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풍전등화 정의당
[박소희 기자]
▲ 출정식을 마치고 송화벽화시장을 찾은 권수정 정의당 후보 |
ⓒ 정의당 |
내리막길은 어디가 끝일까.
정의당이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권수정 후보 1.83% 득표'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나마 3~5% 수준인 정당 지지도에도 못 미치는 처참한 결과다. 시야를 넓히면, 지난해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가 2.37% 득표에 그친 데 이어 3개월 뒤 지방선거에서 단 9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던 흐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존립 자체'를 판단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 처하는 등 나빠지기만 했다.
이정미 대표는 선거 다음 날인 12일 당 상무집행위원회에서 "좋은 결과를 드리지 못해 송구하고 죄송하다"라며 "이번 선거의 패배는 모두 정의당의 부족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뼈를 깎는 성찰과 근본적 변화가 없이 내년 총선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게 더욱 분명해졌다"라며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의 책임은 선거를 이끈 당 대표에게 있다. 당을 다시 살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 체제로는 안 돼... 근본적으로 노선 바꿔야"
이 대표 스스로 책임을 인정한 만큼 지도부 사퇴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의당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당의 존립을 판단해야 하는 시기"라며 "지금 이 체제를 유지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가 많았던 화곡동에서조차 진보당과 차이가 없었다"라며 "심상정 의원이 나름 민주당보다 더 분명한 입장과 대안을 내놓고 논의를 주도했는데... 정의당이 5석이나 더 많은데 효능감이 없다는 것이고, 선거전략에도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라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선거 기조는 어쨌든 현 지도부가 지난 1년간 당을 이끌어 온 '자강'의 틀에서 있었다"라며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성적표를 받은 셈"이라고 봤다. 이어 "정의당으로도 안 되고, 지금까지 당이 밟아왔던 재창당 논의 등도 유효하지 않다. 제대로 노선 전환을 해야 한다"라며 "그간 민주노동당 10년, 정의당 10년 동안 해온 걸 더 해왔을 뿐이었다. 이제는 근본적으로 노선을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보자들이 2일 오후 서울 강서구 SK브로드밴드 스튜디오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후보,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 정의당 권수정 후보. 2023.10.2 |
ⓒ 연합뉴스 |
류호정 의원 역시 선거 당일 오전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정의당은 선명하게 '아주 하얀 맛있는 흰 쌀밥을 국민들께 담아드릴게요' 하던 정당이었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바뀌지 않았나. 국민들께서도 흰 쌀밥 말고도 다른 거 먹고 싶다 하는데 약간 눈치가 조금 부족해서 '왜 갑자기 인기가 없어지는 것 같지? 흰 쌀밥을 더 많이 담아드리면 되나?' 하고 더 열심히 밥을 짓던 정당이란 말이다. 이제 메뉴 자체를 바꿔야 된다. 김밥으로 바꿔야 되지 않나. 쌀밥도 있지만 김, 단무지, 김치 이렇게 (국민들이) 원하시는 것들로 잘 모아서 새로운 메뉴로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선거는 그런 전략은 아니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정의당은 이미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심판받았다"라며 "(그럼에도 미련이 있던) 사람들은 (과거 기조를) 붙잡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성적표를 받아서야 인정하겠구나 싶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정의당이 정당으로서의 신뢰를 상실한 게 문제"라며 "제3당으로서 민주당과 협력해야 한다/독자적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모두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어느 쪽이든 신뢰를 주지 못하고 부유하다가 이제는 당으로서의 가치마저 잃어버린 느낌이다"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당의 진로를 분명히 해야 한다"라며 "총선을 어떻게 치를 것인가부터 정확하게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결과는 '지금 이대로 가면 아무도 정의당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죽자는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점을 너무 확연히 보여준다"라며 "변화의 방향이 '전통적인 진보정당 간의 연대냐, 아니면 좀 더 넓게 판을 짜냐' 두 가지 흐름으로 당내에 있는 상태인데, (둘 중 하나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했다.
'너무 나쁜 성적표'엔 이견 없어... "생각이 복잡하다"
정재민 정의당 서울시당 위원장도 "정의당이 큰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는 "어쨌든 이번 선거가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층이 서로 결집하는 선거가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에, 양당이 아닌 공간은 5%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면서도 "정의당 지지율 3%도 지키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고, 진보당을 앞서긴 했지만 거기에다가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우리가 3당의 지위를 지켰다'고 평가할 건 아니다"라고 돌아봤다.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제3당이 설 공간이 점점 쪼그라드는 현실도 장벽이다. 정 위원장은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하다. 윤석열 정권을 저지해야 하지만, 동시에 민주당의 행태에 진보정당이 다 동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라며 "진보 진영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판을 열어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다만 "어쨌든 매우 안 좋은 성적표를 받았고, 지금 이대로 가선 안 된다는 게 확인됐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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