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유대인 안심시켰지만…'지상군 투입' 앞둔 '고심' 노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침공을 받은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전쟁법을 준수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임박한 이스라엘의 지상군 진격 작전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백악관으로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청해 “이스라엘의 안보와 유대인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인근에 항공모함 전단과 전투기를 보냈다”며 “이란에게도 ‘조심하라’고 전했다”고 강조했다.
이란은 하마스를 오랜 기간 지원했고, 때문에 이번 사태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미국은 하마스 침공 직후 이스라엘 인근으로 핵추진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CVN-78)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최강의 전략자산을 전개한 목표가 이란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점을 강조한 말로 풀이된다.
유대인들은 미국의 정치·경제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이 유대인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지지 의사를 피력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이번 하마스의 테러를 “유대인에게 홀로코스트 이래 가장 끔찍한(deadliest) 날이자 인간 역사에서 최악의 순간 중 하나”라며 “‘반유대주의’가 확산하지 않도록 국토안보부와 법무부 장관에게 유대인 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기회가 될 때마다 반유대주의를 규탄하고 싸울 것”이라고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통화 사실을 언급하며 “이스라엘이 ‘전쟁법’을 따를 것을 당부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준비 중인 지상군 투입에 전면적으로 반대하진 않았지만, 작전 중 발생할 수 있는 민간인 피해 등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희생자 중엔 미국인이 포함될 가능성도 크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하마스의 공습 이후 사망한 미국인은 최소 22명이다. 또 하마스가 인질로 잡은 일부를 비롯한 실종자도 20여 명에 달한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이 공습을 할 때마다 인질을 처형하겠다”고 협박한 상황이라,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 작전에 찬성할 경우 인질로 잡힌 자국민의 추가 희생을 감수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날 이스라엘로 출국한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도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이스라엘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겠다”면서도 “실종 미국인의 생사 확인과 가자지구에 있는 미국인의 안전한 탈출 문제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인의 안전을 위해 이스라엘에 지상군 투입 자제를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스라엘과 미국 등 민주주의 국가가 (하마스와) 다른 점은 국제법과 전쟁법을 존중하는 것”이라며 “민간인 사상자를 내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이스라엘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능한 모든 주의를 기울일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야당인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19명도 바이든 대통령과 블링컨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에서 동결 해제 돼 카타르 은행에 예치 중인 이란의 자금 60억 달러를 재차 동결할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동결 해제된 자금이 인도주의적으로만 쓸 수 있다고 하지만, 돈은 언제든 용도를 바꿀 수 있다”며 “이란이나 하마스가 해당 자금을 추가 공격을 위해 사용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우려에도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의 BBC는 이날 “대규모 이스라엘 병력과 탱크, 장갑차가 이스라엘 남부에 집결했고, 이스라엘이 곧 가자지구로 공격해 들어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미 해외에 거주하는 예비군 병력에도 소집을 지시했고, 일부 야당과는 전시 연정을 꾸리기로 하면서 사실상 전시 ‘계엄정부’에 준하는 체제로 전환할 준비까지 마쳤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어 TV 연설을 통해 “하마스가 이스라엘 군인을 참수하고 여성들을 강간하고, 어린이들의 머리에 총을 쏘고 사람을 산 채로 불에 태우는 등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다”며 하마스에 대한 적개심을 고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만 실제 이스라엘 정부의 지상작전 개시 명령이 언제 떨어질지, 이를 통한 이스라엘의 최종 목표가 무엇이 될지에 대해선 아직 불분명한 상태다. 이와 관련 이스라엘 관리들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제거하고 새로운 중동을 구축하겠다”며 지상군 투입이 이뤄질 경우 양측의 희생을 감수한 사상 최대 규모의 전면전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하마스 공습 이후 6일간 발생한 사망자 등 전쟁 희생자는 이미 과거 최대 규모였던 2014년 ‘가자 전쟁’ 6주간 발생했던 사망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대대적 작전이 실행될 경우 희생자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을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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