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도 기습 가능성"...하마스가 불붙인 9·19 합의 '효력 정지'
2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의 여파가 남북 간 9·19 군사합의에 미치고 있다. 하마스가 5000발에 달하는 로켓포로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한 것처럼 북한 역시 언제든 장사정포 등을 활용한 대남 기습 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경각심이 커지면서다.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대통령실과 정부 외교·안보 라인에선 이미 9·19 군사합의의 효력이 정지되는 상황을 전제로 시나리오별 후속조치를 검토 중이다.
군 당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잇단 무력 도발로 더 이상 북한과 9·19 군사합의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9.19 군사합의는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에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맺은 남북 합의이기 때문이다. 핵 무력을 법제화하고, 한국을 노린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의 도발 자체가 합의 정신을 무시하는 행태인 셈이다.
"효력 정지, 신중한 논의와 결단만 남아"
최근엔 북한의 추가적인 영토 침범 등 도발 여부와 무관하게 정부가 효력 정지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12일 기자들과 만나 “안보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국가안보상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전제로 효력 정지를 검토하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나아간 셈이다.
9.19 군사합의의 효력이 정지될 경우 종전선언과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이어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핵심 요소들이 폐기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외교 소식통은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시킬 경우 발생할 필요한 후속조치 작업들과 남북 상황 변화는 물론 이같은 판단에 대한 국제사회의 예상되는 반응 등 다각도의 검토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며 “실제로 합의 효력이 정지될 경우 그에 맞춘 신속한 대응이 가능한 만큼 보다 신중한 논의와 결단만 남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남북 정상이 도출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로 우발적인 군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20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비무장지대(DMZ) 남북 10~40㎞ 비행 금지 ▶DMZ 감시초소(GP) 시범철수 ▶북방한계선(NLL) 일대 완충구역 설정 ▶군사분계선 5㎞ 이내 포 사격 및 연대급 이상 야외 기동훈련 중단 등이다.
北 17차례 위반…사실상의 파기 상태
하지만 북한은 2020년 남측 GP 총격과 지난해 12월 무인기 침투를 비롯해 이미 최소 17차례에 걸쳐 합의를 위배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지난 11일 국정감사에서 9·19 군사합의와 관련 “합의는 쌍방이 준수해야 의미가 있다. 일방이 그것을 어기고 타방이 일방적으로 준수하는 건 상당히 잘못됐다”고 지적한 이유다.
그러나 북한은 합의 취지를 무색게 하는 무력 도발을 감행하면서도 합의 파기를 선언하진 않았다. 그 자체가 9·19 합의가 북한에 유리한 쪽으로 설계돼 있다는 방증이란 지적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밥 먹듯 합의를 위배하는데 한국은 합의에 따라 무력 대응은 커녕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탐지·정찰 역량까지 스스로 제한하는 비대칭적 상황이 수년간 지속됐다.
이와 관련,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10일 “9·19 군사합의에 따른 비행금지구역 설정으로 북한의 임박한 전선 지역 도발 징후를 실시간 감시하는 게 굉장히 제한된다”며 “최대한 빨리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대한 빨리 효력 정지"…부담은 여전
다만 북한의 직접적 도발 등 아무런 계기 없이 정부가 선제적인 효력 정지를 선언하는 데 따르는 부담은 여전하다. 물리적으로 국회의 동의 없이도 효력 정지 선언 자체는 가능하지만, 이 경우 상호 약속한 합의를 정부가 먼저 깨버렸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어서다. 또 이를 빌미로 북한이 무력 도발에 나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야당은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는 데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9·19 군사합의는 접경 지역의 우발적 오판에 의한 충돌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방화벽”이라며 “(효력이 정지될 경우) 남북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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