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삼나무숲·곶자왈…제주의 허파 속을 걷다

2023. 10. 13. 00: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진우석의 Wild Korea ⑦ 제주 오름 트레킹


드론으로 촬영한 붉은오름 정상 전망대 풍경. 붉은오름이 있는 제주도 중산간 동쪽 지역은 오름과 숲길, 휴양림을 두루 누비며 트레킹과 캠핑을 즐기기 좋다. 가장 높은 곳에 우뚝한 한라산이 물찻오름, 말찻오름, 논고악 등을 거느린 모습이 장관이다.
당신은 제주 어디를 가시는가? 필자는 무조건 오름과 숲에 폭 파묻혀 걷고 또 걷는다. 이를테면 한라산 동쪽 중산간 지대. 이곳이 매력적인 건 오름과 오름이 이어지고, 숲길과 숲길이 통한다는 점이다. 걸어서 경계를 넘는 맛이 통쾌하고 짜릿하다. 숲길 5개와 오름 5개를 1박2일간 걸었다. 매혹적인 길이지만, 워낙 많은 곳을 넘나들기에 헷갈릴 수 있다. 현명한 독자들은 잘 따라오리라 믿는다. 경계를 넘는 데는 수고가 따른다.

오름 품 야영장에서 하룻밤

한라생태숲에서 섯개오름을 넘으면 편백 쉼터가 나온다.

한라생태숲 정문에서 출발한다. 이정표를 보고 숫모루숲길(한라산둘레길 9구간)을 따르면서 숲을 구경한다. 제주 자생종인 구상나무·곰솔 등 침엽수와 때죽나무·벚나무 등 활엽수가 어우러져 풍요롭다. 길은 구불구불 이어지다가 한라생태숲과 절물자연휴양림 분기점에 닿는다. 슬그머니 절물자연휴양림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첫 번째 경계를 넘는다.

한라생태숲 입구에 있는 숫모루숲길 안내판.

완만한 오르막을 걷다 보면 섯개오름 정상에 닿는다. 펑퍼짐한 구릉인 섯개오름을 넘으면 편백 쉼터가 나온다. 평상에 드러누워 편백 우듬지를 올려다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완만한 숲길을 내려와 임도사거리에서 절물자연휴양림 방향을 따른다. 절물자연휴양림은 절물오름의 너른 품에 안겨 있다. 낙엽 수북한 평상에 앉아 맛있게 김밥을 먹었다.

민오름 정상에서 본 억새와 오름군. 오른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절물오름이다.

절물자연휴양림 맞은편에 민오름이 있다. 잠시 도로변을 걷다가 이정표를 보고 민오름 방향으로 들어서면서 두 번째 경계를 넘는다. 10분쯤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면 정상이다. 하늘거리는 억새 너머로 건너편 절물오름이 보인다. 왔던 길을 되짚어 100m쯤 가면 민오름 둘레길 안내판이 보인다. 풀밭 분위기가 신비로운 습지를 지나면 한동안 심원한 숲길이 이어지다가 ‘큰지그리오름’ 안내판이 나타난다. 보물이라도 만난 듯 반갑다. 큰지그리오름 영역으로 들어선다. 세 번째 경계 넘기다. 거무튀튀한 삼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삼나무 숲에서 400m쯤 오르면 큰지그리오름 정상이다. 억새밭 너머 한라산이 아스라하다.

늡서리오름의 품에 안긴 교래자연휴양림 야영장.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면 울창한 곶자왈을 통과한다. 돌무더기·고사리류·이끼 등이 어우러진 곶자왈의 생태가 낯설다. 쓸모없어 보이는 이런 땅이 제주도의 허파다. 비가 내리면 곶자왈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가 몇 달 뒤 깨끗한 물을 해안 용천수로 뱉어낸다. 곶자왈 종착지에 교래자연휴양림이 있다. 숙소도 좋지만, 늡서리오름 아래 드넓은 잔디밭을 공유하는 야영장이 쾌적하다.

삼다수숲길, 말몰이꾼이 다니던 오솔길

김영희 디자이너

다음 날은 맑아 텐트를 접다가 휘파람이 절로 났다. 야영장에서 삼다수숲길 입구까지 20분쯤 걸린다. 오랜만에 만나는 큰 도로와 마을이 반갑다. 삼다수숲길은 제주개발공사와 교래리 주민이 함께 가꿨다. 원래 말몰이꾼이 다니는 오솔길이었다. 3개 코스 가운데 1시간 30분쯤 걷는 2코스를 따른다. 천미천을 따라 삼나무 숲과 조릿대 군락지가 이어진다. 군데군데 단풍나무가 많아 11월께 멋진 단풍을 만날 수 있다.

삼다수숲길에서 말찻오름 가는 길은 이정표가 없다. 2코스 반환점(안내판 4번)에서 3코스 방향으로 400m쯤 따르면 길이 갈린다. 여기서 왼쪽 길로 가야 한다. 길은 구렁이가 담 넘듯이 슬그머니 고개를 오른다. 고갯마루에 서 있는 말찻오름 안내판이 반갑다. 네 번째 경계를 넘는다. 여기부터는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영역이다. 길은 말찻오름을 한 바퀴 돌아 원점 회귀한다. 50분쯤 걸리는데, 시간이 없거나 체력이 떨어졌다면 말찻오름을 생략해도 된다.

말찻오름은 숲이 좋은 오름이다. 전망대는 돌출된 바위 지대로, 나무에 가려 전망이 신통치 않다. 말찻오름을 내려오면 해맞이숲길로 연결된다. 길이 평탄해 속도를 내 조금 숨차게 걸어본다. 몸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달콤하고, 귓바퀴를 울리는 바람 소리에서 자유가 느껴진다. 길은 상잣성숲길로 바뀐다. 나무에 이름표를 붙여 놨다. 까마귀베개·산딸나무·꾸지뽕나무·참식나무 등 정겨운 이름을 소리 내 불러줬다. 제 이름이 불린 나무들이 가지를 흔들며 화답해준다.

‘붉은오름 350m’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터벅터벅 나무계단을 올라 붉은오름 정상의 전망대에 섰다. 푸른 가을 하늘이 시원하게 열렸다. 마치 지리산 종주 코스 중 천왕봉에 올라선 느낌이다. 멀리 한라산이 말찻오름과 물찻오름을 거느리며 나타난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경이다. 붉은오름자연휴양림으로 내려와 걷기를 마무리한다. 내일은 어디를 걸을까. 즐거운 고민에 발걸음이 가볍다.

김영희 디자이너

☞여행정보=첫날은 한라생태숲~숫모루숲길~절물자연휴양림~민오름~민오름 둘레길~큰지그리오름~곶자왈 숲길~교래자연휴양림 코스로, 약 14㎞를 5시간 동안 걸었다. 둘째 날은 교래자연휴양림~삼다수숲길(2코스)~말찻오름~해맞이숲길~상잣성숲길~붉은오름~붉은오름자연휴양림 코스로, 13㎞를 걷는 데 4시간 걸렸다. 차량을 이용하면 교래자연휴양림에 주차하고, 버스로 출발점인 한라생태숲으로 이동한다. 코스 중간중간 길이 애매하다. GPS 앱 ‘산길샘’을 내려받고, 네이버 카페 ‘산길샘’에서 GPS 트랙을 받아 따라가는 걸 추천한다.

진우석

글·사진=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