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엔 팔 난민기구 집행위원장 "난민 삶 최악, 韓지원 절실"

박현주 2023. 10. 1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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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로 인도주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필립 라짜리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이 11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간 충돌로 인해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가족과 친구 등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살 곳까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필립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김현동 기자


라짜리니 집행위원장은 지난 5일 방한 중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중앙일보와 만나 "팔레스타인 난민 대다수는 불안정한 정세 때문에 희망을 잃고 고향을 떠날 생각 뿐"이라며 "한국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짜리니 집행위원장의 방한 직후인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 지구를 전면 봉쇄하고 폭격을 이어가면서 팔레스타인 난민의 삶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중앙일보는 라짜리니 집행위원장을 지난 5일 대면 인터뷰한 데 이어 지난 11일 유선 인터뷰를 추가로 진행해 현 사태에 대한 진단을 들었다. 전쟁 발발 후 UNRWA 집행위원장이 입장을 표명한 건 국내외에서 처음이다. 다음은 두 차례에 걸친 인터뷰 일문일답.

지난 11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해 가자 지구 내 모스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AFP. 연합뉴스.

Q : 현재 가자 지구 내 상황은 어떤가
A : 인도적 위기가 급격히 심화했다. 200만명 이상의 가자 지구 주민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 등 민간인이다. 지난 16년 동안 가자 지구의 사람들은 이미 외부로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했다. 장기화된 봉쇄로 인해 가난이 극심해졌고 취업도 제대로 하지 못해 난민 대부분이 유엔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쟁이 터지면서 학교, 병원, 종교 시설, 상점 등 기본적인 인프라에 대한 공격이 강도 높게 쏟아지자 상황은 악화일로다.

Q : 팔레스타인 난민이 처한 상황은
A : 심각하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 지난 7일 이전에도 이미 나빴는데, 훨씬 더 악화됐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가족과 사랑하는 이, 친구와 친척과 이웃을 잃었고, 이들이 살 곳도 사라졌다. 현재 가자 지구에서 UNRWA가 운영하는 학교 88곳에서 18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 900명 이상이 숨졌고 그중 최소한 100명은 어린이다. 전쟁이 터진 뒤 이들을 돕기 위해 현장에 있던 우리 UNRWA 직원도 아홉 명이 숨졌다.
실제로 UNRWA 측은 이날 발간한 보고서에서 "난민들이 수용돼있는 UNRWA의 학교가 이미 매우 포화 상태고, 음식과 식수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필립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김현동 기자

Q : 전쟁 전에도 어려웠나
A : 난민촌의 대부분 젊은이들은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니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탈출하려고 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다 보니 무력감이 분노로 바뀌어 무장 단체에 가입하는 등 엇나가는 경우도 많다.
라짜리니 위원장은 "청년층이 무력한 상태로 탈출만 바라는 것도, 현실에 대한 분노를 무장 단체에서 해소하는 것도, 두 시나리오 모두 굉장한 비극"이라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대원이 무기를 들고 트럭에 오른 채 지난 2007년 가자 지구 인근을 도는 모습. AP. 연합뉴스.

Q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갈등에 대한 해결 방안이 있을까
A : 내가 정답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해법이 없어서 문제가 안 풀린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75년 동안 정치적 해법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피로감만 호소하거나 외면하는 건 능사가 아니다.

Q : 한국 국민에게 UNRWA라는 기구는 다소 생소하다
A : UNRWA는 약 600만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대상으로 교육, 의료, 구호 및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엔 기구다. 다시 말해 교육과 의료시설이 없는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정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1949년에 설립돼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가자 지구, 웨스트 뱅크 등 5개 현장에서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초ㆍ중등 및 직업 교육과 기초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충돌이나 유혈 사태가 벌어졌을 때 긴급하게 음식과 현금을 지원한다.
라짜리니 위원장은 UNRWA의 역할은 "평시에 '정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유사시에 '긴급 구호'를 하는 '투 트랙'으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UNRWA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다.

2020년 취임해 오는 2026년까지 임기를 수행하는 그의 공식 방한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방한 기간 박진 외교부 장관과 만나 그간 한국의 지원에 사의를 표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Q : 방한 이유는
A : 한국은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또한 난민에 대한 교육을 핵심 사업으로 삼고 있는 UNRWA는 한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유엔 총회 기조 연설에서 "한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과 UNRWA의 협력을 심화할 방안을 모색하고 싶다.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필립 라짜리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에서 악수를 하는 모습. 뉴스1.

Q : 한국과는 그간 어떤 협력을 했나
A :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2015년 UNRWA가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과 함께 만든 '가자 게이트웨이'(Gaza Gateway)라는 사회적 기업을 꼽을 수 있다. 젊은 IT 졸업생들이 기술과 경험을 습득해 직업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3년 동안 130만 달러 등이 투자됐는데 이후엔 완전히 재정적으로 독립된 기업이 돼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Q : 한국은 내년부터 2년 임기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를 위해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A : 한국이 안보리의 일원으로서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두 개의 별도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구상으로 유엔과 국제사회 대부분이 지지)을 꾸준히 지지해주길 바란다.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는 유엔이 탄생한 이후 최장 기간 미제로 남아있다. UNRWA 또한 당초 임시적인 원조 기구로 탄생했지만 75년 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정치적 해법이 도출되지 못하면서 난민 지원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UNRWA는 재정적 측면에서 유엔 회원국의 '선의'에 의존할 뿐이다. 따라서 한국 같은 나라가 UNRWA에 지원과 관심을 확대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필립 라자리니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집행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모습. 김현동 기자

Q : 이번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경기 침체 등으로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A : 우크라이나 전쟁 등 당면한 현안도 중요하지만 최근 상대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국제사회가 소홀해진 측면이 있다. 또한 한국은 ODA 규모를 늘리기로 했지만 여건 상 ODA를 줄인 나라도 많다. UNRWA는 재정난이 심각해 직원들 월급을 걱정해야 할 상황인데, 이대로 가면 기존의 학교와 의료 시설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Q : 남은 임기 동안 이루고 싶은 바는
A :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고 싶다. UNRWA의 궁극적 지향점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돼 UNRWA의 존재 이유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UNRWA가 보다 지속 가능하고 안정된 방식으로 운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한국 국민들도 한국 정부가 UNRWA와 이어가는 여러가지 협력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란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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