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은행 맞나…'수정테이프'로 가짜계좌 1662개 만들었다

김남준 2023. 10. 1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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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B대구은행이 실적을 채우려고 고객 동의 없이 허위 증권계좌를 대량으로 만든 사실이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 확인됐다. 대구은행 직원들은 고객 몰래 증권계좌를 만들기 위해 정상적으로 작성된 다른 계좌 신청서를 복사해 활용했다.


다른 신청서 복사해…1662건 부당 계좌 개설


대구은행이 만든 부당 계좌 개설 신청서. 키움증권으로 표시된 부분을 수정테이프로 지우고, 한국투자증권으로 체크박스를 바꿔놨다.
12일 금감원은 대구은행 검사 결과 직원들이 예금계좌와 연계된 증권계좌 1662건을 고객 동의 없이 부당 개설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부당 개설 계좌는 지난 2021년 8월부터 지난 7월까지 고객 1552명 명의로 만들어졌다. 계좌 개설에 가담한 직원은 대구은행 영업점 56곳의 총 114명이었다. 대구은행의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국내 지점 수가 142개임을 고려하면, 약 40%의 지점에서 부당 계좌 개설 행위가 이뤄졌다.

계좌 개설에는 고객이 정상적으로 작성한 다른 계좌 신청서를 활용했다. 직원들은 고객이 직접 전자 서명한 A증권사 증권계좌 개설 신청서를 최종 처리하기 전에 출력해 사본을 만들었다. 이를 수정 테이프를 이용해 증권사 이름이나 증권계좌 종류 등을 고쳐 다른 계좌 신청서로 다시 활용했다.


연락처 바꿔, 계좌 개설 숨기기도


대구은행이 만든 부당 계좌 개설 신청서. 신청 명의인과 계좌 개설 명의인이 다르게 기재돼 있다.
이 과정에서 허위로 꾸민 계좌 신청서를 제대로 수정하지 않아 계좌 신청 정보와 실제 개설 계좌 정보가 불일치하는 경우도 669건에 달했다. 대구은행은 금감원 검사 과정에서 “고객에게 기존 신청서를 복사해 다른 계좌 신청에 활용하겠다고 설명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구은행이 만든 부당 계좌 개설 신청서. 하이투자증권으로 신청된 계좌 개설 신청서가 수정되지 않았는데, 키움위탁증권으로 계좌가 잘못 개설됐다.
심지어 일부 직원 7명은 허위로 계좌를 개설하면서 고객 연락처를 잘못 기재하는 방식으로, 고객이 증권사에 증권계좌 개설 사실 및 관련 약관을 통보받지 못하게 했다. 다만 허위로 만든 계좌에서 자금 이체나 주식 거래 같은 실제 거래 내용은 발생하지 않았다.

계좌 실적 압박이 원인…내부통제도 미흡


대구 수성구 대구은행 본점. 뉴스1
금감원은 이런 무리한 계좌개설이 이뤄진 것에는 대구은행의 실적 압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구은행은 비이자이익을 늘리기 위해 2021년 8월부터 ‘증권계좌 다수 개설 서비스’를 실시했다. 또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영업점 핵심성과지표(KPI)와 개인 실적에 중복으로 반영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부당 개설 계좌 1662건 중 90.5%가 KPI 반영 시점인 지난해에 발생했다.

대구은행은 계좌 개설을 직원들에게 압박했지만, 위법·부당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내부통제 장치는 마련하지 않았다. 고객이 전자 서명한 서류를 마음대로 출력할 수 있게 허용했고, 이를 다른 증권사 계좌 개설 신청서로 이용 가능하게 운영했다. 또 다른 예금거래와 달리 증권계좌 개설 시에 담당 직원이 임의로 고객 휴대전화 번호를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지난 4월에 적발하고도 조치 안 해


사후 점검도 엉망이었다. 대구은행은 지난해 4월 이미 고객 휴대전화 번호를 임의 변경하거나 고객이 직접 기재하지 않은 서류로 계좌를 개설한 사례를 적발했지만, 구체적 지침 없이 유사사례 방지 교육 및 내부통제를 강화를 요청하는 공문만 발송했다. 이 때문에 이후 벌인 자체 감사에서 문제점을 적발하지 못했다.

금감원은 “내부통제 소홀 책임이 있는 임직원에 대해 관련 법규에 따라 엄중히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며 “또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가 있는데도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도 조처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최근 잇따른 지방은행 금융사고와 관련해 지방 금융 지주의 자회사 내부통제 및 감독 기능 전반에 대해서도 별도 점검할 계획이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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