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아 걱정하던 외손주, 미국 학교서 ‘달리기 상장’ 받은 사연 [김형석의 100년 산책]
9월 초순이었다. 교육정책과 방향 설정을 위한 교육방송 토론회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KAIST 총장, 서울대 총장, 세 분과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주제는 ‘교실이 바뀌어야 교육이 성공한다’였다. 다른 세 분은 모두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으나 나는 초·중고, 대학교육 모두를 경험했기에 사회자가 먼저 내 견해를 물었다. 나는 ‘사랑이 있는 교육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신념에서 초·중고 시절 경험담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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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꼴찌 했지만 “가장 열심히 달려”
어릴 때는 ‘사랑의 교육’이 최고
중·고교 성적은 큰 문제 아니야
사제·친구간 공동체정신 익혀야
대학은 문제의식 키워가는 곳
교실이 바뀌어야 새 교육 가능
」
허약했던 손자, 지금은 심장내과 교수
40여 년 전, 미국에 사는 큰딸 집에 갔을 때였다. 외손주가 초등 4학년인데 키도 작고 볼품도 없는 편이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운동회가 있었다. 우리 애는 열심히 뛰었지만 언제나 꼴찌였다. 내 딸은 그러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열등감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아 담임선생과 상의하곤 했다. 운동회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애가 운동회에서 상장을 받아왔다. ‘누구보다도 제일 열심히 뛰었기 때문에 준 상’이었다. 꼴찌는 했지만, 열성만은 제일이었으니까 준 것이다. 그 애가 지금은 심장내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는 그런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애가 초등학교 때 배운 것은 거짓 없는 정직, 욕하거나 어떤 폭력도 큰 잘못이라는 정신, 부족한 점 때문에 책망받는 것보다 적더라도 잘한 일에 칭찬받는 교육이었다. 학교장은 선생과 학부모가 합심해서 사랑이 있는 교육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큰 학교보다 규모가 작은 학교, 학생 수가 적을수록 사랑이 많은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서 가난했고 병약했던 나를 중학교에 가도록 부모와 의사를 설득해 주었던 윤태영 선생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 있을 때였다. 고2를 지도할 당시 반 학생이 자살하려고 극약을 먹었다. 부모가 일찍 발견하여 병원에 입원시키고 위기를 넘겼을 때였다. 학생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찾아갔다. 아직 의식이 회복되지 못하고 깨어나는 중이었다. 내가 얼굴을 맞대고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퉁퉁 부어오른 눈을 뜨면서 나를 보는 모습이 “내가 죽었을 텐데, 우리 선생님이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왔어.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라고 했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내가 진심으로 책망했다. “너 이게 무슨 짓이냐. 너를 목숨보다 귀하게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시고, 너를 위하고 사랑하는 나와 친구들이 있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죽으려고 했어? 그렇게 네 멋대로 행동하는 법이 어디 있어?”라고. ○○군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너 이제 깨어나면 또 이런 짓을 할 테야…”라고 물었다. 울음을 그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가 “선생님과의 약속이니까 믿어도 되겠다”라고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제자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울었다. 그 제자가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광산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타주 한 회사의 중책을 맡고 있다.
나는 교실에는 ‘사랑이 있는 대화’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선생의 사랑을 믿을 수 있고, 미래를 약속하는 선한 친구들과 마음을 함께하는 대화,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경험을 연장해 가는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해진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내 소신은, 중고등학교 나이 기간에 친구와 이웃을 위하는 봉사 경험이 있는 학생은 군 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불미스러운 행동은 물론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학교 성적은 큰 문제가 아니다. 인간다운 삶을 스스로 찾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대화와 만남이 인생의 가치와 보람을 좌우한다.
자주 있는 일이다. 지방에 갔다가 제자들을 만난다. 한 고등학교 교사가 “대학에 있을 때는 열심히 공부도 하고 학점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그 당시의 공부한 것은 다 잊어버렸다”라고 했다. 내가 “이상하다. 나는 대학 때 들은 강의와 공부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는데”라며 웃었다. 다른 제자가 “선생님은 기억력이 특출하셨지요”라고 물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공부를 한 것이 아니고 학문을 했다.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까 기억한다”라고 답했다.
나는 대학교와 학문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문제의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공통된 문제의식 없이는 더 좋은 미래교육과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는 배출되지 못한다. 교수는 언제나 문제의식을 동반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학생들과 그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토론과 결론 탐구의 장(場)이 되어야 한다.
전공에 갇힌 한국의 대학 교육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독서가 병행하지 못하고 모든 공부를 수능시험에 집중하기 때문에 학문과 사상의 주체가 되는 인문학적 사유의 결핍이 심각해지고 있다. 의사들도 환자를 대할 때는 과거와 달리 주치의가 동료 교수들과 종합진단을 통해 병상을 판단한 후에 다시 주치의가 책임을 진다. 교수들은 그런 초보적인 과정도 밟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독립된 한 과목, 자기 전공 분야에 집중해 학문의 다양성과 사회적 요청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인문학이 설 자리를 스스로 좁혀간다.
나 같은 경우는 독립된 철학과에서 강의하다가 역사학에도 관심을 두고, 문학 영역에도 참여해 ‘인문학적 사유’을 넓게 경험한 후에 다시 철학으로 복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철학적 사고가 인문학적 사유로 확장된 후에 다시 철학적 학문의 차원이 높아지곤 했다. 인문학보다 역사 문제와 사회과학은 그런 발전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여러 가지 전문성과 융합성이 있는 현실에 대한 해결을 위한 대학 교실에는 문제의식이 필수적이다. 교실이 바뀌지 못하면 학문과 사회의 발전적 희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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