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사진 꺼낸 형 "산재 입증 위해 지옥 산다"
[조혜지, 남소연 기자]
▲ 코스트코 경기 하남점에서 폭염 속 카트를 끌다가 사망한 김동호씨의 친형 김동준씨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조민수 코스트코코리아 대표이사에게 항의하며 동호씨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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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동호 여기 있어요. 저랑 이 자리에 함께 있어요."
12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참고인으로 마이크 앞에 선 형은 고인이 된 동생의 사진을 조민수 코스트코코리아 대표이사를 향해 들어보였다. 지난 6월 19일, 폭염특보 속 마트 주차장에서 장시간 카트를 끌다 사망한 코스트코 하남점 노동자 고 김동호씨(29)의 친형 김동준씨였다.
고인의 형은 동생이 처했던 현실을 진술했다. 김씨는 "동호는 3일내내 40도가 넘나드는 곳에서 시원한 물도 없이 수백 대 카트를 이끌며 하루 4만 보 넘게 걸었다"라면서 "이게 산업재해나 중대재해가 아니면 도대체 뭐냐"고 토로했다. 김씨는 또한 코스트코를 향해 "인력 증원을 그렇게 요청해도 시즌에만 뽑고 콤보(순환 근무)만 돌렸다"면서 "직원 복지에나 제발 신경 써달라"고 했다.
동시에 남은 노동자들을 위한 당부를 국회에 전했다. 그는 폭염 시기 '가이드라인'으로 존재하는 안전 조치들을 의무화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씨는 "동호와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면서 "안전 가이드라인 개선 방안 검토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권고가 의무가 되도록 꼭 부탁드린다"면서 "충분한 조사를 통해 합당한 결과가 나오길 바라며,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소지가 있다면 사업주를 철저히 조사해 엄벌에 처해달라"고 했다.
"무노조 경영이 목표는 아니겠지"... 사측 "정비, 개선"
이날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조 대표를 상대로 20대 청년이 한여름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숨을 거둔 원인에 대한 질의가 줄곧 이어졌다.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코스트코 취업규칙 상 카트를 6대 이상 끌지 못하게 돼있지만, 수십대를 운반하는 현실을 언급하면서 "인원이 부족하니 물량을 소화하려고 한 사람이 여러 대를 끌어야 하는 상황으로, 이는 취업규칙 위반이다"라고 짚었다.
진 의원이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코스트코 산재승인 건수는 2019년 73건에서 해마다 상승, 2022년에는 267건에 달했다. 진 의원은 "산재가 점점 늘어난다는 건 그만큼 근무 여건 강도가 강해진다는 것"이라면서 "산업 안전 관리를 했다지만, 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라고 강조했다.
▲ 국감장 나온 조민수 코스트코코리아 대표이사 조민수 코스트코코리아 대표이사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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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대표는 이에 "직원 안전을 지키는 대표이사로서 (다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 정비하고,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개선하겠다"면서 "무엇보다 자식, 형제를 잃은 가족 분께 다시 한 번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했다.
참고인으로 출석한 정민정 마트노조 위원장은 "노동자를 보호할 최소한의 권리인 단체협약도 없기에 이렇게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면서 "돌아가신 게 몇 개월 지났는데, 대표는 '개선할 게 있으면 하겠다'고 한다. 뭘 개선해야 하는 지 지금도 모른다는 것 아닌가. 분노가 솟구친다"고 했다.
이날 현장에선 조 대표가 고인의 빈소를 찾은 당시 동료 직원들에게 고인의 지병 여부를 문의한 사실 여부를 놓고 공방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학영 의원은 조 대표에게 "지병 때문 아니냐는 그런 말을 했느냐"고 물었고 조 대표는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말했다. 유족인 김씨는 이어진 참고인 발언을 통해 "직원들 한 두명이 아니라 7~8명 정도가 다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나"라고 따져 물었다. 조 대표는 이어진 진 의원의 같은 질문에도 역시 부인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고인의 죽음 원인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당부하는 말에 "그리 하겠다"면서 "가족들의 말을 들으니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했다. 이 장관은 이어 "노동자들을 단순히 쓰다가 필요 없으면 갈아 끼우는 존재가 아니라, 존중받으며 일할 동반자라는 생각을 우리 사회가 가졌으면 좋겠다"면서 "어깨가 무겁고, (철저히 수사하라는 말을) 유념하겠다"고 말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간사도 "먹먹하다"고 했다.
▲ 코스트코 경기 하남점에서 폭염 속 카트를 끌다가 사망한 김동호씨의 사진이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친형 김동준씨의 손에 쥐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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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만 돌아오면 현관문을 열고 돌아와 '엄마 나왔어!' 하고 밝게 인사할 것 같은데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집안 곳곳에는 동호의 흔적만 남았다. 자던 침대, 입던 옷, 사용하던 숟가락과 젓가락... 분위기 메이커였던 동생의 부재로 집안이 많이 허전하다. 우리 가족에게 남은 건 참을 수 없는 그리움과 더이상 볼 수 없는 슬픔 뿐이다."
177cm에 78kg. 형은 진술에 앞서 동생의 키와 몸무게를 먼저 말했다. "아주 건장하고 꿈 많은 20대 청년"이라는 소개와 함께 동생이 사라진 가족들의 일상을 이어 전했다. 김씨는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 100일이 넘는 시간동안 산재 입증을 위해 지옥 속에서 힘들고 고통스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면서 "모든 일상이 무너졌고, 부모님은 동호 사진 앞에서 매일 같이 기도하며 꼭 살아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하신다"고 울먹였다.
▲ 코스트코 경기 하남점에서 폭염 속 카트를 끌다가 사망한 김동호씨의 친형 김동준씨가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발언대로 나온 김동준씨의 손에 동생 동호씨의 사진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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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정 마트노조 위원장은 산재 처리가 더딘 상황에 대한 답답함도 전했다. 정 위원장은 "계속 심사 중, 조사 중이라고 하고... 사람이 죽었는데 산재 심사가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편, 이날 국정감사에선 이강섭 샤니 대표(SPC계열사)와 마창민 디엘이앤씨 대표 역시 증인으로 출석해 반복되는 산재 사고에 대한 질타를 받았다. SPC의 경우 지난해 SPL평택공장 끼임사고 사망 사건 이후 올해 8월 샤니 성남공장에서 또다시 끼임사고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디엘이앤씨 또한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7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야당 위원들은 계열사 대표이사 대신 그룹 책임자인 회장이 직접 국감장에 나와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계열사 대표이사가) 혼자 나와서 답할 수가 없는 일"이라면서 "허영인 회장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 또한 "종합감사 때라도 불러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마창민 디엘이앤씨 대표에게 산재 사망 유족이 지난 4일부터 본사 앞에서 시위 중인 사실을 들어 "직접 사과하실 거냐"고 물었다. 마 대표는 "기회가 되는대로 하겠다"고 했다. 이 의원은 다시 "찾아가서 공개 사과 하라"고 요구했고, 마 대표는 이에 "알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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