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비판 통계청 내부 문건 삭제, 청장 "나중에 알았다"
[이정환 기자]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가 통계청에 외압을 행사해 통계를 조작했다는 최근 감사원의 감사 중간 결과 발표와 관련해 이를 비판하는 내용의 문건이 통계청 내부망에 올라왔다가 삭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익산시을)은 '감사원 가계 소득 통계 분야 수사 요청 내용에 대한 검토'라는 제목의 문건을 공개하면서 "감사원의 주장은 가계 소득이 증가한 것처럼 조작됐다는 것인데, (통계청 내부 문건 내용을 보면) 무응답 보정 처리 과정에 있었던 것으로 통계 조작이란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형일 통계청장은 "내부망에서 삭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로 해당 문건의 게시 여부와 내용 등에 대해 사실로 인정했다.
▲ 이형일 통계청장이 12일 오전 대전 서구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을 준비하는 가운데 국정감사장 모니터에 자료화면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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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상황은 최근 감사원의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 실태 감사 중간 결과' 발표에 대한 통계청 측의 일부 판단이 노출된 것으로서 주목된다.
감사원은 지난 9월 15일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과 국토교통부 등이 통계 작성기관인 통계청과 한국부동산원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해 통계 수치 조작 등 각종 불법행위를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한 김상조·김수현·이호승·장호승 등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홍장표 전 경제수석, 황덕순 전 일자리 수석,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 22명을 수사 의뢰했다. 이에 따라 검찰의 압수수색 또한 확대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한 의원은 "전 정부 공격용으로 무리하게 한 상식적이지 않은 감사"라면서 "정치 감사임을 증명하듯 (감사원은) 감사 내용을 언론에 사전에 흘리고 흠집내기에 열올렸다. 짜맞추기 감사이고 조작 감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통계청 내부에서도 감사원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해당 문건을 공개한 것이다.
해당 문건은 내부망에서 한 시간 만에 삭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의원은 문건 삭제가 "청장 지시에 의한 것이었냐"고 물었고, 이 청장은 "나중에 알았다"고 답했다. 한 의원은 감사원 중간 결과 발표에 대해서도 "통계청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마치 감사 결과를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배포했다. 감사원 발표대로 조작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한 이 청장의 답변이 다소 묘했다.
"국민들에게 심려 끼쳐드린 점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차원에서 말씀드린 것이다."
▲ 이형일 통계청장이 12일 오전 대전 서구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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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날 기재위 오전 감사에서 이 청장은 감사원의 발표에 대해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더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특히 2017년 2분기 가계소득이 감소세로 전환하자 취업자 가구 소득을 가중값으로 곱해 소득을 올리고 이를 통계청장 보고·승인 없이 공표한 것은 현행법 위반이란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해당 내용은 "통계청 내부 위임 전결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통계청장에게 보고를 하거나 승인 받을 내용은 아니었다는 답변으로, 이는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경남 양산시갑)의 질의 과정에서 나왔다.
윤영석 : "2017년 2분기 가계 소득이 처음 감소한 것으로 나오자 산정방법과 표준에 임의값을 적용해서 상승한 것처럼 조작했다는 것이 감사원 발표다. 가중값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담당 부서에서 반대했다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통계법 18조에 보면 청장 승인 받도록 되어 있는데, 일방적으로 패싱한 것이다. 이거 법 위반 아닌가."
이형일 : "부서 사이에 의견이 '왔다갔다'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표본과(표본 설계 담당 부서 - 기자 말)에서 부정적이었는데, 실사부서(복지통계과)에서 적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윤영석 : "청장 승인 필요 없는 것인가."
이형일 : "내부 위임 전결 규정이 있다. 감사원이 청장에 보고 필요한 내용이라고 판단했는데,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
▲ 이형일 통계청장이 12일 오전 대전 서구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답변을 준비하는 가운데 국정감사장 모니터에 자료화면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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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35년 동안 통계만 쳐다보고 산 사람"이라고 강조한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세종특별자치시갑)은 2017년 2분기 가계소득을 조작할 만한 동기가 당시 문재인 정부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미래에셋대우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한 홍 의원은 '대우증권 사상 첫 공채 출신 사장'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는 '증권맨' 출신의 정치인이다.
홍 의원은 "2분기 가계 동향 조사는 8월말 경에 나온다. 2017년 8월 중반에 2분기에 우리 가계 소득이 좋아졌다고 정책 홍보를 할 리가 없다"면서 "논리적으로 전혀 맞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2017년 5월 임기를 시작한 문재인 정부가 해당 통계를 자신들의 성과로 부각하려 했다고 보기엔 시기가 이르다는 주장이었다.
또 홍 의원은 "이 모든 논란의 발단은 박근혜 정부 시절 유경준 통계청장 시절에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계동향 조사를 해보니 양극화가 눈에 확 보이니까 이 통계를 없애겠다고 예산도 줄이고 인원도 줄이면서 문제가 된 것"이라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표본이 작으니까 가중치를 둬서 신뢰성을 높이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부평구을)은 "현 상황은 통계청의 통계 조작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의 '정치 감사원' '정치 검찰'에 의한 조작"이라고 강조하면서 이 청장에게 재차 다음과 같이 확인 질문을 던졌다.
홍영표 : "관여 직원이 3000명이나 되는데 표본 조작을 했다고 감사원에서 감사 들어간 거 아닌가. 지금 감사원 사무총장하는 사람이 '특수부대' 투입하듯 해서 그걸 했다. 표본 조작을 못 잡아내니까 이렇게 변질돼서 가중치 문제라고 검찰에 고발한 거다. 통계청장이 허가해야 한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지 않나. 아까 답변했다. 국장하고 과장이 전결하도록 위임된 사안, 맞지 않나."
이형일 : "그렇다."
"열 받는 바람에..."
상황이 이렇게 다소 묘하게 흘러가자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경남 창원시의창구) 차례에 이르러서는 언성이 높아지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김 의원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통계를 친구한테 줬다면 그게 국가 통계인가"라거나 "통계청 기관 결정을 거치지 않고 그걸 알아서 꺼내가서 국가 통계라고 발표할 수 있느냐"고 윽박지르듯 이 청장의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이 청장이 질문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하자 김 의원의 억양은 더 높아졌다.
"뭘 살펴보나. 통계청장이 그것도 답변 못하면서 직원들 무슨 단도리(채비를 속되게 이르는 말)를 하나. (자료를 뒤적이며) 내가 열 받는 바람에..."
이날 국감 도입부에 제기된 통계청 내부 문건에 대한 책임을 묻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발언이었다. 감사원 발표를 신뢰하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감사원 발표를 불신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이 청장에게는 매우 험난한 하루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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