가 아닌 ‘퍼스트 팔로워’ 전략만을 취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간단히 말해 새로운 분야의 연구를 시작해도 산업화까지 가는 게 어려워 실험실 수준에 맴돌고 있는 것이지요. 동물은 식물보다 생장 사이클이 길어요. 미국에서 FDA 승인 신청을 한 질병 저항성 돼지만 해도 산업화가 한국보다 7년 넘게 앞서 있다는 의미에요. 돼지가 새끼를 낳아 한 세대를 넘기는 데 평균 1년 반 정도 걸리는데, FDA 승인을 받으려면 보통 5세대(약 7년6개월) 이상 실험을 거듭하거든요. 이 기간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따라잡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시장조사업체 글로벌인포메이션(GII)에 따르면 세계 유전자 치료 시장 규모는 지난해 74억 달러(약 10조300억원)에서 2030년 292억 달러(약 39조57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이 회사에 투자한 조인제 액트너랩 의장은 “유전자 가위 기반 기술은 윤리 문제 등 리스크가 상존하지만, 앞으로는 시장의 대세가 될 것으로 본다”며 “라트바이오는 대(大)동물 기반 ‘CRISPR-Cas9’ 기술의 글로벌 최고 수준이고, 줄기세포 기술·노하우도 가진 게 특징이다. 선도적으로 한계와 리스크를 돌파하면 후속 기업들이 따라갈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창업 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장 대표는 바이오테크 분야 창업 활성화를 위해 ‘바이오 공유 오피스’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바이오테크 창업이 어려운 게 연구실과 장비에 큰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라며 “실험실을 공유하는 제도가 있다면 학생들도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을 하는 문화가 확산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창업 활성화만 얘기할 게 아니라, 내실을 다지는 것도 중요해요. 판매·유통·재무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의 규모가 커져야 해요. 또 R&D 기반 창업자들은 대부분이 주변 교수들에게 귀동냥으로 듣는 게 전부거든요. 시장을 냉정한 시선으로 검토해줄 컨설턴트도 시스템화해야 합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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