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전기·물 끊겼다…이스라엘 지상군 투입 초읽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습 엿새째인 12일(현지시간)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를 향한 지상군 투입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측의 누적 사망자 수가 27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지상전 돌입에 따른 대규모 추가 인명피해 사태가 ‘초읽기’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로이터,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대변인 리처드 헥트 중령은 이날 “하마스를 겨냥해 가자지구에서 지상 작전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헥트 중령은 이어 “정치권의 결정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며 사실상 진격 준비를 끝내고 ‘투입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임을 시사했다.
사실상 전투 준비를 마친 상황에서 이스라엘 당국과 정치권의 결단 시기도 임박했다는 정황이 확인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정적이던 야권과 전시 상황을 지휘할 연정 구성에 합의한 직후 하마스를 향해 거친 말을 쏟아내며 하마스에 대한 적개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제2야당 국가통합당과 전시 비상 정부를 구성하는데 합의한 후 낸 첫 성명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 군인을 참수하고, 여성들을 강간했고, 어린아이들까지 불에 타거나 총에 맞아 죽었다”며 “하마스는 이제 모두 죽음 목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마스는 아이시스(ISISㆍ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라며 “세계가 ISIS를 말살한 것처럼 우리는 하마스를 파괴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또 지상군 투입에 앞서 하마스가 잡아간 150여명의 인질을 풀어줄 때까지 가자지구로 공급되는 전력과 수도ㆍ연료 등의 공급을 전면 차단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유엔(UN)과 국제인권단체가 “국제인도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를 부숴 없애버리겠다”는 공언을 이어갔다.
이스라엘의 지상전 돌입 기류가 구체화되자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반격을 “‘시오니스트 점령군’의 ‘전쟁 범죄’”로 규정하며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인질과 전기·수도·연료의 교환을 압박한 이스라엘의 결정에 대해선 “이스라엘의 공격이 끝났을 때에만 해당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며 버티면서 “아랍ㆍ이슬람 국가들이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이 역시 전면 지상군 전투에 대비하는 모습으로 풀이된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이 다가오는 가운데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의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스라엘 측은 12일 "인질이 풀려날 때까지 가자지구 포위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때까지 전기·물·연료 등은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알자지라는 11일 폭격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소년이 “형, 누나, 부모님이 내 눈 앞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고 울먹이는 인터뷰를 내보냈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파헤치며 “건물 밖의 사망자와 부상자만 옮길 뿐 건물 잔해를 파헤칠 수 없다”고 토로하는 나심 하산(47)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 지도자를 초청해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면서도 “우리는 국제 전시 법률(Law of War)을 존중한다”며 이스라엘의 전면 봉쇄와 지상군 투입 작전에 따른 민간인 피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이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이스라엘에 급파해 외교적 중재를 시도하고 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블링컨 장관이 이스라엘 고위 인사들을 면담할 것”이라면서도 “블링컨 장관은 가자지구로 잡혀간 모든 인질들의 안전한 석방에 집중하고 있고, 현 시점에서 미국 정부는 군사 작전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번 중동 방문을 통해 전(全)이슬람권이 반미ㆍ반이스라엘 단일대오로 구축되는 상황을 유발할 수 있는 이스라엘의 과도한 군사행동의 자제를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
22개 아랍권 국가가 참여한 아랍연맹도 11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긴급 외교장관 회의를 열고 “평화 프로세스를 재개하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 간 진지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상황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각국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도주의 측면의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미국을 비롯한 중동 국가들도 다급하게 해법 마련에 나섰다.
백악관은 이스라엘, 이집트 등과 가자 지구 내 민간인을 위한 긴급 구호품 조달, 주민 철수를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CNN은 익명의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이스라엘이 지상군 투입에 앞서 가자 지구 내 민간인을 대피 시키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인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로 들어갈 수 있는 육로인 라파 통행로를 통해 대피 시키고, 팔레스타인 민간인은 하루 2000명까지 국경 통과를 허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집트 역시 가자지구에 인도적 지원을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6시간 휴전을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이스라엘이 12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와 북부 도시 알레포의 공항에 공습을 가했다고 시리아 국영 TV 방송이 전했다. 이들 국제공항의 활주로에 폭격이 가해진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공항 시설 운영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AP는 "하마스가 공격한 이후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처음으로 타격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시리아를 지원하는 이란 혁명수비대를 견제하기 위해 종종 시리아를 공습하곤 했으나, 하마스와 전쟁 중에 가해진 공습으로 인근 국가로 확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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