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학습 버스에 두고 간 점퍼…"선생님, 옷값 주실거죠?"
"교사가 학생 비급여 치료비 부담도"
교사 80% "안전사고 불안감 시달려"
“배드민턴 동아리에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셔틀콕에 눈을 맞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해당 학생의 학부모는 일가친척까지 대동해 사고에 대한 책임을 해당 교사에게 추궁하고 학교 측에 계속해서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이 교사는 학부모를 달래기 위해 직접 집에 찾아가 무릎 꿇고 사과까지 했습니다. 학생의 치료비는 공제회에서 지급됐지만, 학부모는 초등학교 졸업 후에도 병원 통원에 필요한 교통비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교장이 직접 학부모에게 교통비를 지급하고서야 사안이 마무리됐습니다."
교사 3명 중 1명은 학교에서 벌어진 안전사고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나 배상 요구를 경험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각종 안전사고의 모든 책임이 교사들에게 떠넘겨지며 교육활동이 위축되고 있었다.
12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4일까지 진행한 ‘교육활동 중 발생한 학생 안전사고 및 물품 분실, 파손 등으로 인한 교사 피해 사례’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1000여 명의 교사 중 학생 안전사고에 따른 민원을 직접 경험한 적 있다는 교사는 37.8%였다. 동료 교사가 민원을 받은 적이 있다는 교사는 45.5%에 달했다. 직접 소송당한 경험이 있다는 교사는 0.5%, 동료가 소송당한 적이 있다는 교사는 13%로 집계됐다.
응답자 중 80.4%는 학교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불안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으며 82.1%는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이 교육활동을 매우 위축시키고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교조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안전사고는 학교안전공제회에서 치료비와 위로금을 지급하지만 주의감독 소홀을 이유로 교사에게 민·형사 소송을 걸거나 개인적으로 보상금을 요구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공개한 사례를 보면 A 교사의 반 학생은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서 복통을 호소했다. 다른 아이들은 이 학생이 전날 과학 전담 교사의 수업에서 자석에 대해 배우던 중 자석을 삼켰다고 말했다. A 교사는 즉시 학부모에 해당 사실을 알렸고, 학생은 응급 수술을 받았다.
치료비 일부는 학교안전공제회에서 배상 처리됐다. 그러나 학부모는 A 교사와 과학 교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따로 치료비를 요구했다. A 교사와 과학 교사는 결국 합의금을 주고 재발 방지 각서도 썼다.
학교에서 학생 물품이 분실·파손됐다며 교사에게 배상을 요구했다는 사례도 있었다. 한 교사는 “현장학습 버스에 점퍼를 놓고 내렸다며 여러 차례 전화해 배상하라고 한 학부모도 있었다”고 썼다. 또 다른 교사는 “학생이 친구에게 공을 던져 안경이 깨지자 담임교사를 괴롭혀 담임교사가 안경값을 내준 사례도 봤다”고 말했다.
앞서 2021년 극단적 선택을 한 경기 의정부시 교사는 사망 전 학교에서 다친 자녀의 치료비를 지급하라는 학부모의 연락에 시달리다 8개월에 걸쳐 400만원을 송금한 것으로 교육청 감사에서 확인됐다.
경기 용인의 60대 고등학교 교사도 지난 6월 체육 수업 도중 자리를 비운 사이 학생 한 명이 다른 학생이 찬 공에 맞아 눈 부위를 다친 사고로 피해학생 측으로부터 과실치상 혐의로 고소당한 뒤 세상을 떠났다.
전교조는 “교사 본연의 역할이 수업과 생활교육임에도 지금까지 교사들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사고에 대한 책임을 홀로 감당해 왔다”며 “도대체 교사는 교육활동을 위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며 언제까지 교사에게 무한책임을 강요할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학교에서도 교육활동 중 안전사고는 학교안전공제회와 교원책임배상보험이 민사적 보상을 해주므로 교사에게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특례조항을 신설해야 한다”며 “민사소송의 경우에도 소송을 기관이 대리하고 교원책임배상보험에 의해 배상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kimhj20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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