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걱정, 한걸음만 비켜 서면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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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만, 나는 유달리 걱정을 많이 한다.
숨 쉬는 것처럼 일상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가족, 돈, 건강, 일과 관련한 소소한 걱정이 많을 뿐이다.
제법 긴 시간 동안 갈등을 겪으면서 나는, 알 수도 없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이어지는 걱정은 삶에서 여유를 줄이게 할 뿐, 백해무익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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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주 기자]
▲ 인생에서는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불운한 일들이 무수히 일어난다. 걱정이 미리 사서 하는 어리석은 일인 이유다. |
ⓒ 정승주 |
살면서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냐만, 나는 유달리 걱정을 많이 한다. 내 속의 불안 기제 탓이려니 하지만 가끔은 나 자신이 짜증스럽다. 삶을 갉아먹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떠안은 듯이 심각하게 염려하는 것은 아니다. 숨 쉬는 것처럼 일상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가족, 돈, 건강, 일과 관련한 소소한 걱정이 많을 뿐이다.
걱정을 많이 하지만 실제 해결해야 할 일이 벌어지면 나는 침착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는 편이다. 십여 년 전, 예기치 않게 아내가 암 투병하는 힘든 상황이 있었다. 생활에 어두운 내가 병원과 집을 왕래하며 오랜 기간을 내색하지 않고 자신과 애들을 건사하는 걸 보고 아내는 대견해했고 고마워했다. 그래선지 내가 쓸데없은 걱정이라도 할라치면, 아내는 "걱정을 사서 해요"라며 힐난하면서도 받아주곤 했다.
은퇴하니 '걱정 많은 내'가 문제가 되었다. 아내야 이미 그런 사람인 줄 알아 넘어갔지만 아들은 그렇지 않았다. 평소 볼일이 별로 없는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 걱정에 따른 갖가지 잔소리를 해대니 참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 갈등이 사뭇 심각했었지만, 나 스스로 반성하고 그에 걸맞게 실천한 덕분에 다행히 무마되었다(관련 기사: 은퇴 후 맞닥뜨린 가족과의 갈등, 이렇게 풀었습니다 https://omn.kr/25v66).
그때 내가 위기를 넘길 수 있게 성찰의 문을 열게 해준 건 티베트 속담으로 알려진 한 줄 문장이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어쩔 수 없는 일을 걱정하는 건 백해무익
제법 긴 시간 동안 갈등을 겪으면서 나는, 알 수도 없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이어지는 걱정은 삶에서 여유를 줄이게 할 뿐, 백해무익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생각은 정호승 시인이 자신의 책에서 인용한 법정 스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확신으로 바뀌었다. 걱정하는 사람으로 나를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어리석은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내 삶이 또 산산조각이 나면 어떡하나.' 한번 그런 걱정을 하면 걱정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돌아가신 법정 스님께서는 당신의 산문집에서 "오지 않은 미래를 오늘에 가불해 와서 걱정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가 꼭 그런 사람이었다." (정호승 지음,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비채, 2020, 19쪽)
인생에서는 누구에게나 어찌할 수 없는 불운한 일들이 무수히 일어난다. 아내의 암 발병, 내 허리디스크 파열은 걱정할 겨를도 없이 닥친 일이었다. 몇해 전 아들의 입시 실패는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듬해 마음을 다잡은 아들이 스스로 노력하였고 운도 따라줘 다행히 해냈을 뿐이었다.
그래서, 설명할 길이 없고 선택할 수도 없는 불운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라는 유시민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나는 세상의 부조리와 설명할 길 없는 불운을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행운에 대해서는 감사하되 불운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이것이 좋은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내 선택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 (유시민 지음, <어떻게 살 것인가>, 아포리아, 2013, 291쪽)
인생이 힘들어도 사회에 대한 관심 놓지 말아야 할 이유
그럼에도 이것 하나는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위를 유지하게 하는 공동체, 즉 누구나 양질의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으며 노동이 존중되고 형편이 어려우면 경제적 지원을 받는 이른바 민주 복지사회에 이르면, 각각의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불운도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삶에서의 불운과 걱정을 줄이려면 정치에 관심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제대로 일하지 않는 정치인이 아무리 꼴 보기 싫고 정치가 혐오스럽더라도 말이다.
이제 나는 걱정에 힘을 헛되이 소모하지 않는다. 걱정을 줄이니 아들과의 갈등은 적어졌고 아내에게는 칭찬을 듣는다. 개과천선한 셈이다. 더불어 마음은 편해졌고 일상이 가벼워졌다. 육십을 훌쩍 넘겨서야 이걸 깨달은 걸 보면 내가 참 어리석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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