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치 참여' 뒤 첫 선거 패배…與가 먼저 '김행 사퇴' 요청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으로 고배를 마셨다. 2021년 6월 정치 참여를 선언한 뒤 윤 대통령은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승 가도를 달려왔다. 그래서 12일 국민의힘이 17.15%포인트 차로 완패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는, 윤 대통령에겐 사실상 첫 패전에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도 이날 결과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서구는 야당의 강세 지역이지만 격차가 예상보다 컸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구청장이 2.6%포인트 차로 당선된 곳이라, 이같은 완패를 예측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정부는 어떠한 선거 결과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 결과의 후폭풍을 먼저 마주한 건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다. 이날 오전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선 김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주식파킹 의혹 등 인사청문회에서 부각된 문제들, 또 '김행랑'이란 조롱을 받았던 중도 퇴장 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강하고, 선거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전날까지도 김 후보자는 언론의 의혹 제기에 소송을 예고하며 물러날 뜻이 없음을 밝혀온 상태였다.
최고위 뒤 당 지도부는 대통령실에 김 후보자 사퇴를 강력히 요구했다. 김 후보자는 오전 중 이같은 분위기를 당과 대통령실을 통해 전달받고 수용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도 최고위 뒤 기자들과 만나 김 후보자와 관련해 “민심을 잘 받아들이는 게 정치 아니겠습니까”라며 사퇴를 시사했다. 김 후보자는 오후 2시경 “당원으로서 선당후사의 자세로 후보자직을 자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힌 뒤 자리에서 내려왔다. 지난해 김인철 전 교육부장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5번째 장관급 후보자의 낙마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당의 의견을 고심 끝에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 후보자의 사퇴만으로 선거 패배의 여파가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여권 내에선 당 지도부뿐 아니라 대통령실의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지역 구청장 선거를 전국구 선거로 키운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관 출신인 김태우 국민의힘 강서구청장 후보는 지난 5월 공무상비밀누설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강서구청장직을 잃었던 전직 구청장이었다. 보궐 선거의 원인을 제공했지만, 석 달 뒤 대통령 특별사면을 받았고, 지난달 다시 공천을 따내 보궐선거에 출마했다. 당내에선 ‘윤심 공천’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이례적인 결과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선거 유세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오죽 신임을 했으면, 특별 사면에 복권까지 시켰겠냐”며 김 후보자를 ‘윤심 후보’로 내세웠다. 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야당에 ‘윤석열 정부 심판론’을 내세울 수 있는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며 “김 후보 공천에 대한 대통령실의 의지가 컸고, 결국 선거의 판도 커졌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도 “당에선 꾸준히 두 자릿수 패배 가능성을 용산에 전달했다. 사실을 알고도 외면했다면 책임이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내엔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정치권의 일반적인 평가나 여당발 ‘위기의식’과는 다른 기류도 없지 않다. 한 대통령실 참모는 “야당의 텃밭에서 진 선거를 두고 위기론을 말하는 건 침소봉대에 가깝다”며 “민주당의 프레임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구청장 선거일뿐인데 왜 이렇게 민감히 반응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쇄신 요구에 대해선 국정감사 이후 총선 출마를 위한 인적 교체가 이뤄지며 자연스레 개편이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자신감은 매번 승리했던 선거에서 비롯됐다”며 “첫 패배인만큼 정치참여의 이유였던 공정과 상식에 대해 돌아볼 시점”이라고 전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도 “총선은 보궐선거보다 투표율이 높고, 높은 투표율은 통상 야당에 유리하다”며 “지금 같은 분위기면 내년 총선은 여당에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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