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보다 미술관? 데이트 ‘핫 플레이스’로 뜨다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2023. 10. 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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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젊은 커플이 많아서 놀랐어요.”

영국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최근 10년 만에 한국에 정착한 미술가의 말이다. 지난달 프리즈 서울 기간 방한한 해외 인사들도 한국의 미술관·화랑·아트페어는 유럽에 비해 관람객 평균 연령이 훨씬 젊다면서 한결같이 “부럽다”고 말했다.

“요즘엔 대안공간까지 가서 데이트하는 20대 커플이 많더라고요. 작품 감상보다 사진 찍는 데 열중하는 것 같지만요. 하하하.” 어느 큐레이터의 말이다. “그래도 관심을 가져주니 고맙죠. 미술 공간이 언제 이렇게 뜨거웠던가요. 언젠가는 미술에 대한 진지한 관심으로 이어지겠지요.”

「 인스타 등에 ‘폼 나는 사진’ 올려
싼 입장료에 작품 즐길 수 있어
관객 줄어든 극장가 대응 주목
4DX 등 테마파크로 변신 시도

실험적 공간에도 젊은이 몰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도 보며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커플. [뉴시스]

‘대안공간’은 미술관이나 상업 화랑보다 실험적인 전시를 하는 곳이다. 이렇듯 미술전시장에 커플이 늘어나면서 종전 최고의 데이트 코스였던 영화관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누적 관객 수는 약 9400만 명,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에 비해 45%나 줄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미술관데이트’로 해시태그된 포스트는 7만3100여 건에 달한다. ‘영화관데이트’로 해시태그된 9만8100여 건보다 적지만, 미술과 영화의 대중성 차이를 고려하면 미술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요즘 미술관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경제적인 이유다. 코로나19 기간 관객수 급감을 메우기 위해 영화관들은 티켓값을 평균 1만1000원에서 1만5000원대로 올렸다. 하지만 그간 관객은 OTT(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영화관 나들이의 ‘가격 대비 만족’에 민감해지고 선택에 신중해졌다.

반면 미술관은 입장료가 저렴한 편이다. 블록버스터 특별기획전은 영화보다 비싼 경우도 있지만, 상설전은 무료거나 몇천원 수준이다. 또한 상업 화랑은 대개 입장료가 없다. 특히 2021년 고(故) 이건희 회장 미술 컬렉션의 국가 기증 이후 국공립 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전시에 관람객이 몰리고, 이들이 ‘수준 높은 미술작품을 무료로 보았다’고 만족해하면서 많은 사람이 전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둘째, 인스타그램 등 SNS에 일상 사진을 올리는 것을 즐기는 젊은 세대의 문화 때문이다. 영화 상영 중엔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대부분 영화 포스터나 홍보 설치물을 배경 사진에 만족해야 했다. 소위 ‘폼 나는’ 사진을 찍기 어렵다. 반면 미술관과 화랑은 사진 촬영에 안성맞춤이다. 미술작품과 전시공간이 멋진 그림을 만드는 데 한몫 거든다. 한마디로 ‘뭔가 있어 보인다.’

전시장이 항상 그랬던 것 아니다. 10여년 전만 해도 국내외 미술관 대부분이 ‘예쁜 배경용’ 사진에 비판적이었다. 사진 촬영도 금지하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SNS가 확산하면서 젊은 관객이 밀려들고 미술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이제는 미술관들이 앞장서 인스타그램 사진 이벤트까지 열고 있다.

셋째,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영향도 크다. 작품 하나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아졌고, 또 감상자 자신도 속도를 조절하며 즐기는 것을 선호한다. 영화관에서는 진행 속도가 느려도 1.5배속으로 돌리거나 건너뛸 수 없으며, 반대로 속도가 너무 빨라서 놓치는 부분이 있어도 다시 돌려서 볼 수 없다. 반면에 미술관에서는 한 작품을 5초 보고 지나갈 수도 있고, 한나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

이렇듯 최근 미술전시장이 ‘데이트 핫플’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미술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미술에 대한 젊은이의 폭발적 관심을 반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작품이 혹시라도 인스타 사진 배경으로만 그치는 게 아닌지, 나아가 예쁜 작품을 즐기는 대중의 취향에 맞추다가 실험적·전위적 작품이 움츠러드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하지만 관객 없는 미술관이 있을 수 있을까. 전위적인 작품과 대중적인 작품의 적절한 균형이 더욱 중요해질 것 같다.

그렇다면 영화관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이제 사람들은 뭔가 색다른 체험이 아니면 굳이 극장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영화관도 그런 수요에 발맞추며 “테마파크로 변신하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영화계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지난해 아이맥스, 4DX(오감 체험), 스크린X(스크린을 3면으로 확장) 등 특수상영관 전체 매출은 전년보다 세 배 가까이, 관람객 수는 2.5배 늘었다.

공연 실황 담은 영화도 인기

최근 개봉한 ‘아이유 콘서트: 더 골든 아워’. 영화관들이 불황 타개책의 하나로 공연 실황 영화를 틀고 있다. [사진 CJ CGV]

또 극장엔 OTT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공간감이 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공감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다양한 팬덤과 ‘덕후’들의 모임 장소로도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 예컨대 지난 1월 개봉한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75만 명 관객을 모았고 3월 개봉한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공연 실황 필름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이 25만 관객을 모은 적이 있다. 이미 멀티플렉스 기업들은 공연 영상 제작 사업을 확대해 가고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도 여기에 해당한다. 예술적으로 분위기 있는 공간과 풍부한 토크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예술영화 덕후들의 아지트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소비 지형도가 달라진 가장 큰 동인은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이다. 데이트 코스로 미술관이 뜨고 영화관이 지는 것도 그 한 갈래일 뿐이다. 문화는 항상 변하고 섞이는 것, 관계자들의 열정이 모인다면 극장이든 미술관이든 문화계는 더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

문소영 중앙SUNDAY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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