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회에 진심인 회장님, 별세 전 5년치 공연계획 미리 세웠다
설립자인 고(故) 박영주 회장이 시작
올 3월 작고하기 전 음악회 계획 모두 세워놔
1990년. 고(故)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이건이 작은 합판회사였고, 판매액도 형편없었던 때”라고 했다. 박 회장은 1972년 이건산업을 설립했고, 78년 37세로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이후 이건 음악회를 열겠다고 87년 공표했다. 처음부터 좌석 무료 공연이었다. 임원진은 반대했고, 기업의 근거지인 인천에서도 별로 반기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 1회 이건 음악회에 프라하 아카데미아 목관 5중주단이 인천 이건산업 공장에서 공연했다.
올해로 34회째인 이건 음악회가 이달 열린다.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1998년 외환위기 때도 미국의 로드아일랜드 색소폰 4중주단이 내한했다. 출연료를 포함한 제작비와 사회 분위기 때문에 취소를 고려했지만 연주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공연이 성사됐다.
음악회를 일궜던 박 회장이 올해 3월 작고했다. 박 회장은 외국에 나가 연주자들을 직접 섭외하고, 음악회의 방향을 구상해왔다. “해외 공연을 보러 가서 연주자 대기실 앞을 지키다가 같이 점심을 먹으며 한국에 와달라 부탁하고는 했다”고 기억했다. 그렇게 세계 각지의 좋은 연주자들을 초청해 독자적인 음악회를 열어왔다. 올해 이건 음악회는 그가 없이 열리는 첫 공연이다.
12일 열린 이건 음악회 기자간담회에서 이건 측은 “고인이 남기신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음악회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음악회를 담당해온 최지훈 이건 홀딩스 매니저의 말이다. 박 회장의 원칙은 셋이었다. 음악회를 기업의 광고로 삼지 말라는 순수성,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한다는 지속성, 마지막으로는 이건의 직원들이 직접 꾸리는 진심이다.
최 매니저는 “34년 동안 공연 기획 업체의 손을 빌리지 않고 우리 손으로 다 했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이건의 생산팀, 영업팀, 회계팀, 디자이너 모두 음악회에 투입돼 만든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자신의 이후를 미리 생각한 듯 음악회의 시스템을 갖춰놨다. 최 매니저는 “작고하기 전에 5년 치 음악회 계획을 짜두셨으며,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음악회가 지속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이건 음악회에서는 베를린의 연주자들이 공연한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의 현악기 연주자로 구성된 4중주단이다.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볼프람 브란들(바이올린)을 비롯해 제2 바이올린 주자인 리판 주, 비올라 유스트 카이저, 첼로 클라우디우스 포프가 멤버다. 볼프람 브란들은 “3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음악으로 나눔을 실천한 이건 음악회의 진정성에 공감한다”며 “의미 있는 공연에 참여해 기쁘다”고 했다.
이들은 1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17일 광주 예술의전당, 19일 대구 콘서트하우스, 21일 부산 금정문화회관에서 드뷔시ㆍ하이든ㆍ슈베르트를 연주한다. 한국의 첼리스트인 박노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첼로 단원인 강민지가 함께한다. 올해도 전석 무료 공연이며 이건 음악회의 홈페이지를 통해 티켓 응모 신청을 받았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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